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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어머니,당신은 아무래도 멀리 계시옵니다

  밤으로 가득한 강물은 물새 소리며 흩어지는  별빛을 안고 먼 그리움을 꿈꾸며 세상을 안아 흐릅니다. 저 먼 나라로 가신 지 벌써 이십여 년. 세상살이로 지친 마음 탓인가, 모습도 아련해 가고 자꾸만 멀어감을 어이 하올지요, 탓이라면  정성이 모자란 까닭일 밖에요. 그날밤도 봄이었더랬습니다. 검푸른 금강물, 하얀 백사장에 희미한 별빛을 받고 난 살기 싫다고 못 살겠다고 물 속으로 뛰어 들었던 당신. 병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러셨겠습니까. 평생을 심장병으로 온 몸이 뒤틀리는 고통으로 사셨으니 말입니다. 당신 어머니냐고, 이 할머니의 아들이냐고 젊은 경찰이 물었을 때, 그렇다고 했습니다. 아주 겸연쩍고 마지 못한 모습으로요. 말이 됩니까. 정말 그럴 수는 없는 건데요. 얼마 전 몹시 춥던 겨울날 갑자기 내린 혈압으로 한 이레 동안 몸져 누웠더랬어요. 다시 깨어나 일어났을 때 빛바랜 당신의 사진을 안고 마냥 울었습니다. 그냥요. 우리 아무개 내 새끼 하고 품에 안아  길렀던 당신의 아들이라 하기에는...... 사진으로라도 뵙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엊그제 팔공산 뒤편에 있는 인각사 절에 갔습니다.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삼국유사를 지으신 일연스님이 계셨다기에, 알고 보니 늙고 병드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그리 사람도 없는 외로운 산촌에서 세상의 보통 사람처럼 사셨다는 겁니다. 모르긴 해도 세상에서 멀리 하는 문둥이 같은 나쁜 병 때문에 스님의 몸으로 노모를 모시자매 그리 외딴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니 당신에 대한 죄스러움이 먹구름 하늘로 가슴을 뒤덮더이다. 그날 따라 비가 내렸어요. 걸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뿐. 밤새 내린 비로 불은 도랑물이 벼랑에 메아리지고 그날 따라 공산은 저 멀리 아주 멀리 보였습니다. 밤 뻐꾸기가 강 건너 산에서 울고 있습니다. 밤도  깊고요. 비가 오려나 봅니다. 짙은 달무리를 한 달이 늦게 돋아선 막 서녘으로 지고 있습니다.세월이 흐르다 보면 저도 당신 계신 곳으로 가겠지요. 무엇이 되어 뵈올지, 한 줌의 흙이 되고 풀꽃이 되어. 아니 돌이 되어 당신은 어미 돌, 저는 그 아래 귀여운 아기 조약돌이 되어 응석을 떨어 볼런지요. 희미한 달빛으로 그림자 지는 강물. 갸름한 당신의 모습이 물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간간히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창  어우러진 아카시아 꽃 숲에는 당신의 젖비린내가 흔건히 배어 옵니다. 몸에 저리게 말입니다.

  아픈 몸으로 저를 낳아 기르신 당신. 어떤 이들은 당신을 천치병신이라고, 반푼이라 합니다. 셈수도 모르고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니까요.  당신 몸 하나 추단을 못했으니까. 저에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뭐가 문제입니까. 당신은 제 목숨의 샘물인걸요.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어렴풋이 알 듯합니다. 당신의 마음을요. 언제부터인가 흐르는 저 강물이, 밟고 다니는 이 부드러운 흙이 당신의 영혼 깃든 몸일 거라는, 저 하늘의 별이 당신의 넋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과 들에 나오면 흙을 만지고 일을 하노라면 당신의 품에 안겨 있다는 생각에 빠집니다. 발 빼고 강을 건너면서 당신의 사랑을 느끼곤 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당신은 제 목숨의 텃밭이요, 둥지입니다.

