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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지명 전설을 찾아

   백령도와 심청 - 흰 새가 일러 준 기다림의 섬

  황해도 어느 고을에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고을 원님의 딸을 알게 되고 딸도 그 선비를 좋아하여 둘은 금세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원님의 집에서 이 선비 총각을 완강히 거부한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아네모네의 꽃말처럼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원님은 딸을 외딴 섬으로 쫓아버렸다. 얼마 동안 두 사람을 갈라 놓으면 곧 잊혀지려니하는 계산에서 였다. 그러나 이는 어른들의 희망사항일뿐 두 사람은 더 애절하게 상대를 갈구했다. 처녀의 행방을 몰라 애태우던 선비에게 하루는 뜻밖의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날아들었다는 말 그대로 한 마리 백조가 날아와 날갯죽지에서 흰 종이를 떨구고 가는 꿈을 꾼 것이다. 갈망도 지극하면 기적을 낳는 법인가, 흰 날개를 가진 백조가 암시하는 건 무엇인가? 꿈에서 깨어난 선비는 이내 장산곶에서 배를 얻어 타고  백령도로 달려간다. 선비의 짐작대로 그 섬에는 흰 새와 함께 선비를 기다리는 연인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포옹을 방해하는 그 무엇도 없었다. 사랑하는 남녀가 죽음으로 결말짓는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우리의 러브스토리는 이처럼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백령도에서 해후한 남녀는 평생 이 섬을 떠나지 않고 흰 새들과 함께 그야말로 백년해로 했다는 그런 이야기다.

 일출이 동해의 독도보다 반 시간이나 늦고 인천보다 평양이 더 가까운 섬, 서해 5도 중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는 예로부터 철새의 보금자리로 한때는 수백만마리의 흰 두루미의 서식처였다고 한다. 백령도의 고구려 때 이름은 곡(혹)도 인데 여기서 곡자는 고니(백조)나 따오기를 지칭하는 한자다. 지금도 "곡곡"이라면 백조의 울음을 형용하는 의성어로 쓰이고, "곡립"이라면 백조처럼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는 모습을, "곡망"이라면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학수고대하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백조의 보금자리, 한때나마 선비부부가 살다 간 사랑의 섬 백령도는 이제 기다림의 섬으로 남게 되었다.

  섬 북단에서 까마득히 보이는 임(인)당수에 빠져 죽은 효녀 심청은 봉사아버지가 눈뜨기를 목숨바쳐 곡망했다. 백령도의 곡망은 허구의 전설이나 소설로만 끝나는게 아니다. 6, 25 전쟁을 전후하여 많은 황해도 주민들이 이 섬으로 피난해 왔는데, 그들은 아직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 손에 잡힐듯한 장산곶을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 지금도 곡망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백령도와 그 앞 바다는 소설 심청전의 실제 무대로 알려져  있다. 이 섬은 신라시대 이후로 중국으로 내왕하는 각종 선박의 중간 기착지로서, 항해의 안전을 위해 용왕에게 사람을 재물로 바치는 풍속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심청이가 몸을 던진 임당수는 백령도 북단 삼십리 지점, 그래서 인지 그곳의 물빛이 유난히 시퍼렇게 보인다. 물로 뛰어든 심청이가 연꽃을 타고 인간 세계로 환생했다는 연봉바위는 이 섬의 남쪽, 곧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외롭게 떠있다. 연꽃이 조류를 타고 이곳으로 밀려왔다는 소설 속의 이야기는 실제 임당수 부근의 조류 흐름과 일치한다니, 심청전을 단순히 허구로만 볼수 없을 듯하다. 연꽃은 불가에서 귀하게 여기는 꽃이다. 물에 빠진 심청이가 연  잎에 싸여 물 위로 떠올랐다는 건 환생을 뜻함인가? 소설에서의 심청은 왕비가 되었지만 우리의 가슴속엔 효심의 표상으로 새겨져 있다. 연꽃전설의 발상지라고 하는 연화리에는 아직도 연꽃이 피고 진다니 이 이야기가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북위 37도, 남한 본토보다 북한 내륙이 더 가깝다는 지리적 여건탓으로 백령도는 지금껏 아름다운 날개깃을 접고 지내야 했다. 주민가운데 군인이 더 많은 것도 그런 이유지만, 이 섬도 이제 서서히 날개를 펼치려 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쾌속선이 닿는 용기 포구에는 육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포구에서 마주 보이는 사곳 해안의 규조토사장에는 오가는 차량의 행렬로 분주하다. 규조 껍질로 이루어진 사곶해안은 바닷물이 빠지면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해지기 때문에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것은 물론 군용 항공기까지 뜨고 내릴 수 있다고 한다.

 도착 순간부터 이색 정취를 선보이는 백령도는 섬 곳곳에 기암괴석을 비롯한 천혜의 절경을 감추고 있다. 그 가운데 압권은 해금강 총석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무두진 일대의 병풍바위이다. 오랜 세월 해수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해층 기암들이 병풍을  두른 듯 즐비안 해안, 그래서 두무 라는 이름도 뭇 장수들이 모여 회의 하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름을 한자 뜻에 따라 새겨서는 안된다. 사방이 산으로 둥글게 둘러싸인 분지를 "두메"라 하는데, 이곳 포구가 천연적으로 둥글게 생겼기에 "도무" 또는 "두무"라 이름한 것이다. 기암 괴석 병풍처럼 두른 지형도 이 지명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기다림의 섬, 백령도. 이제 다시 백로가 날아오고 남북으로 통하는 뱃길이 열리기를 이곳 섬사람들은 애타게 곡망하고 있다.
 




[백령도 두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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