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3005 추천 수 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우리말 숫자관 - 닫히고 열리기가 골백번

  필자가 12라는 숫자를 선호하게 된 것은 대학과 대학원 입시 때 수험번호가 모두 12번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학번과 군번을 비롯하여 열 두번의  이사 횟수에 이르기까지 묘하게도  이 숫자는 나와 인연이 깊다. 20여 년 전 "12, 12 사태"란 것이  생겨서 한국 정치사에 고약한 시비거리를 제공한 바도 있지만, 1년 열두 달, 간지에서  12지, 예수님의 열두 제자 등등  대체로 12는 행운의 수로 인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확히  셀 수도 없는 금강산의 봉우리도 1만 2천 봉이라고 자랑한다. 숫자관이라고 할까, 우리는 특정한 숫자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저마다 선호하는 숫자를 가지고 있다. 길수라 부르는 숫자가 그것인데, 일반적으로 짝수에 비해 1, 3, 5, 7, 9의 홀수를 좋아하는 것은 동서양이 서로 다르지 않다. 정월 초하루(1. 1), 삼월 삼질(3. 3), 오월 단오(5. 5), 칠월 칠석(7. 7), 중양절(9, 9)의 예에서 보듯 홀수가 겹치는 날을 명절로 삼는 것은 홀수를 양으로 보는 동양의 음양설에서 기원한다. 최근 경제 문제에 사회의 관심이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숫자  표시에 친숙하게 되었다. 주가, 환율, 부도 액수, 스포츠 스타의 연봉,  예산 규모 등의 숫자를 보면서 한결같이  놀라는 것은 액수가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한때 "윽"하고 기절할 정도로 억수로(억세게)  커 보였던 억대가 어느새 조대에 그 위력을 넘긴 지 오래다. 그러나 억조창생이라던 "억조"도 얼마 안 있어 조의 1만 곱절인 "경"이나, 거 나아가 경의 1만 곱절인 "해"에게 자리에 물려 주어야만 할 것 같다. 대국이라 그런지 중국은 수 단위에서 경, 해 말고도 자, 양, 구 등 10여 개의 더 큰 단위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량수나 불가사의까지 동원해야 할 날이 머잖아 보인다.

  사람은 예로부터 수를 헤아릴 때 바른손을 세우고 하나하나 차례로 손가락을 꼽아 나간다. "세다, 셈하다"라는 말 자체가 손가락은 세운다(립)는 뜻이며, "곱절"이라는 말도 손을 다시 꼬부려 꺽는다(꼽는다)에거 나온 말이다. 숫자 표시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던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다섯을 세면서 꼽았던 손가락이 모두 열리는(펴지는) "열(십)"에 이르면 벌써 많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여러분, 여러 가지, 여럿"에서 보듯 "여러(열)"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는 뜻이다. 열이 다시 열 번을 거듭하면 더 많다는 뜻의 "온(백)"이 된다. "온 나라, 온종일, 온갖"등의 예에서 보면 "온"은 이미  숫자의 개념을 넘어 전부(전) 또는 영원을 지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와 발전으로 "온"도 결코 전부가 되지 못한다. 즈믄(천)이 생이고, 골(만)이 생기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한자말의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백번을 다시 백번 반복하면 이른바 "골백번"이 되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런  수치를 비처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서 손가락을 꼽고 펴는 동작에서 우리말의 수사가 생겼다고 했다. 손가락을 모두 꼽고 나면 이것이 다시 닫히는데, 이처럼 닫혔다 하여 "다섯"이란 말이 생겼다. "여섯"은 닫힌 손이 다시 열려 나가는 차례이며, 열에 둘이 없으면 "여덟"이요, 하나가 없으면 "아홉"이 된다. 다만 수의 출발점이 되는 "하나"만은 어원이 좀 별나다. 손꼽기 동작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라 낟알, 곧 하나의 곡식 알갱이를 뜻하는 말이다. 부연한다면 "하나"는 "홑"과 "낟"이 합쳐진 말로서 홑은 홑이불이나 홀아비에서 보듯 겹이 아닌 단독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하나만을 손꼽기에서 차별화시킨 것은 하나의 수가 시작이기 때문이요, 또 곡식 한 알갱이도 귀하게 여기는 농경 사회의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하나(줄여서 "한") 곧 홑은 겹이 아니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어 이런 외톨이의 허전함을 두 번째 손가락 검지가 포근히 덮어 준다. 