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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김포와 휴전선 - 애기봉에 울려퍼지는 어울림의 합창

  본래 경기도 김포땅이었으나 지금은 서울로 편입된 강서구 가양동, 이 양천 고을을 끼고 흐르는 한강을 투금탄이라 부른다. 이른바 황금을 던져 버린 여울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성산 이씨가보에 전하는 이 형제의 이야기는 짙은  교훈성으로 인해 한때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전설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새삼 되새겨 보아야 할 이 전설을 두고 현지인들은 김포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믿는다. 형제애를 위해 금을 버린 포구, 이 전설이 너무 아름답기에 그대로 믿고 싶지만 문헌 기록상으로는 그렇지 않음이 유감이다. 그 옛날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지배했을 때 이 일대를 검포라 했고, 신라 경덕왕 때 이미 김포라 적고 있다. 전설의 주인공이 "다정가"의 시조의 작가로 알려진 이조년과 그 아우 이억년인데, 이들이 고려 말 인사들이고 보면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검"이나 "금"은 황금을 뜻하는 금이 아니라 방위상 뒤쪽에 있는 포구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니 의미상으로도 역시 그렇다. 금을 버린 포구라면 김포가 아니라 "금포"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김포는 서해안으로 돌출한 반도여서 지금은  그 넓은 개펄이 황금 옥토로  변모했으며, 더욱이 이곳에 공항이 생겨 우리나라의 관문이 되었으니 황금의 포구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양천골의 궁산에 오르면 강 건너편으로 마주 보이는 행주산성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행주라 하면 우선 임진왜란 때의 맹장 권율과 행주치마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행주치마의 어원 역시 아름다운 착각이다. 금을 버린 포구여서 김(금)포가 아니듯 행주대첩에서 부녀자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랐다 하여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긴게 아니다. "행주" 또는 "행자"는 본래 깨끗한 걸레를 뜻하는 불교 용어로서 행주대첩이 있기 훨씬 전의 문헌에서도 발견되기에 하는 말이다. 행주산성 옆을 스쳐 행주대교 밑으로 흐르는 한강은 이내 민족 분단의 상처를 안고 흐르는 임진강과 어울린다. 두 물줄기가 어우러져 서해에서 몸을 풀기 직전까지의, 그 드넓은  흐름을 우리는 할아버지의 강, 즉 조강이라 이름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강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조강의 모습은 어떠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들과 손자강을 거느린 이 할아버지 강은 우리의 시대에 이르러  분단의 현장, 곧 한민족 한탄의 강이 되고 말았다. 조강리에 있는 작은 동산 애기봉에 오르면 이 비극의 현장이 더 극명하게 우리의 눈앞으로 다가온다.

  본래 쑥갓머리산이라 불리던 애기봉이 지금처럼 독특한 이름으로 명소가 된 것도 비극의 역사가 만들어 낸 부산물이라 할수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포연 서린 전선의 아름답지 않게 전설의 향기가 풍기는 운치 있는 이름을 얻었다는 점일 게다.

  인조 때 평양 감사에게 애기라 불리는 귀여운 애첩이 있었단다. 마침 병자호란을 당하여 두 사람은 피난길에 나섰는데, 평양 감사가 그만 도중에 오랑캐 병사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천신만고끝에 애기만 살아남아 이곳에서 그를 기다렸으나 남편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애기도 뒤따라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애기는 임종시 자기가 죽으면  고향 평양이 보이는 산꼭대기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지금의 전망대 부근이 그녀의 시신이 묻힌 곳이라 한다. 세월의 흐름에 묻혀 망각의 피안으로 사라질뻔한  한 여인의 애틋한 전설이 묘한  인연으로 되살아나게 될 줄이랴. 훗날 이곳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쑥갓머리 정상에 애기봉이라는 빗돌이 세워지고 그 이후 해마다 이곳 전망대 철탑에는 연등이 켜지고 송탄 송가가 북녘으로 울려 퍼진다. 그런데 단순히 고유어 아기 또는 애기였을 여인의 이름을 왜 하필  "사랑하는 기생"이라는 뜻의 애기로 적었을까? 굳이 한자말로 써야 했다면 2천만 이산가족이 혈육상봉을 애타게 기원한다는 의미로 애기라 적었으면 좋으련만. 애기봉 전망대에 서면 지금은 갈수 없는 붘녘 산하와 조강의 도도한 흐름위에 한강과 임진강이 어우러지는 장관을 함께 조감할 수 있다.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 경우에는 두 강이 만나고 합친다는 표현보다 두 강이 어우러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실지로 두 강이 어우러지는 지점을 고구려 때는 어울매라 불렀고 신라 경덕왕때는 이를 한역해서 "교하"라 적었으니, 지금의 파주군 교하면이 그곳이다.

  눈길을 서해쪽으로 돌리면 조강 가운데  작은 섬 하나가 외롭게 떠  있음을 본다. 자칫하면 바다로 휩쓸려갈 뻔한 위태로운 자태, 조강의 큰 흐름에 떠밀려 가다 가까스로 머물게 된 섬 "머머리섬"이다. 한자어로 유도라 부르는 이 머머리섬이 언젠가 한마리 소로 인하여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홍수로 떠내려 가던 소가 천신만고 끝에 이 머머리섬에 상륙하게 되었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우리 국군이 이를 구출해준 사건말이다. 비록 사소한 일이기는 하지만 유도 황소 구출 작전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우리가 한마리소의 구출작전에 그토록 관심을 보인 것은 그 일이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비료나 식량으로 또는 소떼로 붘녘동포를 돕는 길이 열린 지금,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남북이 함께 어우러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애기봉에 세운 30m의 철탑에는 연말이면 오색 전구에 불이 밝혀지고 건너편 붘녘땅으로 성가대의 찬송이 울려 퍼진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오신 날이 아니어도 좋다. 7천만에 이르는 우리 민족 모두는 삼백 예순 날 남과  북의 어울림의 합창이 늘 메아리치기를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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