  작년에 여기 강물이 바라 보이는 강마을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웃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면서 당신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당신을 대하듯이 어두운 곳에 사는, 저보다도 못한 이들과 더불어 살아 보렵니다. 막 달이 지고 있습니다. 야윈 찔레꽃 송이마다 별빛이 내려 앉은 듯 합니다. 이제 꿈을 꾸렵니다. 아무래도 당신은 멀리 계시지만 가까이서 당신 품에 안기는 꿈을요.


             달홀(達忽)과 가라홀(加羅忽)의 어우름

             금강에 살으리랏다  금강에 살으리랏다/운무 더리고 금강에 살으리랏다/홍진에 썩은 명리야 아는 체나 하리오  (이은상의 '금강에 살으리랏다'에서)

  금강산. 말만 들어도 어쩐지 가슴이 설레인다.  하늘이 내려 준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모습을 안개와 구름 속에 부끄러운 듯 감추임을 보고 얄팍한 세상살이에 울고 웃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노산 시인의 글이 제 격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아픔으로 시련의 안개요, 구름으로 뒤덮인 인고의 나날들. 우리의 힘 없음밖에 다른 이들을 탓해 보았자 무엇에 쓰리오. 가 보고 싶은 그리움의 산이련만 날씨 좋은 날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 멀리 바라만 보고 있다. 산과 내가, 나와 산이 멀기는 마찬가지. 오죽했으면 중국 사람의 글에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 구경을 해봤으면 하였을까(願生高麗國欲見金剛山). 금강산은 비로봉을 가운데로 하여 서쪽은 내금강이요, 동쪽은 외금강, 바다쪽은 해금강이 된다. 고성(高城)은 금강의 동쪽이자 바다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고성군의 군청 소재지는 원래 장전읍에 있었으며 외금강면과 서면과 함께 김일성의 다스림을 따라 가 볼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해서 간성읍으로 군소재지를 옮겨 거진읍이며 현내면, 토성, 죽왕, 수동면을 싸 안아 의연한 모습으로 예국의 변방고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성현과 간성현이 어울어 오늘의 고성군이 된 셈.

                고성현은 달홀에서

  본디 고성현은 고구려 땅으로 달홀(達忽)이라 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하면서 달홀주라 하여 군주(軍主)를 두어 다스리게 한다. 해서인지 군사들의 주둔지임을 알리는 정(停)을 붙여 문헌에 따라서는 '달홀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벌력천정·한산정·현효정 등) 신라 35대 임금인 경덕왕 16년(757) 고성군(高城郡)으로 바뀐다. 땅이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그 걸림을 보면 달홀처럼 '달'이 땅이름 앞에 오면 높다·크다·넓다의 뜻으로 쓰이고, 땅이름 끝에 오면 군현읍성에 맞먹는 뜻이  되는 경우가  많다(高木-達乙·達句-大邱/阿斯達-平壤·烏斯含達-兎山). 해서일까. 고성에는 높을 고(高)의 영향으로 보이는고잠(高岑)·양진(養珍)·대강(大康) 등의 땅이름들이 눈에 뜨인다. 여기 양진의 진(珍)은 '달'로 읽는 뜻을 보이기에 그리 넣은 것이다. 고성현의 옛마을은 양가현과 안창현이 있었는데 뒤에 이를 어우러 없애고 달홀로 다시 고성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양가(養가)마을은 고성의 북쪽 27리쯤에, 안창(安昌) 마을은 남쪽으로 27리쯤에 자리잡고  있어 남북으로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먼저 양가마을의 경우를 살펴보자.

  양가 마을의 본디 이름은 돼지저자 저수혈(猪狩穴)로 또 달리 오사갑(烏斯岬)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이르러 양가현으로하여 옛 고자 고성군(古城郡)에 속하게 한다. 저수혈-오사갑에서 먼저 혈(穴)-갑(岬)은 같은 '곶'을 드러낸 말이 아닌가 한다. 저수의 '저'는 마찰음 '서'를 표기한 것으로 보이며 수의 시옷을 윗 말의 받침으로 쓰면 '섯굴(섯궂)'이 되고 오사의 오(烏)는 '새'를 드러냄이니 이 또한 '삿갑(삿곶)'으로 보면 섯-삿이 모두 사이를 뜻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산봉우리 사이에 형성된 고장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우리말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갑(岬)은 뫼산이 변으로 붙은 갑(岬)으로 적음이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갑(岬)이 누른다는 압으로도 읽힐 오해의 소지가 있음으로 보아 더욱 그러하다. 이를 돼지-돗(猪) 쪽으로 본다면 오(烏)를 됴(鳥)로 보아야 걸맞는 소리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이르자면 두드러진 높은 지역임을 상징하고 까마귀나 새로 보더라도 모두가 드높은 고장을 드러냄에는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

