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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밥이 하늘

        덜커덩 방아를 찧어서
        거친 밥일망정 맛있게 지어 보세.
        부모님께 드린후에 행여 남는 밥이 있으면 내 먹어 볼꺼나.

  지은 때나 지은이를 알지 못하는 고려시대의 방아 찧는 노래(相杵歌)다. 열성으로 일을 해서 방아를 찧어 밥을 지어도 자신이 먹을 밥이 넉넉지 않음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밥을 하늘이라 한다. 금강산 구경이 좋기는 하지만 밥을 먹은 후라야 제 맛이 나는 법. 오늘의 세상살이와는 참으로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 때문에, 남아도는 오래된 쌀  관리 때문에 일천억원을 웃도는 돈을 써야 하지 않는가. 지금도 우리가 사는  지구 어디에선가는 먹거리가 없어 굶어 병들어 죽는 사람들 소식이 자주 신문에 오르내린다. 우리가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한 것은 겨우 이십여 년. 따지고 보면 쌀은 남아 도는데 남의 나라에서  많은 양의 먹거리를 사들여야 하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정말 잘못이지. 시간을 거슬러 고려 중엽때의 문헌인 계림유사를 볼라치면 방아노래에서처럼 엄청나게 먹거리 곧 밥거리가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 논에서 벼와 함께 자라지만 잡초로 여겨 뽑아버리는 풀을 '피'라고 한다. 이 피로 물건 값을 정해 물건을 서로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에는 옥수수, 피, 벼, 수수, 호밀, 콩을 통틀어서 여섯가지 쌀이라 하였거니와 곡식의 낟알을 모두 쌀이라 하다가 지금은 벼의 열매껍질을 벗긴 알맹이만을 이른다. 이것만으로는 먹거리가 충족되지 않았을 뿐더러 정착하여 여름지이를 한 뒤에도 나무열매나 풀뿌리로 모자란 부분을 때워 나갔던  것이다.

   나무열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밤'이라 하겠다. 삼국유사 권4에 전해오는 밤나무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원효의 어머니가 해산기가 있을 즈음 지금의 경산땅 불지촌이란 마을의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미처 집에 닿기도 전에 아기를 낳게 되었다. 남편이 밤나무에 옷을 걸어 막아주었다 하여 이 나무를 사라수(詐羅樹)라 했으며 열매 또한 이상하여 '사라밤'이라 불렀다. 이곳에 있던 절을 주관하는 사람이 절머슴에게 저녁 끼니로 밤 두개씩을 주었다. 절 머슴이 그 양이 적음을  관청에 알리자 관원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그 밤을 가져다가 알아보았다. 밤 한개가 바릿대에 하나 가득 차므로 오히려 밤 한개씩만 주라고 판결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율곡(栗谷) 곧 밤골이라 하였으며, 원효가 집을 나온 후 그 집을 절로 삼아 초개사(初開寺)라 하고 사라밤나무 곁에 절을 지어 '사라사'로 부르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밤과 대추 복숭아 오얏 살구를 5과라고 불렀으며, [청산별곡]에서는 머루·다래를 먹고 살아가는 산 속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낸다. 이 밖에 풀의 열매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물론 여기서는 피와  벼를 빼 놓고 나무열매에 맞먹는 경우를 살펴보자.