둘(이)운 "두블"의 준말로서 엄지를 꼬부린 그 위에 검지(인지)를 덮는 모습을 나타낸다. "덮다"를 옛말에는 "둡다"고도 했는데, 현대어의 "두텁다, 두께"등과 함께 "더불어 산다"고 할 때의 "더불다"도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셋(삼)은 손가락 한가운데, 곧 "사이(새)"에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양쪽의 두 손가락들 사이에 위치하기에 한자어로 간지 또는 중지라고도 한다. 또한 이 가락은 다섯 가운데 가장 길기 때문에 길수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서양에서의 "럭키 세븐"  7보다도 더 선호하는 숫자가 되었다. 무엇이든 세워 놓기 위해서는 최소한 발이 셋은 있어야 한다. 셋의 "세"와  서다, 세우다(립)의 "서, 세"가 결코 무관치 않다. "수리수리 마하수리"라는 염불이 있는데, 이는 수리 곧 길상존을 세 번 연거푸 암송함으로써 모든 업을 씻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이다. 삼각형의 안정된 기반 위에 하늘, 땅, 사람의 삼재와 삼계 및 삼위일체가 펼쳐지고, 하루 세 끼의 식사와 함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삼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IMF 사태로 나라 살림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지만 우리는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삼세번이라는 그 세 번의 기회가 있는 만큼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손가락을 꼽으며 한 알 두 알 낟알을 모아 가노라면 천문학적인 숫자로 여겨지는 그 엄청난 빚도 언젠가는 갚을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니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1 '지아비' '지어미'의 '지'는 '집'...곧 '집아비, 집어미'의 뜻 風磬 2007.01.20 4395
170 '얼우-'+'는'(성교하다) --> '얼운'...'어른'은 혼인한 사람 風磬 2007.01.21 6125
169 '노래' '놀이' '노름'은 한 가지에서 나온 단어 바람의종 2007.01.22 3554
168 '지치다'는 원래 '설사하다'라는 의미 바람의종 2007.01.23 4069
167 '마땅하다'는 고유어에 한자어가 붙어서 생긴 말 바람의종 2007.01.24 3365
166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 바람의종 2007.01.25 3827
165 소련식 기관단총에 '또아리' 같은 게 달려 '따발총'이라고 불렀답니다 바람의종 2007.01.26 4151
164 우리말의 속살 - 임신, 출산 용어 삼신 할머니는 노여움을 푸소서 바람의종 2008.03.16 4434
163 우리말의 속살 - 요람기의 용어 어화둥둥 금자둥아, 얼싸둥둥 은자둥아 바람의종 2008.03.16 4793
162 우리말의 속살 - 유아의 언어 습득 말문은 저절로 트인다 바람의종 2008.03.18 3775
161 엄마, 아빠에서 "어이 어이"까지 바람의종 2008.03.19 4373
160 혼사용어 - 풀보기, 자리보기, 댕기풀이 바람의종 2008.03.20 3971
159 질병용어 - 든 병, 난 병, 걸린 병 바람의종 2008.03.22 3907
158 과메기 바람의종 2008.03.22 3102
157 생사용어 - 삶과 죽음의 언어 바람의종 2008.03.24 3417
156 바느질 용어 - 깁고, 박고, 호고, 공그르고 바람의종 2008.03.25 3208
155 여성용 의상어 - 아얌과 배꼽티 바람의종 2008.03.27 3456
154 식기 용어 - 뚝배기보다는 장맛 바람의종 2008.03.28 3273
153 부위별 고기 명칭 - 아롱사태의 그 은밀한 맛 바람의종 2008.03.29 3701
152 음료수 용어 1 - 꽃 꺽어 산 놓으며 드사이다. 바람의종 2008.03.30 2977
151 음료수 용어 2 - 차 한잔의 여유와 향기 바람의종 2008.03.31 2971
» 우리말 숫자관 - 닫히고 열리기가 골백번 바람의종 2008.04.01 3005
149 상거래 용어 - 에누리와 디스카운트 바람의종 2008.04.02 3005
148 명절, 절후 용어 1 - 어정 칠월 동동 팔월 바람의종 2008.04.03 3563
147 명절, 절후 용어 2 - 한가위, 수릿날 아으 동동다리 바람의종 2008.04.04 320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