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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울 안의 복숭아나무

        엊그제  겨울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도리행화는 석양리에 피어 있고
        녹양방초는 세우(細雨)중에 푸르도다
       (정극인의 '상춘곡'에서)

  움츠렸던 겨울을 보내고 봄이 어울어진 한 폭의 그림이라 하면 어떨까. 복숭아꽃은 옛부터 우리의 산과 들에 스스롭게 자라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울안의 도화나무라. 다른 집이나 문 밖의 복숭아 나무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그 집에 사는 처자들이 바람이 남을 경계한 것이다. 하필이면 복숭아꽃뿐이랴. 환경에 따른 유혹이나 충동에 휩싸이지 말라 함이 아니겠는가. 담 대신 나무나 풀 따위를 얽어서 집을 둘러 막거나 어름을 가르는 걸 울 또는 울타리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우타리(하동·장성·나주) 우따리(거창·양신) 울다리(함안·창녕) 울딸(안동·영천)이라고 한다. 울과 우리는 같은 뜻으로 쓰인다. 우리 안에 짐승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소·염소·돼지·닭울이 된다. 얼안의 크기로 본다면 울과 우리는 다르지만 한정된 공간을 드러냄에는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경우, 너와 나를 함께 이를 때 쓰는 우리와는 어떻게 되는가. 더러 얼안을 가리키는 말이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는 일이 왕왕 있다. 당호(當號)를 쓴다. 신사임당이 그렇고 택당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일정한 얼안이 곧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경우다. '그대 있으매'의 그대도 마찬가지. 본디는 '그 곳'의 뜻이지만 '그대'는 오늘날 아름다운 운치까지도 드러내는 대명사로 쓰인다. 일정하게 한정된 우리 안에 짐승들이 새끼를 치고 살듯이 너와 나를 함께 이르는 '우리'는 사람을 이를 경우 공동운명체요, 겹셈개념이 된다. 흔히 언어의 역사에서는 인칭대명사의 빈 자리에 들어가는 말을 일러 기움법에 따른 말이라 한다. 일정한 얼안에 사는 이들, 더욱이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혀진 사람들을 종종 '우리'라 한다. 마치 당호나 택호(수원댁등)가 그 사람을 부르는 말이 되듯이 말이다.

  그럼 우리 또는 울의 바탕뜻은 무엇일까. '우리'에서 음절이 줄면 '우리→울'이 되니까 소리의 마디 짜임은 '울'이나 '우리'모두가 같다. 음절의 끝소리가 바뀌면 '울-ㅇ-웃'이 되는 데는 옛말의 우(ㅎ)(석보상절6.17)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끝소리 (ㅎ)은 말이 변하는 길목에서 여러갈래의 소리로 바뀌어 쓰이는 경우가 있으니 '울-웃-ㅇ-우(ㅎ)'이 모두 하나의 마디에서  새끼를 친 것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특정한 곳에 사는 이들이나 안채가 몸이라면 그 몸 위에 옷처럼 걸쳐 두른 게 우리(울-웃-우(ㅎ))란 걸림이 된다고 보면 어떨까. 우리(울)와 걸림을 보이는 말의 겨레로는 논물이 빠지도록 뚫은 '우리구멍·우리네·우리다·우릿간' 등의 말들이 쓰이며  한자말까지 한다면 더  많은 낱말의 겨레들이 있다.


        기다림의 미학(美學)

         달하 노피곰 돋으샤
         어기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기야 어강됴리
        ('정읍사'에서)