  삼국유사  권2에 보이는바, 저 유명한 [서동요]의 바탕글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서동은 늘 '마(저)'를 캐어다가 팔아서 생계를 이었다. 선화 공주를 사모한 나머지 머리를 깎고 서울로 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준 대가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였으니 이 노래가 바로 [서동요]다. '마'는 덩이뿌리로서 약용으로 쓰이며 뿌리에서 나는 싹을 먹기도 한다. 지금은 약용으로만 쓰이지만 옛 기록으로 보아 식용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물 속에서 자라는 풀로서 '마름'이라고도 하며, '말'이라 하는 경우는 어떤가. 훈몽자회를 따르자면 민물 또는 바닷물에서 자라는 풀을 '말[m l]'이라 한다. 문종 임금이 풀이해 적기로는 '말왐'이라 하였으니 '머구리밥 빈(頻)'을 '말왐 빈'으로 드러내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지금도 마름을 '말밤'이라 이르니 '말밤→말왐(말암)'으로 바뀌어 간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글에 이르기를 물에 잎이 뜨는 말은 조(藻)요, 가라앉는 것은 빈이라 하였다. 유씨물명고에서는 마름 또는 말밤을 '물밤(水栗)'이라 하였으니, 그럼'머구리밥'의 '밥'과 말밤의 '밤' 사이의 걸림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끼니로 먹는 모든 음식을 '밥'이라 한다. 더러는 동물의 먹이(미끼)로 풀이하기도 하며, 좁혀서 쌀·보리·좁쌀 따위의 곡식을 씻어서 솥 같은 것에 안치고 물을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도록 끓인 음식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니까 크게 보아 개구리 곧 머구리밥이나 사람이 먹는 말밤이나 모두가 밥이  되기에 충분하다.

             '밥'은 '밤'에서

        밥을 만드는 게 심
        그게 진짜 심이지
       (조재훈의 '물로 불'에서)

  글쓴이가 보기로는 '밥'이란 말은 '밤'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연구(강길운,1990)에서는 지리지의 마주걸림(栗木→冬斯)을 떠 올려, 터키어 계통의 밤나무-거스다네(kestane)가 쓰이고 있음을 보이면서 지금의 밤과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방언에 따라서 겨울을 일러 '겨슬·거실·겨실·기실'로 함을 보면 그럴듯한 대응이 보인다. 밤송이에 가시가 돋히듯이 생긴 말밤(마름)을 '거ㅅ연밥 검)이라 함은 더욱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한다. 우리말을 중심으로 하면 밤송이에 가시가 많이 돋혀 찔리면 아픈 것처럼 겨울은 춥고 지내기가 어려움을 뜻하는 걸림을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겨슬(거슬)이라고는 하지도 않으며 모두 밤이라 부른다.  나무열매로서 밤이나 물풀 열매로서 말암(말밤·마름)은 모두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알맹이를 요리하거나 날것으로도 먹게 된다. 물론 유씨명물고 에서도 그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럼 밤이란 말은 무엇을 벗겨낸다는 말에서 온 것은 아닐까. 우선 '밤'은 밤나무열매·놋그릇을 부어 만드는 틀, 어린 송치가 어미 뱃속에서 먹고 자라는 물결이란 뜻 등으로 두루 쓰였다. 우리말 방언을 보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길게 소리나는 '바암(대구), 바:ㅁ(경상도)'과 같은 소리꼴들이 눈에 띈다. 벼나 보리가 채 익기도 전에 이삭을 훑는 일을 '풋바심'이라 한다. 본디 바심이란 집 지을 재목을 연장으로 깎고 파고 하는 일을 말한다. 방언에 따라서는 '바슴·바심'이라 한다. 신증유합 같은 옛말글 자료에서는 '부수다(碎)'는 뜻으로 자주 쓰였다. 결국 불필요한 부분만 들어내는 것이다. '바스러지다'나 '바심'은 말의 됨됨이로 보아 겉(表·外)을 뜻하는 '밧(벗)' 동사파생접미사 '∼다'가 붙어 된 말들이다. 한마디로 '벗겨냄 떨어냄 어떤 틀에서 벗어남'으로 뜻의 보람을 풀이할 수 있다고 본다. 하면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의 풀이와도 크게는 같은 흐름에서 그 쓰임을 간추릴 수 있다.

