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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원왕생(願往生)의 그리움

        달님 이시어
        이제 서쪽 나라로 가시나이까
        무량수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아 맹세하나이다
        원왕생 원왕생
        그리워 하는 이 있다고 아뢰소서
        아아
        이몸 버려 두고 48원을 이루실까

  한평생 살아가는 게 너무 짧아서인가. 아니면 세상살이가 더럽고 욕되어 그러함인가. 누구에게나 살아서나 죽어서 그리는  누리가 있는 법. 어찌  광덕의 아내만 그럴 수가 있을까. 원왕생(願往生)은 원왕생극락의 준말로서 '극락에 가서 살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이 노래는 사연 깊은 옛적으로 거슬러 오른다. 신라 문무왕 때의 일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때에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란 이들이 함께 불도를 닦고 있었다. 둘 사이는 서로 친하여 약속하기를 '먼저 극락세계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알리도록 하자(先歸安養者須告之)'고 했다. 광덕은 아내와 함께 분황사 서리에서 신을 삼아 팔아서 살았고, 엄장은 남산의 한 암자에서 나무를 베고 밭갈이를 힘 쓰면서 살았던 터. 어느 날인가 해 어스름에 소나무 그늘이 고요히 드리워 졌는데  창밖에서 '나는 이미 서녘으로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라(某已西往矣惟君好住速從我來)'고 하여 엄장이 창을 열고 내어다 보니  구름 밖에서 하늘의 노래 소리가 나면서 밝은 빛이 땅에까지  비추는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나머지 광덕을 찾아 가 보니 과연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해서 장사를 지내고는 광덕의 아내에게 함께 살자고 제의를 하니 그러자고 하였다. 잠자리를 함께 하여 엄장은 친구의 아내에게 한 몸이 되고자 하였다. 한데 이게 웬 일인가. 광덕의 아내는,  "스님께서 극락에 가고자 함은 마치 나무에 올라 가서 물고기를 찾는  것이나 같습니다."고 하면서 크게 나무랐다.
  엄장은 기가 막혀 '광덕도 함께 살면서 잠자리를 같이 했거늘 이게 무슨 큰 일인가.'고 다그쳐 물었다. 여인이 이르기를 '남편은 나와 함께 10년을 살았지만 한번도 잠자리를 같이 하질 않았는데 음란한 짓을 했겠습니까.' 눈에는 단호한 빛이 서려 있었다. 또 '남편은 밤마다 단정한 모습으로 염불을 하고 진리를 얻고자 하였으며 달  밝은 밤이면 부처님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정성이 이같으니 극락으로 안 가고 어디로 갔겠습니까. 이제 보니 스님께서는 극락왕생하기는 싹수가 노랗습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뒤로 엄장은 크게 뉘우치고 몸을 깨끗이 하면서 원효법사에게 깨달음을 구했다. 마침내 도(道)를 얻고 극락으로 든다.
  엄장(嚴莊)은 스님의 이름으로서 그 속에 담긴  불교적 그리움이 짙게 드리워 있다. 운허 스님의 불교사전을 보면 '장엄'이 나온다. 하면 '엄장-장엄'으로 바뀌어 쓰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엄'이란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향이나 꽃으로 장식하거나 나쁜 일로부터 자기의 몸을 삼가하여 공덕을 쌓는 것'으로 풀이된다. 있는 이들에게 소외 당하고 억눌려 사는 삶에서 누구든지 불도를 닦아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미륵불의 극락정토 신앙은 당시의 보통사람들에게는 큰 꿈이요, 희망이었으니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이 노래에 은은히 배어 있음은 아닐까. 그 단적인 표현이 '원왕생극락'이요, 현실에서는 도달할 길 없는  저승의 언덕이니 원왕생이야말로 황홀 장엄한 곳에 대한 몸짓이며 바람이다. 죽살이를 통틀어 그리는 극락(極樂)은 '달'로 드러난다. 우리들에게  달이란 고향의 어머니처럼 그리운 영혼이요, 위안임을 느끼면서 살아  간다. 초승달과 보름달에서 얻는 정서가 다를 때도 많다. 조지훈의 <승무>에서 오동나무 잎새로 지는 달빛이며, <사미인곡>에서의 달 또한 임의 영상이 담긴 상징으로  떠 오른다. <원왕생가>에서는 극락으로 가는 길잡이가 아닌가. <정읍사>에서는 어떠한가. 멀리 간 임의  둘레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우리들 의식 밑바탕에서 늘 우리의 영혼에 등불이 되어 잊혀지질 않는다.
  '달'이란 땅덩어리란 뜻도 되며 높고 크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지구의 또 다른 모습이며 해의 되비침판이 되기도 한다. 기실 따져 보면 달은 지구에 달린 한 별덩이일 뿐인데. 벽에 물체를 '달다(懸)'의 '달'은 하늘에 뜬 달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엄장-장엄'을 풀이하였거니와 <원왕생가>의 지은이는 광덕이나 그의 처가 아니라 엄장(嚴莊)이 아닌가 한다.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바, 무애가를 지은 원효, 무량수불이 된 박박(朴朴)의 경우는 하나 같이 뒤에 깨달은 이가 앞에 깨달은 의상(義湘)이나 부득(夫得)보다 뉘우치면서 절실하게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이다. 결국<원왕생가>의 지은이는  엄장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하면 광덕(廣德)에 드리우는 뜻은 무얼까. 덕을 널리 베풀라고 풀이하면  어떠할런지. 나막신이든 짚신이든 신이나 만들어 팔면서 넉넉지 않은 살림에 부처님의 길을 지극정성으로 닦아 극락으로 갔다는 것이다. 짐작컨대, 신발이 없고 자기보다도 어렵게 사는 이들에게 먹거리나 입을 거리를 나누면서, 부처님의 진리를 행함에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친 것이다. 먼저 그의 가족사항을 보면 아이를 낳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살이를  하지 않은 점이다. 타고난 저마다의 본능이 다 있는데  종교적인 믿음 때문에 삼가하고 정진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원초적인 본능을 삼가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끝 없이 먹고 마시며 성적인 충동에 이끌리어 가고자 하는 충동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러한 광덕의 거룩한 생각을 이해하고 함께 선 이가 바로 그의 아내였으니 참으로 그 남편에 그 아내가 아닌가. '베풀다'는  우리말은 엄청난 속내를 갖고 있다. '베를 풀다'가 굳어진 말이다. 여기 '베'란 무엇인가. 말할 것 없이 입을 옷이며 먹거리가 됨이 아니던가.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이른바 덕(德)을 베푸는 것이다. 목 마른 이에게 물 한모금, 배 고픈 이에게 한 그릇의 밥이 갖는 의미는 괜찮게 사는 이들에겐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그건 그렇지 않다. 피가 모자라 죽어 가는 이들에게 피 한 방울은 꺼져 가는 등불의 기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살기에 바빠서 관심이 무관심일 뿐이다. 이 세상에 사람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란 한정되어 있기 마련.  그래서 신(神)은 누구에게나  빛을 던져 주신다. 빈부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저 푸른 하늘에 해님과 달님은, 별님은 정답게 살라 한다. 나누며 함께 서라고 하신다. 광덕이면 엄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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