  기다림은 때로 무지개처럼 피어 오른다. 기다리는 그 순간이나 마음은 기다림이 없는 삶보다는 아름답다. 멀리 떠난 임을 생각하는 처자가 밝은 달을 쳐다 보면서 임에게 행여 무슨 어려움이 없을까 노심초사 애틋한 그리움과 함께 기다림의 미학을 꽃 피운 <정읍사(井邑詞)>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얼마를 기다리다 못해 망부석이 되었을까(登山石而望之). 고려사에 따르면 장사하러 나간 남정네가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는 밖에서 남편이 무사하기를 달에 빌었다고 한다. 기다림은 믿음을 그 바탕으로 한다. <서경별곡>에서는 변함없는 믿음은 마치 구슬이 떨어져 깨어져도 끊어지지 않는 끈에 비유되고 있다. 구운 밤에 움이 터 오르도록, 옥으로 지은 연꽃 세 묶음이 피도록 비는 그 애틋함과 기다림. 어디 그뿐이랴, 죽음 뒤에 이르는 곳이 어딘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믿고서 바라는 신앙이 추구하고 찬송하는 공간과 영원무궁한 시간에 대한 기다림이 없다면 어떨까. 적어도 믿는 이들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언어는 문화를 되비친다 하였거니와 기다림이란 말이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삶과는 어떠한 걸림이 있는 지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한다. 사람의 슬기가 그리 펴나지 못했던 때를 떠올려 보자. 밖에서 일 하다가 사나운 짐승에게 시달리면서 먹거리를 마련하여 집으로 돌아간다. 더러는 모진 짐승의 밥이 되거나 이해를 달리 하는 겨레들에게 잡혀서 죽기도 하였겠지만. 부모와 어린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하다가 불운의 삶을 마무리한 사람들. 그것도 모르고 남편이 탈 없이 돌아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아내며 어버이의 초조함이  어떻겠는가. 옛 적  우리 선조들은 굴살이와 나무위에 둥우리살이를 했으니 나무기둥이나  굴의 어귀에서 일 나간  사람을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두시언해 와 같은 자료에서는 오늘날 말의 기다리다를 '기들오다'로  적는다. 이 말은, 바탕이 되는 더 작은 단위의 말로 나누어 보면 굴살이문화와의 걸림이 있음을 암시해 준다.'기들오다'는 말의 짜임새로 볼 때 '긷다'와 '오다'가 어우러진 낱말이다. 두 개의 낱말 가운데 '긷다'가 알맹이로 보인다.'긷다'는 우물이나 냇물 같은 데서 물을 퍼다가 그릇에 담는 동작을 이른다. 이를 다시 쪼개어 보면 '긷다'는 명사 '긷'에 동사의 씨끝인 '-다'가 얼러 붙어서 이루어진다. 그럼 '긷'이란 무엇인가. 훈민정음해례 등의 자료를 보면 기둥의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긷爲柱). 그러니까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줄기-집으로 이르자면 기둥에 값한다고 하겠다. 기둥도 따지고 보면 긷에다가 접미사(옹∼웅)가 붙어 이루어진 말이니 모두가 '긷'에서 비롯한 말들의 겨레에 든다. 말이 갈라져 쓰이는 데에는 한 음절의 첫소리와 끝소리가 바뀌어 이루는 경우가 있으며 가운데의 모음이 바뀌어 낱말이 갈라지는  일이 있다. 긷의 경우 말의 끝소리 자음이 바뀌어 이루어진  형태로는 긷을 포함하여 '긷-깃-길'이 함께 갖는 의미상의 걸림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기다림과 보금자리

  모든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개성이  있듯이 소리마다 느낌의 모양 곧 음상(音相)이란 게 있다. 디귿(ㄷ)은 리을(ㄹ)에 견주어 안으로 굳어지는 느낌을 주고, 리을은 흘러 가는 물과 같은 정감을 불러 일으킨다. 한편 시옷(ㅅ)은 시끄러우며 이의 모양처럼 솟아 오른 느낌을 준다. 이와  걸림을 지어 긷-깃-길을 풀어보자. 긷(柱)은 보금자리-둥우리가 앉을 수 있는 굳건한 나무기둥이요, 받침이 된다. 받침은 반드시 흙이나 돌 위에 고정되면 될수록 단단해진다. 기둥 뿌리를 뺀다고 하거니와 기둥은 삶의 서식처인 보금자리의 뿌리요, 바탕인 것이다. 길(道)의 경우 중세국어에서는 길이·이자·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높이·구덩이의 통로·옷섶·따위의 폭 등과 같이 여러가지 뜻으로 쓰이었다. 본디 길은 사람이 다니는 통로·길이가 밑바탕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광산구덩이 안의 통하는 길을 길갈래, 물건이 높이 쌓인 모양을 길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보금자리인 굴이나 나무기둥 위에 자리잡은 새둥우리 같은 깃으로 통하는 얼안이 바로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흔히 길 가는 나그네에 비유한다. 그렇다. 아침에 집을  나와 이런저런 모양으로 일을 보고는 다시 자신들의 천국으로 돌아간다. 해서 같은 길을 걷노라면 삶의 조건을 풀어가기 위하여 우린 다투며 때로는 엄청난 갈등이나 선택의 길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해 내기도 한다. 마치 그 길에서 아주 오래도록 홀로 온 차지라도 할  듯한 모습으로. 하루길 가노라면 돌부리를 차기도 하며 웅덩이에 빠져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필요도 없는 남의 짐을 지고 때로는 남의 등에 엎혀서 하루의 해가 지도록 길을 가야 한다. 자기 앞에 놓여진 삶의 길을 제쳐 놓고서 말이다.

