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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금란굴과 지모신(地母神)

        금란굴 돌아 들어 총석정에 오르니
        백옥루의 남은 기둥 다만 넷이 서 있구나.
        공수의 솜씨인가 귀신이 만들었을까.
        알 수 없는 육면상은 무엇을 형상했나.

  사람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빼어난 통천(通川)의 금란굴이며 총석정을 그리고 있다. 이쯤의 경치이고 보면 말로 표현하기 이전의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은 송강 정철이 관동의 뛰어난 경치를 읊은 '관동별곡'의 한 마디이다. 금란(金欄)이라, 말 그대로 금으로 만든 치마 저고리를 걸친 하늘 나라의 선녀들이 사는 데라고나 할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통천 부분을 보면 금란굴에 관한 안축(安軸)의 글이 소개되어 있다.
  "통주(통천)의 남쪽에 민둥산 봉우리가 하늘의 모습처럼 둥글게 드리웠구나.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아 있으며 봉우리의 절벽엔 한  굴이 있다. 넓이는 가히 칠팔척이 되며 그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구나(深不可測). 안개가 어린  듯하여 늘 어둡도다. 바람이 불면 놀란 듯 파도는 일어  진실로 가까이 갈 길이 없어라."
  이야말로 관음보살이 사시는 곳이 아닌가.  지성으로 빌면 관음의 진면목이 나타나 벽면에 삼삼하고 푸른 새는 날아 신령하기 그지 없어라.(작은 배로 다행히도 굴속에 이르러 보니) 바위에 그려진 모습들이 황금색이어서 마치 가사장삼을 금으로 만들어 입은 관음보살이 웃는 듯 앉아 있나니 연화대가 예가 아닌가. 그렇다. 이는 진실로 부처님의 나타나심이니 존귀하게 받들어  마땅하도다(尊敬則可矣). 마침 내가 굴에 갔을 적 푸른 새가 굴속으로 나명들명 하였다. 뱃사람이 이르기를 이는 바다새라 하였으나 이는 필시 관세음이 응하신 드러냄이라. 굴도 굴이려니와 푸른 새가 내  마음을 흔드는구나. 세상  사람들이 벼랑의 무늬를 아름답다 하여 이를 관음의 모습이라 함은 잘못된 의혹에 빠졌음이라. 어떤 이는 글로 하였으되 바닷가 절벽에는 굴이 깊어 사람들은 이 굴이 관세음의 나타남이라. 나르는 푸른 새의 깃은 비단(錦)과  같다. 게다가 보일 듯 안 보일 듯한 바위 색은 금빛이어라. 이를 보는 이들은 다 관음이 나타남이라고 말 한다. 지금도 어리석은 이들은 헛되이 관음을 찾는구나. 물색에 어리는 모습을 보고자 하나 오히려 밝은 달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비추나니." 흔히 땅의 모습이나 보람을 들어 거기에 음양에 따라 성(性)을 부여한다. 이르러 음양구조라 한다. 생김새로나 분위기로  보아 금란굴은 여성이요 태음의 신이 다스리는 어둡고 신비한 공간이다. 한데 머리글에서 '총석정'은 바다 가운데 솟아버렸으니 이는 분명 남성이요 밝고  억센 양(陽)의 얼안이라고나 해둘까.

  다시 같은 책(동국여지승람)을 보면서 줄거리가 되는  몇 부분을 떠올려 본다. 총석정은 통천군의 북쪽 18리쯤에 자리하고 있다. 수십개의 돌기둥이 떨기처럼 바다 가운데 솟아 모두가 6면인데  그 모양이 마치 옥을 다듬어  놓음과 같다. 4개의 정자가 바닷가에 있으며 총석(叢石)에 가까우므로 총석정이라  하였다. 세간에 전해 오기로는 신라  때 화랑도였던 술랑·남랑·영랑·안상 등이 이 곳에 와 풍류를 즐겼으매 4선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짐작하건대 금란굴의 굴상징으로 말미암아  통할 통자 통천(通川)이  된 게 아닌가 한다. 별도로 부르는  이름에 금양(金壤) 금란 금뇌(金惱) 통주 휴양(休壤)이라 함도 어떤 걸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신증동국여지승람). 흔히 땅이름에서 굴 곧 구멍은 여성신으로, 물신으로 표상되기에  이른다. 이를테면 농수산의 생산을 맡고 있는 지모신이란 말이 된다.이와 관련한 보기로는 어떤 곳이 있을까.