  이제 '밤→밥'이 된 과정을 따져 보자. 형태가 갈라져 쓰이는 틀 가운데 모음이나 자음이 바뀌는 것이 으뜸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ㅁ→ㅂ'으로 바뀌어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그럼 낮과 밤의 '밤'은 어떠한가. 먹는 밤의 소리가 더 길다. 바탕은 같을것으로 보인다. 낮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밤이 되고 밤에서 낮이 비롯된다. 이러한 밤의 어두운 틀 속에서 빛을 인식하게 되며,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 빛깔도 먹는 밤과 크게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검은 색은 신의 영지요, 큰 가능성이기도 하다. 나무열매로서 밤의 생산이 중시된 것은 땅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가장 많은 예는 밤골 밤고개 밤나무 밤밭 밤실 밤가지 등이다. '마-말'과 '벼-피'의 풀이를 덧붙이자면 '마'는 ㅎ끝소리명사로 아예 윗말에 붙어 '마(ㅎ)-맣-맛-맏-말'로 발달한 것이요, '벼-피'는 같은 '비'에서 비롯한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벼를 '비'라고 함이니, 거센소리가 없던 때에는 피를 '비'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 한알이 귀신 열을 쫓는다 했거니와 음식을 소중하게 여길 일이다.

                몸과 묶음

        이 몸이 생겨날 적 하늘의 뜻을 따랐으니
        일평생의 일을 하늘이 모를까
        이내 몸이 젊어 있고 임께서 날 아껴주시니
        이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어디에다 비길까.

  참으로 찐더운 사랑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그리움이 이에 이르면 가히 정겨운 그 무엇이 있을 듯하다. 널리 읽히는 송강이 지은 <사미인곡>의 머리글이다. 글의 끝부분에 가면 몸이 죽어 벌나비가 되어 임의 옷에 옮아 다니면서 꽃 향기를 전한다는 마무리를 하고 있다.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 제 몸을 잃을진대 온 누리의 물질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한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흔히 왜 사느냐고 묻는다. 여러가지의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생물은 제몸보존과 씨알보전의 목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여기 보존의 중심은 '몸'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 주는 이를 몸알리-지기(知己)라고 하거니와 몸이란 여러가지 복합적인 쓰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옛부터 몸의 관리를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신(身)·언(言)·서(書)·판(判)이라 하여 몸의 생김새를 사람 저울질의 큰 자로 삼아 왔지 않은가. 살아가는 우리네 둘레와 몸을 고리지어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좋은 음식을 찾기도  하며 온갖 옷감이나 집 지을 재료들을 마련하기에 매우 바쁘다. 하루도 걸름이 없이 먹는 먹거리도 그 뿌리는 모두가 목숨이 담기는 몸들이다. 쌀이 그렇고 맛있게 먹는 고기들이 그러하다. 본시 사람 때문에 태어나 일생을 마치는 목숨살이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사람의 목숨이, 몸이 값진 것이라면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먹고 살아 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양만큼의 물질은 있어야지. 다른 생물의 몸이나 목숨을 어떤 즐김의 대상으로 함은 분명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죄업이지).

  '몸'이란 무엇인가. 짐승이나 사람의 머리로부터 발까지 그에 딸린 모든 부분을 일컬어 몸이라 풀이한다. 우리말 '몸'에 드러난 겨레들의 깨달음 바탕은 무엇이며 예서 비롯하는 말들의 겨레로는 어떤 형태들이 있을까. 몸을 이루는 부분으로는 제각기 다른 구실을 하는  많은 기관들이 있다. 눈 코 귀 입이며 머리로 이루어지는 얼굴,목 가슴 배 허리 궁둥이 등의 몸체부분이 있으며 여기에 나뭇가지처럼 달려 있는 팔 다리며 이에 붙어 있는 손 발은 말할 것 없고 다시 이에 딸린 손발의 가락들이  있다. 사람의 몸을 일러 작은 우주라고도 한다. 침뜸을 주로 하는 한의학에서는 침 놓는 자리를 경혈(經穴)이라 이른다. 그 수는 지구가 자전하는 삼백육십여개로 본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상당한 마주걸림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니까 우리 몸은 크고 작은 부분들이 모여 유기적인 걸림을 조화있게 이룸으로써 목숨 보전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과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뼈만 해도 그렇다. 해부학에서는 우리 사람의 몸에는 약 200개 가량의 뼈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뼈는 석회질과 아교와 같은 교질이 단단하게 엉겨 붙어 소화기 등의 내장을 보호하고 운동의 거멀못 노릇을 한다. 쇠로 만들어진 못을 박아 두 개 이상의  물질을 결합시킨다. 이를테면 몸의 뼈가 못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몸은 여러 부분들이 질서 있게 모인 아주 정교한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이란 모인 것