  그럼 경덕 임금 때 양가(養假)로 고쳐진 근거는 무엇이고  이를 고성(古城)에 넣게 된 건 무슨 까닭인가. 땅이름의 대응이란  걸림으로 보면 누르고 흰 곰 가의 '곰'과 저수혈(穴)의 혈-굼(구멍)과의 걸림이라고 하겠다. '곰-굼'은 모음이 바뀌었을 뿐 같은 뜻을 드러내고 있다. 또 고성(古城)은 무언가. 본디 고(古)는 조상의 무덤이요, 굴을 드러내는 글자로서 굴(구멍)과 서로  함께 어울리는 글자로 보이며 나중에 높다는 고성(高城)으로 바뀐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상의 무덤이 있는 장소는 산지이니 높을 것이요 자손이 그 부모를  받들어 모심은 마땅한 것이다. 아마도 예국의 선조들이 여기를 기점으로 해 강릉으로 옮아갔을 가능성이 짙다. 

  이제 양가현과 함께 고성현의 옛 고장인 안창(安昌)의 경우는 어떠한가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한다. 고성현의 남쪽 27리쯤에 자리한 안창현의 본디 이름은 막이(莫伊)였다. 고려 태조 23년에 안창으로 바뀌었다가 뒤에 고성으로 들어 간다. 간성의 옛 고장이던 마기라(麻耆羅)에서와 같이 막이(莫伊) 또한 같은 드러냄으로 보인다. 곧 막음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이니 여진과 일본군의 침략을 막는 고장이어야함을 강조한 듯하다. 이름만큼이나 외세의 침략으로 큰 시련에 직면한다. 고려 현종19년 전함 15척을 이끌고 용진 나루에 쳐들어 와 중랑장 박흥언 및 70여인을 포로로 하여 물러간다. 문종 2년에는 양가현에 동번적이 쳐들어 와 갑자기 100여인을 쳐 죽이고는 달아나 버린다. 고종 36년에 이르러 고려의 별초군과 동여진의 군사가 고성 싸움에서 이를 물리친 바 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동여진은 고종 45년 고성현의 솔섬을 둘러 싸서는 우리의 전함을 불지르고 분탕질을 놓는다. 이뿐인가. 충렬왕 16년이 되자 적극적으로 우리 쪽에서 우군만호 김흔이 양가현에 주둔해 있으면서 하란의 몽고병을 대비하여 막아낸다(암, 그래야지). 공양왕 9년에 이르러는 왜적이 고성포구로 쳐들어 온다. 낮에는 배를 타고 밤에는 언덕을 기습하여 노략질을 한다.  참으로 편히 쉴 날이  없다. 드센 바람에 이는 밤바다의 파도이듯 말이다.

           몽둥이처럼 억센 국방의 요새, 간성

  금강산처럼 우뚝 솟아 외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아니 막아내야 했던 간성, 방패요 몽둥이었으니. 본디 고구려의 땅으로 가라홀(加羅忽)이었다. 뒤에 갓변자 변(邊城)으로 다시 경덕왕 16년에 수성군(守城郡)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많은 풀이가 있긴 하지만 여기 가라홀의 '가라'는 가름 기능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예나라(穢國)의 변방이면서 외세를 막는 국경수비대가 있었으니. '가라-변-수'에서  변·수에서도 나라의 경계를 가름하는 지역이니 변방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깨우친 듯하기도 하다. 또 다른 이름으로 물수자 수성(水城)이라 했다. 소리로는 지킬 수자 수성이나 다른 게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물로 둘러싸여 바다의  경계를 환기하려는 의도가 바탕에 깔린 것은 아닐까? 사라진 폐현이 되기는 했으나 간성의 옛 고장은 열산(烈山)이었다. 열산은 본디 마기라(麻耆羅)였으며 달리 소물달(所勿達)이라고도 하였으며  경덕왕 16년에 아이동자 동산으로 부르다가 수성군의 속현이 된다.  동산은 그 전에 중승자 승산(僧山)으로도 불리워졌으니 아주 다양한 바 있다. 고려 태조 23년에 오면 다시 열산(烈山)으로 고쳐 부르기도 하였고 별도로 봉산(鳳山)이라고도 한다.

