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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임신, 출산 용어 삼신 할머니는 노여움을 푸소서

  "앉아서 천리 보고 서서 만리 보는 삼신 할머니, 섭섭한  일일랑 제발 무릎 밑에 접어 두고 이 어린 것 치들고 받들어서 먹고 자고 놀고 오로지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하소서. 입을 복과 먹을 복을 갖춰 주시고 짧은 명은 길게, 긴 명은 쟁반 위에 서리서리 얹어 주시고 명일랑은 동방삭을 닮고 복일랑은 석승을 닮게 점지하여 주소서."

  어린 시절 아시 볼 때(동생을 맞을 때) 필자의 할머니께서는 방 윗목에 삼신메를 차려 놓고 손바닥을 싹싹 소리 나게 비비면서 이처럼  "삼신풀이"라는 주문을 외우셨다. 삼신 할머니는 예로부터 임신과 출산을 주재하는 신으로 경외의 대상이었다. 산모에게 해산 기미가 보일 즈음이면 모든 가정에서는 애오라지 이 삼신 할머니에게 매달린다. 정화수 한 그릇과 흰 쌀밥, 한 그릇 또는 세 그릇의 미역국을 올린 삼신상이 차려진다. 이 때 산모가 며느리일 때는 안방 윗목에, 해산을 위해 친정에 온 딸일 경우에는 대개 방문 가에 차리는 것이 상례였다. 삼신상은 출산일뿐만 아니라 해산 후 첫 이렛날과 두 이렛날, 삼칠일이라 부르는 세 이렛날에서 일곱 이렛날까지 차려지고, 그때마다 이와 유사한 주문이 외워진다. 이 기원은  아이가 자라 일곱 살이 되어 칠성신에게 인계될 때까지 지속된다. 이런  정성은 아이의 성장은 물론 산모의 잉태와 출산, 그리고 그 이후 젖이 모자라 "젖 비는"일에서 "개암든다"는 산후 후더침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오로지 삼신 할머니의 손에 달렸다고 믿는 데서 비롯된다.

  잉태를 고유어로 "몸가지다" 또는 "아이 선다"고 한다. 아기를 가진 산모는 "입덧"이라는 첫 시련기를 거치면 배가 점점 불러지면서 둥덩산 같은 "배재기"에 이르게 되고, 이때쯤이면 아기가 맷속에서 놀기 시작하는 자위뜸을 감지하게 된다. 이런 과정 모두가 어느 하나 힘들지 않을까마는 아무래도 그 절정은 출산 순간이 될 것이다. 막달에 이르러 아이가 "비릊는" 과정에서 문잡아 산문이 열리고, 이윽고 핏덩이의 귀가 빠지는 순간이야말로 뼈마디가 녹아 내리는 고통의 정점이라고 한다. 세상에 나온 새 아기의 첫 울음, 이른바 고고성은 그래서 환상의 소리라 할 만하다.  아이에게는 최초의 언어이자 모체에서부터 분리된 독립 선언일 것이며, 산모에게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안간힘이며 새 생명 탄생의 선언적 환호가 될 것이다.

   삼신이라는 말은 "살다"에서 유래하여 사람이나 삷, 또는 숨과도 말뿌리를 같이한다. 고고성은 바로 인간의 호흡기 개통식이므로 그때부터 시작된 숨쉬기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고유어 "삼신"을 한자어 삼신이나 산신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삼신은 태고적 우리나라를 세웠다는 세 신, 곧 환인,환웅,환검(단군)을 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와 곰처녀와 관계를 맺어 단군을 낳았다는, 그 단군신화를 기조로 하여 삼신 할머니를 한민족 생성의 국조 신화와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특히 "삼신의 손"이라는 말에서 한민족이 세 신의 자손이라는 의미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의식은 후일 아이를 낳는다는 모성적 의미가 확대되고, 무속신화와  민속신앙으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삼신 할머니가 생명 창조를 점지하는 신령으로 변신하여 추앙 받게 되었다는 이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현대의 젊은 엄마들은 이런 삼신 할머니의 존재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다. 입덧이 나면 남편이나 부모들을 채근하고,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언제든지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몸을 맡긴다. 젖이 모자라도 젖비는 일이 없어지고, 출산 날짜는 물론 심하면 신의 영역이라는 아들, 딸의 성별까지 선택하여 낳을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고유 권한을 빼앗긴 삼신 할머니가 노여워할 수밖에. 현대인들은 금줄에 무엇을 다는지도 잘 모른다.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출산 풍습들, 이를테면 산모는 상주나 상가에 다녀온 사람과 대면하지 말아야 하며, 집안에 빨래를 널지 않고, 질그릇을 다루지 않으며, 고기를 굽거나 먹지도 않는다는 따위의 금기 사항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진 만큼 이런 풍습은 몰라도  좋고 또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 번 양보하더라도 태아의 성감별이나 아기를 지우는 따위의 삼신 할머니의 고유 영역만은 제발 침범하지 말아야겠다. 최근 산아 제한법마저 철폐되고 태아의 성감별을 엄격히 규제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남아선호사상이나 성을 쾌락의 도구로 삼는 한 이런 조처만으로 삼신 할머니의 노여움이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생명의 신비, 그 신의 영역만은 더 이상 넘보지 말았으면 한다. 삼신 할머니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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