  그러면 작은 부분들을 모아만 놓으면 목숨살이가 가능할까. 그렇지는 않다. 가령 집의 경우를 더듬어 보자. 나무와 벽돌과 기와 등 필요로 하는 물질이 있다고 해서 집의 기능이 살아 오르지 않는다. 요컨대 몸도 보다 작은 부분들이 일정한 질서의 흐름을 따라 결합되고 해체되며 이러한 신진대사가  되풀이 될 때에만 삶의 교향악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되지 않겠는가. 하면 '몸'이란 말이 한데 어울려 이루어진 '결합체'란 말인가. 그러한 말의 발전과정과 속사정은 어떠한가. 우선 '몸'이 쓰이는 시골에 따라서 조금씩은 다른 경우를 들어보기로 한다. 예천·문경 등지에서는 몸떵어리, 경상 전라 강원도의 일부에서는 몸뚱아리, 전남 영광에서는 모뚜이, 양산에서는 몸디, 남원·임실·예천 등지에서는 몸떼이, 산청 등지에서는 몸띠이라고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풀이가 다르겠으나 몸떵어리가 상당한 실마리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이르자면 몸떵어리는 몸과 덩어리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덩어리는  덩이라고도 하는바 작은 부분들이 모여 이룬 떼를 가리킨다. 몸데이란 것은  몸덩이의 덩이에서 모음이 바뀌어 일어남이요, 몸띠이(몸띠)는  데이→디이(디·띠)와 같이 모음이 쉽고 편한 전설모음으로 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몸'이 '모으다'에서 비롯되었다면 어떨까. 여럿을  한 곳으로 오게 하거나 돈이나 물건을 저축하는 일, 또는  담 등을 쌓아 올리거나 나무의 여러 쪽을 짜맞추어 배를 만드는 움직임을 통틀어 '모으다(모다)'라 이른다. 하면 움직임을 드러내는 동사의 어간 '모으∼'에 명사형  어미(ㅁ)이 붙어 음절이 줄어지면 '모음→몸'이 되어 긴 소리로 내게 된다. '모으다'는 기원적으로 같은 뜻을 드러내며  이륜행실도·노걸대언해 등에 보이는 '못다'에서 발달해 온 낱말겨레가 아닌가 한다. 짐작하건대 '못'에 조음소 '으'와 동사화어미(-다)가  붙으면 '못으다→모스다→모 다→모으다'로 된다. 그럼 여기 '못'은 무엇을 드러내며 '모으다-모음-몸'의 몸과는 어떤 걸림이 있는 걸까. 훈민정음해례·아언각비 등의 자료를 보면 연못의 못(池)과 쇠로 만드는 못(釘)과 같은 뜻이라 적고 있다. 앞의 경우 넓고 깊게 팬 땅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이다. 못은 다른  곳보다 낮으니까 늘 다른 곳에서 물이 흘러 들어온다. 곧 여러 줄기의 물들이 함께 모이어 이루어진다. 뒤의 경우는 두 물건을 하나로 결합시켜 모이게 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옛글에서는 못이 'ㅁ'으로도 적힌다(왜어유해·훈몽자회). 오늘날의 '모두·모든·ㅁ다(제주도)'와 같은 말은 예서 비롯한 말의 겨레들임을 알 수 있다.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육천명이 ㅁ이었다'의 'ㅁ이다'도 같은 경우라 하겠다. 지역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모이다'의 경우 '모둔다(상주·산청·광양)  못다(정선·제천) 모당께(마산·함안·창녕) 모단다(부산·마산·함안)'의 말들이 쓰이는데 'ㅁ-'계가 중심을 이루는바 상당히 미더운 보기들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못-ㅁ은 어말자음의 바뀜에 따른 것이요 뒤로  오면서 갈래져 별개의 말로 굳어지기에  이른다. '못'이 모음 곧 모여서 이룸이란 뜻을 드러냄과 관련하여 모음이 바뀌면 못은 뭇이 된다. 지금도 장작이나  잎나무를 한 묶음씩 작게  추스려 놓은 셈의 단위를 '뭇(束)'이라 하지를 않는가. 혹은 세금을 받을 때 계산하기 위한 땅 넓이의 단위도 뭇이라 하며 수효가  많음을 드러낼 때에도 '뭇-'이란 말조각을 쓴다. 잇몸을  왜어유해 같은 말에서는 '닛무윰·닛므음'이라 적고 있다. 여기 '무윰(므음)'의 소리마디가 줄어지면  '뮴(믐)'이 되는데 모두가  '몸'의 또 다른 변이형이라 보면 좋을 듯하다.

