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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인명의 작명 - 이름을 불러 주는 의미

  김춘수님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까지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 준 뒤로 그는 나에게 꽃이 되었다고 했다. 타인의 이름을 불러 주는 의미는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심과 애정이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세상 만물은 이름이 있음으로써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하느님은 아담에게 이 세상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이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고 한다. 아담(Adam)이라는 말의 뜻도 "이름을 짓는 자"라고 하니 우주 삼라만상은 생성과 함께 존재 가치를 부여받은 셈이다. 창세기 이후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인류가 나고 죽었다. 그 무수한 사람들의 이름은 누가 지어 주었을까? 성경 말씀대로라면 하느님의 위임을 받은 제  2, 3의 아담에 의하여 지어졌을 터이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작명되었건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이름을 부여 받았든지 이름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이름의 소유자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 하는 점에 달려 있다.

  지하철에서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표제의 책광고를 본 적이 있다. 너무나 강렬한 질책성 제목에 순간적으로 멈칫했으나 이내 "왜 이름을 함부로 지을수 없는가"라는 강한 반발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름은 누구나 마음대로 지울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장미를 장미라고 부르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했다. 이름을 남들이 얼마나 많이 불러 주고, 또 그것이 어떤 의미나 가치를 지니느냐 하는 점은 오로지 이름의 주인에 달린 문제이다. 필자는 고유명사에 대한 학위 논문을 쓰면서 수없이 많은 고대 인명을 조사해 본 경험이 있다. 그 결과 한자를 빌려 표기한 옛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지금처럼 작명법에 따라 지은 이름이라 생각되지 않으며, 또 현대인들도 이름이 좋아 장수하고 출세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빛내는 일도, 그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도 모두 자기 하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앞서 언급한 셰익스피어는 이름의 철자가 너무 까다로워서 이를 제대로 쓰는 사람이 드물었으나 정작 당사자는 틀린 이름자를 보고도 태연했다고 한다. "일백개의 셰익스피어가 있다 한들 나라는 본질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름은 나에게 손톱과도 같은 하나의 속성에 불과하다."고 했다던가. 이름 한 자만 틀려도 온통 난리가 나는 줄 알고  있는 우리와는 정말 대조적이다. 작명법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인은 이름에 대한 집착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문패는 물론 명함에도, 화환이나 죽은뒤 비석에도, 심지어 낙서에 이르기까지 자기 이름을 새겨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석굴암 보수 공사 때 발견된 낙서 가운데 본존불의 이마와 콧등에까지도 이름을 새겨 놓은 사람이 있다고 하니 가히 병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착오로 이름이 다소 틀렸다 해도 그렇게 큰일이 나는 게 아니다. 자의성이 언어의 본질이듯 이름도 자연스럽게 짓고 자유롭게 불러 주면 그만이다. 미국의 인디언들은 꼭 하나의 이름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성과 이름의 전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젠가 개봉된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화에서 보았듯이 그들의 작명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 진다. 새 사람을 만나면 언제든지 새로운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도 평생 두서너개의 이름을 가지고 행세했다. 어려서는 젖이름(아명)이 있고, 부모가 지어준 본명과 함께 성인이 되어 자를 가진다. 벼슬길에 나서면 관명이 붙고 사회적인 지위나 교분에 따라 아호가 생겨 본명을 대신한다. 이런 이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부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어느 프랑스 신부가 한국인의 이름 부르기는 자국어의 동사 변화보다 더 까다롭다고 엄살을 부렸을 정도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죄인에게는 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다. 이름 대신 수인번호로 다른 사람과 구분할 뿐이다. 사람뿐 아니라 땅에도 고유 이름, 곧 지명이 있게 마련이다. 가능하다면 고유지명을 불러 주는게 마땅한데, 때에 따라 아무 죄도 짓지 않은 땅에 이런 수인번호를 붙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신림 1동, 2동, 3동이나 봉천 1동, 2동, 3동등이 그러한데 이는 그 땅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정상의 편의만 생각한다면 서울의 모든 동명을 서울 1동, 2동식으로 불러 주면 더 편리 할지 모른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가 우리 앞에 꽃이 되는 것처럼 고유 이름을 불러 줄 때 그 땅도 비로소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명은 삼국시대까지는 순수한 고유어로 지어지고 음절수에서도 제한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인상적인 이름을 얼마든지 많이 남기고 있다. 그러나 통일 신라 이후 이름의 한어화는 애석하게도 아름다운 고유어를 몰아 냈을 뿐 아니라 항렬을 맞추고 음양오행설에 따르는, 한자 2자제의 전통적인 작명관에 따라  이름에서의 자유와 개성을 잃고 말았다.

  이제 이런 작명법의 굴레를 과감히 탈피해야 겠다. 아름다운 우리말로서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쉬운, 개성있는 이름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왜 이름을 함부로 지을 수 없는가? 더 이상 이름자체에 대한 집착이나 주술적 사고는 끊어 버리자.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잊혀지지 않을 하나의 의미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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