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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팔공산은 믿음의 터

        임을 온전하게 아뢴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아
        넋은 가고 없되 삼으온 벼슬일랑 받으시구려
        바람을 알리라 그대 두 공신이여
        오래도록 곧은 자취 나타내오시라

        (예종의 "도이장가")


  어느 일을 정진함에 있어 목숨을 거는 것보다 더함이 있을까. 동화사 싸움에서 죽음의 자리에 놓인 왕건(王建)을 대신하여 싸우다 돌아 간 신숭겸과 김락 장군. 두 장군의 덕업을 노래한 고려 16대 예종의 도이장가(悼二將歌)가 절절하다. 장절공 신숭겸은 특히 왕건의 모습과 비슷하여 견훤의 군대가 보기로는 얼굴도 비슷하고 차린 옷이며 행동거지가 틀림 없는 왕건이었다. 베임을 당한 신숭겸의 목은 없어졌지만 이미 왕건은 달아나 피하고 없었다. 명산(明山)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안심(安心)에서 겨우 정신을 차려 군사를 다시 거느리고 재진격, 싸움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는 것. 이 때 왕건이 싸움에서 피하도록 강력하게 권한 사람이 신숭겸이다. 숱한 안개와 구름을 거느리고 조국의 어려움을 걱정하는 듯, 하늘 닿을 듯이 솟아 오른 팔공산은 막 날아 오를 용이요, 웅크린 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참담했던 전쟁터로 그 증인으로서 예나 오늘이나 의연하게 서 있다. 

  옛부터 전해 오는 산의 본디 이름은 공산(公山)이었다. 해안(解顔)고현의 북쪽 17리쯤에 있고 대구부에서는 35리 쯤에 놓여 있다. 대구 인동 신령 하양의 경계를 이루는 터전이 된다. 산봉우리는 연이어 기세 당당하다(대동지지 참조).

  고려의 건국초기에 동화사 싸움에서 빛을 남기고 죽은 신숭겸 김락 전의갑 등의 8공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덟 팔을 덧붙여 8공산이 된 것이다. 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동수산(桐藪山)이라고도 했으나 확실하지  않다. 그럼 옛부터 전해 왔다는 산이름 공산(公山)은 어떤 소리상징을 보이고 있을까. 무엇이 그리도 귀한 산이란 말인가. 앞서 일러 둘 것은 금호강(琴湖江)의 이름과 어떤 걸림이 있지 않나 한다. 미.루어 보건대 공산의 '공'과 금호의 '금'이 다 같이 땅과 물을 다스린다는 지모신(地母神)과 걸림을 둔 이름으로 미루어 잡는다. 충청도 공주(公州)의 보기를 먼저 들어 보기로 한다. 용비어천가에 따르면 공주는 '고마나루(熊津)'가 본 이름이었다. 고마(곰)내는 웅천하(熊川河)로 다시 금강(錦江)으로 바뀌었고 웅진(熊津)은 달리 공주(公州)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러 쓰인다. 이를 간추리면 '곰 - 웅(熊) - 금 - 공'의 맞걸림이 드러난다. 하면 원천적으로 곰 - 공(公)의 걸림을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한자로 곰이란 글자는 없으니까 공으로 쓴 것이다. 고마(곰)에 대한 속성은 '경건한 흠모의 대상'으로 떠 오른다(고마敬고마虔고마欽(신증유합)).

  여기 고마(곰)는 어떤 내력을 갖고 있는가.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나타나는 단군신화에 그 뿌리가 벋어  있다. 곰을 짐승으로만 보면  그뿐이지만 조상신이라는 토템의 대상으로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러한 곰신앙 - 곰토템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전역에 주로 북쪽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한마디로 곰(고마)은 어머니 신이요,조상신이 된다. 그러니 귀하게 받들어 모실 밖에. 게다가 고마(곰)는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의 정착을 따라 물신과 땅신의 상징  곧 지모신(地母神)의 믿음으로 바뀐다. 한편 동물상징도 물이나 뭍에서 사는 거북이로 곰이 바뀌게 된다. 본시 거북은 '검(거ㅁ)'이었으니  단군왕검의  '검'이 곰 거북(검)의 소리상징과 비슷함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하면 어쨌든  곰(검 금 감 굼)이 얼마나 드높은 존재인가.