                '무우'도 묶음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부른다
        ('사우'에서)

  부는 봄바람에 흐드러진 야생 무꽃 - 청라꽃을  보노라면 벌써 내 지나쳐 버린 유년의 뜨락이 눈에 선하다. 일상으로 우리는 밥과 함께  배추와 무우김치를 먹는다. 이 때 '무우'도 '뭇'과 걸림이 있는 말로 보인다. 시골말의 쓰임을 보면 흔히 무시·무수·무꾸와 같은 말이 많이 사용됨을 알 수 있다. 500년전 무렵의 두시언해를 보더라도 무우를 '무?'라 하였으니 이를 한데 간추리면 '무수(무시)-무?-무우'와 같이 됨을 알겠다. '뭇'과 무우는 어떤 걸림이 있을까. 본디 무우는 겨자과에 딸린 한 해 또는 두 해살이 풀로서 잎은 뿌리에서 무더기로 모여 나고 자줏빛 혹은 흰빛의 네잎 꽃이 '무더기'로 피어 올랐다간 지고 그 자리에 열매들이 무더기로 꼬투리 안에 열린다. 시골말에서 무우를 '무꾸'라 했거니와 이는 '뭇(못)'이 이른바 기역(ㄱ)으로 끝이 나는 말조각과 같이 쓰이어 특수변화를 하는 명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흔히 기역 종성체언이라 하는바, 때로는 위엣 말의 받침이 되어 아예 굳어져 녹아붙기도 한다. 가령  '뭇(ㄱ)다>ㅋ>묶다(묶음)'도 그러한 보기라 할 것이다.  시옷이 기역에 거꾸로 닮아  완전하게 같은 소리로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우리의 몸이 여러 부분을 한데 얼려 한 인간의 영혼을 기르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거룩한 자연도 하나의 몸-곧 공동체인 것이다. 하물며 우리의 이웃이나 배달겨레로서 같은 핏줄을 나눈 남과 북의 말미암음은 같은 한아비의 몸에서 갈라져 나왔으매 우리의 몸, 우리 겨레는 하늘이 섭리하는 한 묶음이다. 세상살이란 게 작은 묶음에서 큰 묶음으로 이어지는 고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어울림. 때로는 삶과 죽음의 모습으로 달라지기는 하나 본디 그 또한 한 몸에서 비롯한 것을. 나 혼자만이 어떻게 해 보겠다 함은 마침내 해 볼 수 없다는 물음과 고뇌에 부딪히고 마는 것을. 그래 세상은 한 몸이야, 한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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