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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마음의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대숲에 바람이 일 때면 도림사(道林寺)의 뒤뜰에서 들리는 소리다. 무슨 일이 있기로서니 대나무 밭에서 사람의 소리가 난다는 말인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48대 경문왕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진 것이다. 마치 나귀의 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는데 임금의 머리를  만지는 이만이 현장을 보았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기어이 살아 남을 수가 없음을 눈치 챈 복두장은 속으로만 끙끙거리다가 나이 들어 죽기 전에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의 비밀을 털어 놓은 것이다. 흔히 일러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충동에서 말을 아니 하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일어난 일.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마침내 대나무를 다 베어 내었다.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더니 소리가 달라졌다. '임금님의 귀는 길다'고. 말을 하는 존재로서의 상징적인 부분이 입과 귀이다. 입으로는 말을 하고 귀로는 말을 듣는다. 행동주의자들의 말대로라면 말은 대용자극이요, 대용반응이어서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행위 개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소리상징으로 볼 때 '귀'란 무엇일까. 중세 문헌에서 '귀'는 복모음이었기에 '구이'로 발음이 된다. 구이는 '굿이→구시→구이'의 과정을 거쳐서 쓰이게  된다. 말의 짜임새로  보아 '굿이'는 구덩이나 굴을 뜻하는 '굿'(증수무원록1.42)에 사물이나 사실을 드러 내는 접미사 '이'가 어우러져 된 말이다. 하면 귀란 무슨 굴이며 구멍이라면 어떤 구멍인가. 다름 아닌 소리가 담기는 구멍이란 뜻이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담기는 구멍. 아무 것도 아니면서 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귀불알과 귀바퀴, 귓구멍이 합하여 귀라 이른다. 우리 몸에는 많은 구멍이 있다. 땀구멍에서부터 코구멍, 눈구멍, 목구멍, 똥구멍 등 실로 많은 구멍이 있어 이를 통하여 드나드는 물질이 있으므로 우리의 목숨살이가 가능하지 않은가. 고려수지침술학에서는 우리 몸에 바늘을 꽂는 구멍을 경혈이라 해서 360여의 구멍을 보기로 모임 들고 있으니 땅덩어리가 자전하는 횟수와 다르지 않음도 우연한 일이 결코 아니다. 일러 환경결정론이라  하여 환경과 사람의 걸림을 중시하기도 한다.

  지구 위에서 사니까 돌아 가는 지구의 리듬에 맞추어 우리의 몸은 숨을  쉬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소리가 담기는 소리 구멍. 그래서 바른 말을 떳떳하게 하면서 살 수 있는  누리. 하면 자유와 평화가 꽃피는 홍익인간의 마을이 될 것이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될 것이구먼. 파우스트는 눈이 멀고 귀가 멀면서부터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되고 하늘의 빛을 보게 된다. 어버이에게서 자연의 귀를 물려  받았는데 이제 하늘과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우리는 갖도록 해야  한다. 같은 소리이면 같은 뜻으로 받아 들을 수 있는 한 겨레의 듣기 훈련을 갈고 닦아야 한다. 저 높은 곳에의 바람과 믿음을 가지고 귀를 열자. 열린 누리를 만들어 봅시다.


                처용의 노래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서 자리 보니 가랑이가 넷이구나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해이지만 빼앗아 감을 어찌 하리오 (처용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세상에 그래 어느 사내가 눈 앞에서 제 여편네가 다른 이에게 능욕 당하는 꼴을 보면서 한탄만 하고 있담. 그것도 노래를 부른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쯧쯧). 마음이 착한 탓에 끝 없이 용서하기 때문만은 아닐 터. 왜 그랬을까. 그럼 안 되는 줄 알면서. 얘기인즉슨 이러하다. 산과 땅의 신(神)이 장차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어 망할 걸 미리 알고 이를 춤으로써 왕에게 알리었으나 사람들은 이에 별로  마음씀이 없었다. 오히려 깨닫기는커녕 이는 아주 좋은  징조라 하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에만 빠졌으므로 드디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것. 연극은 인생의 거울이라 한다. 시대는 달라도 연극의 겉모양이 조금씩 다른듯이 보인다. 옛적에는 노래와 춤, 문학이 한테 어울려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이었다. 하면, 처용이 추었던 춤은 당시의 어지럽고 힘든 상황들을 노래에 담긴 가락으로 그리 하면 안된다는 속내로, 미쳐 날뛰는 많은 이들에게 다가 선 것은 아닐까. 헌강왕(憲康王)이 개운포(開雲浦)에 갔을 때, 산신과 땅신은 물론이요, 용이 나타났다. 용은 곧 바다의 신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옛말로 용은 '미르·미르기'(훈몽자회)로 불리워진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서는 이들을 일컬어서 산과 바다의 정령이라 적고 있음을 보아 용은 물을 다스리는  위대한 지배자였다. 이렇게 용에 대한 숭배는 농경문화에서 물이 아주 중요한 대상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점치는 일관(日官)의 예언

