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3759 추천 수 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에 대한 반성

   망나니 호칭 - 지존이 무상하다

  얼마 전 "지존파"라는 이름의 폭력 단체가 끔찍한 일을 저질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보다는 그들 망나니 패거리를 불러주는 호칭이 너무 격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과, 또 이를 당연시 불러 주는 언론 매체의 무신경에 있다. 지존이 무슨 뜻인가? 그네들이 이 지존의 말뜻을 알고 조직명을 삼았는지는 모르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 한결같이 지존파, 지존파하고 불러주는 통에 일반인들은 "지극히 나쁜 놈들" 정도로 알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더할 나위 없이 지극히 존귀한 분, 옛날로 치면 임금님이나 존경하는 스승 또는 조상을 공경하여 부르던 호칭이 바로 지존이 아니던가. 게다가 지존에 붙는 접미사 "파"는 또 무엇인가. "파"는 본래 물이 나뉘어 흐르는 갈래에서 유래한 한자로서 실학파니 낭만파니 보수파니 하는, 사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계통을 일컫는 용어이다. 이런 돼먹지 않은  불한당들에게 이렇게 고상한 말을 붙이다니, 그야말로 천부당만부당하다. 기껏해야 깡패라든가 패거리라고 할 때의 그 "패"나 한자어의 무리를 뜻하는 "배"라도 붙여 주면 고작이 아닐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무리가 어디 지존파뿐일까. 자식에게는 지존이라 할 수 있는 부모를 살해한 박 아무개, 여자 승객을 납치하여 살해한 택시 운전사, 법정 증언을 문제 삼아 잔인한 복수극을 벌인 어느 망나니 등 요즘 우리 사회는 온갖 망나니들의 행패로 어수선하다.

  우리말에서 악인을 칭하는 용어는 한자어가 대부분이다. 선과 상반되는 악은 본디 모질고(불선), 더럽고(추), 나쁘기(불량) 때문에 미움(증)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고유어로는 "나쁜 놈" 정도가 되겠는데, "나쁘다"라는 말도 본래 악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수준이 낮다(저)는 정도로 "덜된 놈"과 비슷한 말이다. 악인에 대한 한자어 가운데 불한당은 좀 유별나다. 땀을 흘리지 않는 자, 곧 노력하지는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화적떼를 지칭한다. 고유어처럼 보이는 깡패, 도둑, 건달 등도 한자어에서 유래했다. "깡패"의 "깡"의 어원을 영어의 "갱(gang)"으로 보는 분도 있으나 이는 한자어 강에서 찾는 편이 옳을 듯하다. 매나니로 억지스럽다는 뜻의 "깡부리다"를 비롯하여 "깡다구, 깡그리, 깡으로" 따위의 어휘도 모두 강이 경음화한 것이다. 따라서 깡패는 깡부리는 패거리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악인을 지칭하는 고유어는 앞서 말한 대로 나쁜 놈이나 못된  놈, 덜된 놈 또는 망나니나 개차반 정도가 고작이다. 용어의 가짓수도 적을 뿐더러 뜻도 한자의 악이나 영어의 bad와는 격을 달리한다. 우리는 인간을 보기를 이미 "되어 있는 존재(being)"가 아니라 장차 "되어지는 존재(becoming)"로 인식한다. 못된 놈, 덜된 놈은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를 미처 갖추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망나니는 옛날에 사형을 집행할 때 죄인의 목을 베는 짓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으로 "마구 낳은 이"의 준말이다. "마구(줄어서 "막")"는 아직 길들이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상태를 이름이니 "막국수, 막걸리, 막두부, 막소주, 막과자" 등이 그런 예이다. 또한 마구 운다, 마구 쏟다에서 보듯 앞뒤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해댄대는 뜻도 있다. 함부로 내뱉는 말을 막말이라 하고 닥치는 대로 해내는 일을 막일, 막노동, 막벌이, 마구잡이라 한다. "함부로"라는 뜻 외에도 "막"은 "마지막"의 준말로 쓰이기도 한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마지막 상황을 "막판"이라 하고,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태를 "막가"라 이름한다. 여기서 말하는 "막가파 언어"는 바로 그런 상태의 언어를 지칭한 것이다.

  망나니는 앞서 말한 대로 "마구 낳은 이"의 준말인데, 이는 아무렇게나 짜서 품질이 좋지 않은 무명, 곧 "막낳이"가 사람에게 그대로 옮겨 붙여 쓰이게 된 것이다. 자식을 되는 대로 마구 낳기만 했지 제대로 길들이고 순화시키는 교육을 등한시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돼먹지 않은 망나니들도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됨됨이를 갖춘 인간이 될 수 있다. 나쁜 놈이라 일컫는 이들의 인품이 아직 낮기 때문에(본래말이 "낮브다") 수양으로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악인을 칭하는 고유어의 유래에서 보듯 비록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 인간을 보는 우리 조상들의 눈은 그토록 관대하였다.

  이젠 제발 더 이상 막다른 길로  내달리는,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막살하는(끝낸다는 의미의 경상도 방언)" 망나니는 없어져야겠다. "지존무상"은 그저 영화 제목일 뿐 지존은 지존 그대로 영원히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1 모주 바람의종 2008.05.03 3901
120 노름 용어 - 고스톱 왕국은 피바가지 바람의종 2008.05.05 2879
119 문래 바람의종 2008.05.05 2944
118 음식 이름 - 족발, 주물럭, 닭도리탕 바람의종 2008.05.06 3211
117 가족 호칭어 - 며느리와 새아기 바람의종 2008.05.08 3607
116 보은단 바람의종 2008.05.08 2804
115 된소리 현상 - 꿍따리 싸바라 빠빠빠 바람의종 2008.05.10 3231
114 형벌 관련 욕설 - 오라질 년과 경칠 놈 바람의종 2008.05.11 3996
» 망나니 호칭 - 지존이 무상하다 바람의종 2008.05.12 3759
112 막가파 용어 - 전쟁과 파괴의 시대 바람의종 2008.05.23 3142
111 지명 속담 - 보은 아가씨 추석비에 운다 바람의종 2008.05.29 3548
110 지명어의 작명 -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바람의종 2008.06.02 3447
109 잃어버린 지명 - 아름다운 이름, 보은단, 고운담 바람의종 2008.06.03 3048
108 신도시의 이름 - 일산과 김정숙군 바람의종 2008.06.22 3450
107 전철역의 이름 - 향토색 짙은 서울 역명 바람의종 2008.06.24 3740
106 서울과 한강 - "아리수"가의 새마을 바람의종 2008.07.12 2793
105 인명의 작명 - 이름을 불러 주는 의미 바람의종 2008.07.18 2768
104 고유어 인명 - 돌쇠면 어떻고 개똥이면 어떤가 바람의종 2008.07.19 3920
103 여성의 이름 - 언년이, 영자, 정숙, 한송이 바람의종 2008.07.21 3325
102 어느 여인의 이름 - 최초로 이 땅에 시집 온 여인 바람의종 2008.07.24 3572
101 백령도와 심청 - 흰 새가 일러 준 기다림의 섬 바람의종 2008.07.26 2879
100 강화와 마리산 - 반도 한가운데 솟은 머리산 바람의종 2008.07.28 2917
99 김포와 휴전선 - 애기봉에 울려퍼지는 어울림의 합창 바람의종 2008.07.29 3119
98 철원과 한탄강 - 큰 여울 줄기 따라 한탄의 전설이 바람의종 2008.07.31 4433
97 춘천과 의암 - 맥국의 맥이 흐르는 쇠머리골 바람의종 2008.08.03 471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