  이 길을 따라서 오가며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오늘날의 생기는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듯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심리·물리·생물적인 길에의 탐색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현대를 정보의 시대요, 전자시대라고 한다. 정보망의 오고감이며 전자회로의 모두가 다 길의 개념이 터를 내린 열매들이라고 할 것이다. 저승으로 감에 있어 그 곳이 지옥이든 극락이든 정해진 자신들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우리들의 선조들이 살아온 삶의 긴 여로이기도 하지 않은가. 옳은 길을 바르게 가야 한다. 제갈 길을 바로 걷지  않으매 우리의 삶터는 차츰 병  들어 가고 공동 선(善)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마치 자신이 걷는 길이 신의 부름을 받은  길인 것 같이 우리는 밝고 참된, 아름다운 길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면서 걸어 가는 거다. 길을 중심으로 하는 낱말의 겨레붙이로는 길동무 길갈림 길길이 길갈래 길들다(같은 길에 들어서듯 친숙해지고 잘 따르다) 길속(특정한 공간이나  영역)등의 보기를 들 수 있다.

  그럼 깃(巢)의 경우는 어떠한가.  훈몽자회 등에서는 새들의 집을  뜻하고 있지만 여러가지의 뜻으로 쓰이었다. 예컨대 짚이나 대싸리로 만든 둥우리·새 날개에 달린 털·짐승 우리에 까는 짚이나 마른 풀·차지할 자신의 몫 등이 다양한 쓰임을 보이고 있다. 분명 옛말글에서는 새의 집을  가리켰다. 새의 집은 나무가지나 숲속의 어느 부분에 둥지와 같은 모양으로 보금자리를 튼다. 진서(晉書)의 기록을 따르자면 우리의 옛 조상들인 동이족들은 여름에 나무 위에서 살았다(夏則巢居)고 한다. 즉  소거(巢居)살이를 하였으니 둥우리에 가까운 새집과 같은 '깃'이었다는 말이 된다. 오늘날의 아파트들도 새집 같다면 어떨까. 아마 사람들에게는 하늘을 날고 싶은 그리움이 늘 있었을 거요. 결국 새집이나 사람이 사는 나무  위의 집이나 모두 '깃'으로 드러낸  셈이 된다. 하면 오늘날 우리가 쓰고 사는 집이란 말과 깃은 어떤 걸림이 있는걸까.

        집은 깃에서

  옛말글에서는 명사에 동사화접미사(-다)가  붙어 동사가 되는  일이 많은데 '깃다'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깃다는 본디 풀이 무성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 말에서 갈라진 명사형이  '기슴'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기슴, 기심이 되고 지역에 따라서는 입천장소리되기를  입어 지슴 지심이라고도 한다. 다시 이 말이 모음 사이에서 시옷(ㅅ)이 소리가 약해져 떨어지면 기음-김-짐의 형태로 말의 모습이 달라진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논이나 밭의 잡초를 매는 일을 김매기(짐매기)라 하는 걸 보면 본 바탕이 모두 풀에서 나왔음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집과 고리 지어 김 짐을 좀 더 살펴 보자. 말의 끝소리 자음이  바뀔 경우, 같은 계열의 소리로 교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김(짐)의 미음(ㅁ)이  'ㅁ-ㅂ-ㅍ'으로 바뀌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하면 '김(짐∼집∼(집:짚))'으로 말의 소리가 달라지면 곧 오늘날 우리가 쓴 '집'의 말꼴이 이루어짐을  알게 된다. '집을 짓다'고 할 때 구개음화 이전의 상태로 돌리면 '깁∼깃'이 되는 것이다.'집'은 나무와 풀로써  만들어 놓은 완성의  상태요 그 말미암음은 풀이거나 나무임을 알아 차리게 된다.

  그 풀의 열매는 먹거리요, 그 잎이나 실감은  우리가 걸치고 다니는 옷감이 된다. 그 줄기인 나무기둥-목재들은 우리들의 집을 짓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풀숲은 생존의 터전이요 바탕이다. 이를 가꾸고 기르지 않을 때 묵숨살이들이 편히 쉴 곳이 어디인가. 삶의 보금자리인 영원한 피안의 집을 그리워 함은 기다림을 텃밭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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