  산신과 땅신은, 바다의 신은 춤을 추는데 왜 사람들은 보도 알도 못하고 점치는 일관만이 춤을 보면서 그 뜻을 알아차렸을까.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거니와(視而不見) 신이 주는 계시를 아무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눈이 먼 이가 앞을 볼 수 없듯이 향락에만 빠진 이들이 앞으로 다가올 겨레와 나라의 어려움에 관심이 없을 건 뻔한 일이요, 무얼 들어도 들릴 까닭이 없다(聽而不聞). 헌강왕은 몹시 애가 탔다. 동해의 용신이며 땅신, 산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했으나 힘이 미치지 않았다. 단 몇 사람의 옳은 생각과 움직임이 없어 나라가 기울어진 것은  동서고금에 왕왕이 있던 일.  이 어찌 헌강의 시대뿐이었겠는가. 왕은 생각했다. 이다지도 나라가  어지럽고 왜적의 군침  넘김이 심한 것은 모두가 자신의 탓이라고. 이윽고 왕은 오늘의 대학에 맞먹는 국학(國學)에 나아가서 박사들에게 경전 풀이를  들으며 함께 토론하기도  한다. 관심의 주요 대상은 올바른 나라 다스림의  길이었을 게 뻔하다.한편 부처님의 힘을 빌어 나라의 안녕과 겨레의 번영을 위하는 믿음으로 황룡사에 나아가 불경을  듣기도 하였다.때로는 만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하여 멀리까지 시골 나들이를 하였으니 울산 개운포(開雲浦)에 간 것도 흩어진  사람들의 민심을 모으고 무엇인가 나라의 힘을 기르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더러는 농사철을 맞이하여 여름지이를 북돋우기 위하여 여러가지  민속놀이에 자리를 함께 하여  관심을 보이는 헌강왕. 어느  신하 아뢰기를 '백성들이 먹고 입을 게 족한  것이 모두 임금님의  덕'이라고 한다. 왕은  이에 대하여 '그건 당신들의 덕이지 어찌  내 덕이겠소'라 한다.  기울어진 나라의 흐름을 되살리기에 있어 헌강의 정성과 힘이 채 미치지를 못하였다.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나라의 꼴이란 그야말로 울리는 꽹과리요, 십여 걸음의 앞을 못 보고 사냥꾼 쪽으로 달려가는 코뿔소들의 행진 바로 그것이었다.

  처용이 춤을 춘 것이나 왕이 몸소 땅과 바다신에게 제사를 올린 건  모두가 나라와 겨레의 평안함을 빌었던 일. 그러니까 노래와  춤으로 신을 즐겁게 해서(樂神) 복을 받고자 하였다(장진호, 1989, 신라가요의 주원성 연구 참조). 인구어에서도 페스티발(festival)은 '신을  즐겁게 한다'는  데에서 말의 뿌리를 찾는다. 어찌 노래와 춤뿐이리오. 때로는 꽃다운 처자가 이바지의 속내가 되기에 이른다. 이바지를 드릴 때는 반드시  주술적인 말을 한다. 말 속에는  신과 서로 통하는 거룩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으며 마구 바꾸기도 어렵게 된다.  이르러 말은 곧  영혼-언령설(言靈說)이라 한다. 그러니 홍수가 난 뒤에 가래로 보를 막아 보니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지리다도파(智理多都波), 예고된 시련

  헌강왕이 개운포에 갔을 때 동해 용왕에게 제사를 드렸다. 어찌  된 일인가. 동해의 용은 구름과 안개를 일으켜 헌강으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든다. 이 게 헌강이 겪어야 할 시련의 징조가 아니던가. 한편 춤과 노래로서  산신(山神)들이 예언한다. 마치 맥베스의 세 마녀처럼 말이다.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고. 슬기로운 이들은 있으나 다 도망치고 없으므로 나라는 마침내 큰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얘기다. 굿판에 구경 간 사람이 굿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눈독 드린다고  산신의 춤과 노래에만 정신이 팔려 사람들은 흥겹기만 했다.  망할려면 무슨 일이 없겠는가. 자신의 아내를 범한 역신을 용서하는 처용(處容)은 얼굴을 숨기기가 일쑤였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진정한 지도자가 안 보이는 일이 종종 있다. 처용은 어찌 보면 신과 교통하는  일종의 무당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이에 미치지 못함은 어쩔 수가 없었으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물질만능이라.  덮어 놓고 돈만 생기면 그 무슨 짓거리라도 다 하려는 세상 아닌가. 가야 할 사람의 길을 벗어나 오로지 저 하나만 먹고 살겠다고 눈이 뒤짚힌 세월이 되고 말았다. 벼슬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 돈 받아 챙기고 심지어는 나라의 국방이 걸려 있는 무기까지도 속임수가 끼어 들어선 검은 손들과 짜고 온갖 더러운 돈벌이를 하는 터. 이러고서야 무슨 통일을 한다고 사설을 풀어 댄단 말인가. 마음이 없으면 올바른 부처의, 예수의, 공자의 말씀이 제대로 들어 올 까닭이 없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일렀으나 문제는 사람의  마음과 행위가 바르지 못한 곳에 그 무슨 더불어 사는 홍익인간의 꿈이 이루어질까. 우리 겨레는 운명지워진 한 핏줄의  목숨살이들이다. 홍익인간이란 멀고 큰 그리움을 위하여 함께 서는 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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