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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유아의 언어 습득 말문은 저절로 트인다

  보통 아이들은 난 지 1~2년이 지나면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옹알이부터 시작된 언어 학습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법 어른의 흉내를 내게 된다. 초기에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몇몇 단어를 반복하는데 그치지만, 이런 시행 착오기를 거치면 어느 날 갑자기 제대로 된 문장을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미숙하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기를 표현하려 애쓴다. 이런 시기를 가리켜 옛 어른들은 "말문이 트인다"고 했다. 말문만 트이는 게 아니라 글문도 트인다고 말한다. 글을 능숙하게 읽을 줄 알고 또 자유자재로 지을 수 있는 단계를 일컬어 문리(문리)가 트인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트이다"는 표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트이다는 "트다"의 피동형으로 "싹이 트다. 동이 트다. 움이 트다"에서 보듯 어떤 결과가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저절로, 또 필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을 이름이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그것도 우연히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그런 결과를 가져올 어떤 싹(원인)이 내재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어린이는 세상에 태어나 두세 살이 되면 자연스럽게 말문이 열리고, 그 이후 글방에 다니면서 열심히 글을 읽으면 어느 순간 저절로 글문(문리)이 열려 자연스럽게 글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이런 필연적 현상을 두고 "트인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어린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헤엄치기나 자전거 타기처럼 오로지 학습에 따른 결과라고만 믿어왔다. 다시 말하면 말하기에 관한 한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여 언어 현상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숱한 시행 착오나 반복 훈련을 거쳐 비로소 자유롭게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최근에 와서 뒤바뀌게 되었다. "트인다"는 표현을 고려한다면 어린이에게는 말을 할 수 있는 어떤 싹, 즉 유전인자가 있었음을 전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트인다"가 본래 내재했던 인자가 저절로 드러나는 현상이라면 인간은 본래 언어 능력을 가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언어, 특히 생후 최초로 습득하는 모어에 관한 한 "배운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물고기는 태어나면서부터 헤엄을 칠 수 있고, 또 새는 알에서 깨어나면서부터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 날 수는 없으니 새가 날 수 았고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는 이유는 후천적 학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선천적인 자질이기 때문이다. 언어 습득도 이와 같으니 말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인간의 선천적인 자질에 속한다.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생득설이니 합리주의 이론이니 하는 것도 이를 두고 이름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면서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고려해보면 이 생득설이 언어 습득에서 얼마나 합리적인 이론인가를 알게 된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가장 지능이 발달한 시기, 곧 중학교 때부터 영어룰 배우기 시작하여 대학까지 약 10여 년을 지속한다. 그것도 무질서하게 배우는 게 아니라 가장 체계적인 방법으로, 또 좋은  환경에서 수학하게 되므로 그 정도면 영어 하나는 충분히 구사할 법도 한데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린이의 모어 학습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능 계발도 덜 된 시기에, 그나마 가르치는 사람이 반드시 우수하지도 않으며 가르치는 내용도 체계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여건하에서도 모든 어린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비슷한 수준의 모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런 놀라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언어가 일반적인 지적 능력과 경험만으로 습득되는 것이라면 어린이의 지능 지수나 소질, 환경 등의 차이에 따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우열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어린이에게는 환경적 여건이나  일반적 지능에 제한을 받지 않는 어떤 천부적인 언어 학습 능력, 또는 언어 구조에 대한 해석 능력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다는 언어 구조에 대한 선험적 지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마치 건축 설계의 청사진과도 같은 그것의 모습을 우리가 알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 청사진의 참모습을 밝히는 일이 언어학의 궁극적 목표가 되겠는데, 만약 그것이 밝혀진다면 언어학의 분야뿐 아니라 인간 정신의 해명에도 크게 공헌하리라 믿는다.

  언어 학습 과정에서 유난히 말을 빨리 배우는 어린이가 있다.  이럴 때 부모는 똑똑한 자식이 태어났다고 좋아들 하지만 사실 일찍 말문이 트인다 하여 꼭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천재 아인슈타인은 여섯 살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늦게 말을 배웠느냐고 묻자 그는 남들이 말을 배울 때 자신은 상대성 원리를 구상했노라 했다. 말하자면 그 나이에  아인슈타인은 말을 못 한 게 아니라  말을 안 한 것이다. 말은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문이 트여서 행하게 되는 것이니 아인슈타인은 단지 시간적으로 말문이 늦게 트인 경우에 불과하다고 할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자녀들을 많이 낳아 길렀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왜 그렇게 자식을 많이 나았냐고 물으면 사람은 생기는 족족 저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온다고 답하곤 했다.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갖고 나오는  그것,  그 재산 목록 가운데 가장 귀한 보물이  바로 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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