                금성(金城)과 어머니

         금성에 가을이 드니 수 놓은 비단보다 좋다네
         돌자갈밭에도 곡식은 끝 없어

  행정구역이 바뀌어 지금은 김화에 합해졌지만 고구려 때만 하여도 어엿한 군(郡)이었다. 물론 뒤로 오면 현(縣)이 되고 다시 금성면이 되었지만. 금성은 본디 고구려 적에는 모성군(母城郡) 혹은 야차홀(也次忽)이었다. 같은 땅이면서 그 이름이 달라졌을 때 한자 또는 한글의 맞걸림- 대응을 찾아 땅이름의 내력을 찾는 일이 흔히 있다. 여기서 금(金)-모(母)의 걸림은 야차(也次)에서도 찾아진다. 그것은 야차-어시(母)의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당시만 해도 터짐갈이 소리인 치읓이  마찰음(ㅅ)으로 파악되는바  야-여(어)의 '어'를 합하면 '어시(母)'가 됨을 알 수 있다. 쓰이는 글자가 다를 뿐 소리값으로  보아 '금-어머니'의 보기들은 다른 곳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령 금호(琴湖)와 금물(김천)이 그러한 경우이다. 대동지지를 따르면 금호강의 뿌리는 영천의 모자산(母子山) 일명 보현산에서 비롯한다. 자료에 따라서는 금호강의 '금호'는 바람이 불 때 갈대에서 비파소리가 난다고 하여 금호라고 풀이한다(경북지명유래총람). 하지만 금호가 어디 대구뿐인가. 진주의 금산면에도 창원의 동면에도 그 밖의 고장에서도 금호가 있음은 땅이름 풀이에 의심을 품게 한다. 한자의 옛 소리를 칼그렌의 <중국고음사전>에서  보면 '금 검 감(錦 金 今 琴 儉 甘)'은 거의 같은 소리로 난다. 한자로 우리말을 적음에 있어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어 적었으니 앞의 것은 뜻빌림(訓借)이요, 뒤의 것은 소리빌림(音借)이라 했다. 하면 금호의 '금'은 금성의 '금(金)'과 마찬가지로 땅 구멍(굴) 어머니신-지모신 믿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한다.

  다음으로 금산(김천)의 경우를 살펴보자. 금산의 옛 고을은 어모(禦侮)현이라 부른다. 또 달리 금물(今勿) 감물(甘勿) 혹은 음달(陰達)이라 했다(대동지지). 이를 간추리면 '금-어머니(禦侮)'의 서로 같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사투리로 보면 어머니(전지역) 어무이(예천 의성 선산 칠곡 고령) 어머이(횡성 원주 홍천) 엄마(강원 전남북 예천 포항) 어메(군위 김천 금릉)  옴마(칠곡 대구 달성 경산 함안) 옴매(통영 충무) 오매(진안 무안 김천 정읍) 오메(군위 김천 고령)와 같은 말이 쓰인다. 지모신 곧 어머니와 같은 생산신 숭배는 고조선으로 거슬러 오르면 곰토템 즉 곰신앙에서 그 밑바탕이 있음을 알게 된다.  중세어 자료를 보더라도 그러하다. <용비어천가>에서는 '곰'이 고마로 드러난다(熊津고마나루). 고마는 그 속성으로 보아 아주 경건하게 흠모해야 할 대상으로 떠오른다(고마敬고마虔고마欽<신증유합>).곰신앙은 우리나라뿐이  아니고 몽고와  시베리아를 에워싼 북쪽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던 원시 신앙이었다. 일부 알타이 말에서는 지금도 '곰신-조상신-영혼'의 뜻으로 쓰이고 있음은  물론 곰신앙의 문화적 실증을 보여 주는 셈이라고 하겠다. 곰과 우리의 역사는 어떤 걸림이 있는가. 아다시피  삼국유사 에 따르면 고조선 시대에 곰과 호랑이가 다투어 사람되기를 힘쓰다가 마침내  곰은 사람의 몸을 입어 환웅을 만나 단군을 낳게 된다. 단군왕검의 '검(儉)'은 고대 한자음으로는 '금'이라 하거니와 결국 '금-'계통의 땅이름은 새롭게 개척한 청동기 문화를 드러낼 뿐 아니라  원시신앙이었던 곰신앙을 표상한 것으로 보인다. '곰(금)'의 어머니신 상징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아니하다.  경상도의 웅천(熊川)은  웅기(熊只)에서 비롯하였으며 경덕왕 16년(757)에 이르러 웅신(熊神)으로 이어지며  이는 본디 금주(金州)에 속하는 고장이었다.  마주걸림을 간추리면  '금(金)-웅(熊)[神]'으로 뭉뚱그릴 수 있다. 이는 충남의 공주도 그러하다(금강(錦江)-웅천(熊川)(고마나루)-공주(公州)<대동지지>).

  이제 남은 건 '금-엄(어머니)'의 관계다. 알타이말에서  기역(ㄱ)이 말의 첫소리 혹은 끝소리에서 약해져 떨어지는 현상을 참고로 하면 '금(곰)→흠(홈)→음(옴)/검(굼)→험(훔)→엄(움)'으로 그 소리가 바뀌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의 시골말 '옴마 오마니 엄마 움마'는 바로  같은 말들이다. 어머니는 생산의 바탕으로 굴이요, 물이다. 땅과 물을 잘 가꾸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연의 축복을 누린다. 금성을 달리 통구(通溝 通口)라 하며  물들이 고장이라 하였다. 물과  땅을 경건하게 믿고 이용하며 살아 갈 때 역사의 능선을 타고 시련을 겪는  우리들에게 지모신은 늘 함께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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