  그러면 이제 '곰 - 공(公)'은 소리의 질서로 어떻게 풀이 되는가. 곰(굼)은 아래 조사가 붙을 때 기역(ㄱ)이 끼어들어  변하는 형태상의 특징이 있다(곪기다 공글다 궁기다 등의 기역(ㄱ)). 마침내 미음(ㅁ)앞에  기역(ㄱ)이 자음접변의 소리 .닮음에 따라 공(公 孔)이 될 수 있다. 정말 거북의 옛말이 '검(굼 금)'이었을까. 흔히 사방에  4신(神)의 그림을 그릴 때 북쪽에 거북과 뱀을 형상한다. 거북을 현무(玄武)로 적는다. 이두식으로 읽으면 현무는 검(玄)에 무(武)를 붙여 쓰는 것으로 '무(武)'는  앞의 글자 현(玄)을 뜻 - 검으로 읽으라는 끝소리 가리킴이라  할 수 있다. 땅이름에서도  이러한 가능성은 보인다. '검(거북)'은 색깔로 보아 검은 색이며 방위로는 북쪽지향을 드러낸다. 가령 함안(咸安)의 현무(玄武)에서 함(咸)의 옛소리가  감이니까 '감 - 현무(玄武  - 검)'의 걸림을 보이는 경우가  그런 보기이다. 칠곡의 거무산(巨武山)이  그러하며 구미(龜尾)의 금오산(金烏山)에서 '굼  - 금'도  같은 계열의 보기들이다.  박지홍(1957.구지가연구)에서는 양산지방의 민요 가운데 '왕거미'  노래가 있는데 이 때 '거미 - 거북'이라는 대응이 가능하다고 보았다(神검(신자전)). '검 - 거북'의 걸림을 고리 짓기란 어렵지  않다. 거북의 옛말은 거붑(두시언해(초)8-58)이었다. 그러니까 '검다'에 명사형(음)이 붙으면 거믐 -  거뭄이 되고 둘째 음절에서 미음(ㅁ)이 파열음(ㅂ)으로  되고 끝소리가 기역(ㄱ)으로  자음이화가 일어나면 '거뭄 - 거붑 - 거북'이 되니 말이다.

                곰산과 금호강

  대구부의 남쪽 3리쯤에 연구산(連龜山)이 있다. 자료에 따르면 대구가 처음으로 마을이 생길 때 돌로 거북을 만들어  이 산자락에 묻었다는 거다. 머리를 남쪽.으로, 꼬리를 북으로 해서 묻었는데 거북의 기운이 산전체에 통하게 하고자했던 까닭에서다. 해서 연구산으로 부르게 되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대구) 당시만 해도 신천(新川)이 굽이돌아 흘러 연구산 자락으로 지나 물의 북쪽이 된다. 마찬가지로 금호강은 대구의 서북쪽으로 흐르며 금호의 북쪽에 있어 대구를 지키는 터산이 곧 팔공산-공산(公山)이 되지 않는가. 곰이 단군의 어머니신이라고 했는데 금호강 또한 금호평야의 어머니요, 대구평야야말로 금호강이 낳은  자식이라 해서 지나침이 있을까.  대동지지 를 따르면 금호강의  뿌리샘은 모자산(母子山) 일명 보현산에서 말미암았다고 하니 금호강이 대구평야의 어머니가  됨은 너무도 당연하다.

'금 - 모(어머니)'의 걸림은 '금'의 기역(ㄱ)소리가 약해져서 떨어지면 음(옴 엄 암)이 된다(金泉 - 今勿 - 禦侮 - 金城(대동지지)). 한 맺힌 고모령의 사연도 공산 - 금호와 걸림에 있을 것으로 본다. 고모령(顧母嶺)이라, 말 그대로 풀이하면 '어머니를  돌아 보며 생각하는 고개'란 뜻. 언제나 생각해도 어머니의 품은  따사롭다. 이두식으로 다시 보면 '고모 - 곰(고마)'의 걸림으로 풀이가 된다. 우리말로 곰고개 혹은 곰치가 된다. 이와 같이 물과 땅을 다스리는 지모신에의 그리움은 우리가 늘 가까이 하고 살아 가는 공간에 되비쳐 드리운다. 공산의 머리맡에 솟은 비로봉(1192미터) 또한 이러한 믿음의 상징이 어려 있다. 불가에서는 광명의 부처를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말로는 별을 방언에 따라 '빌'이라고 하는데 이 '빌'에 말조각이 더  붙어 '비로봉 - 별봉우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북방에 가장 뚜렷한 것은 북극성 모든 별이  이 별을 중심으로 해 동그라미를 그리며 자리를 잡고 있다. 이르자면 비로봉은 별신 - 곰신에게 제사와 정성을 드리는 상징으로 저리 높게 드리워  있어 우리를 경건하게 한.다. 별 중에도 큰 곰자리 별이 으뜸으로 가는 게 아니던가.

  별이 쏟아져 빛나는 금호강은 나날이 죽어 간다. 우리들이 빚어낸 숨 막히는 공기와 물로  말이다. 우린 자식으로서 어버이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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