  이를 간추려 보면 '마기라(소물달)-승산-동산-열산'의 걸림이 이루어진다. 먼저 소리를 따라서 생각하면 마기라-막으라(막을 곳)의 경비를 강조한 게 아닌가 한다. 앞 글에서 안창의 옛 지명이  막이(莫伊)라 했는데 같은 흐름이라면 어떨까. 달리 소물달이라 함은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인 듯하다. 본디 소(所)란 장소가 중심이지만 병영을 뜻하기도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국방을 튼튼히 하려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병영이니 사람의 통행이 자유스러울 수 없고 게다가 머리를 깎은 중의  모습을 한 금강산이며 천진스러운 어린이의 정서를 일으켜서 그러했을까. 목숨을 바쳐 수자리, 간성을 지켜야 하니 매울 열자 열산이라 했다면 어떨까. 여기 어린아이 '동'은 듕-ㅈ-중으로 이어지는 소리의 연상도 가능하니 옛 선인들의 슬기로움을 새삼 느낀다.

  고성현 못지 않게 간성현도 많은 시련의 세월을 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조 덕종 시절(2년) 해적들이 간성의 백석포(白石浦)로 쳐들어 와서는 50여명의 포로를 데리고 물러 갔다. 다시 정종 8년 열산현  영파수(寧波戍)의 지휘관인 대정 간홍(簡弘)은 적에 맞서 싸웠지만 활도 떨어지고 힘에 부쳐 끝내 전사하기에 이른다. 이어 문종 4년 무렵 중국  동번의 해적들이 열산현 영파수 자리로 공격해 온다. 그 때 18 사람의 포로를 잡아간다. 조선왕조에 들어서서는 원주에서 떨어져 간성군으로 독립하고 공양왕이 군(君)으로  강봉된 뒤로 다시 삼척부로 행정구역의 조직이 바뀐다. 늘 그러하듯이 옛부터 나라의 국경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가고 죽임을 당했지만 끝내 그 자리를 지켰으니 따지고 보면 몇 사람의 지휘책임자는 말할 것 없고 이름 없는 이들 모두가 열렬한 충신이요, 열사들이었으니 과시 열산(烈山)이라고 할 만하다.


                      양간지풍 통고지설의 속내

 말을 매어두고 한가로이 바닷가를 걸어 본다/차디찬 모래 울리는 소리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구나/ 느낌이 깊어 사람과 모래는 하나 되었나/슬기 많아 그대이련만 무슨 까닭으로 불평하려오.
 (捨馬閑行海上汀 寒步策策人鳴感 傷肯到無情物怜 汝何由亦不平) - 김극기의 한시에서)

  양양과 간성에는 바람이 많고 통천 고성에는 눈이 많다는 얘기. 고성의 실개천들은 거의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고 했다. 대략 서쪽이  동쪽보다 높음으로서다. 영동지방으로서는 가장 북쪽에 자리하여 향로봉(1,293미터)을 중심한 건봉, 까치, 동굴, 칠철,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태백의 줄기들이 힘찬 기운으로  바다를 굽어 보며 하늘을 이고 산다. 바라다 보이는 산에는 눈이 허연데 바닷가 모래 벌에는 곱게 해당화가 핀다. 해서인가. 당시에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선생은 읊기를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한데  바닷가 모래밭엔 해당화꽃이 벌써 지기 시작하네"라 했다. 물 맑고 바람이 좋은 곳, 특히나 밟으면 모래소리가 종소리와 같다는 명사(鳴沙)는 어떻구. 둘이 있는데 하나는 간성의 남쪽 18리에 다른 하나는 북쪽 60리쯤에 있다는 것. <대동지지>에서는 모래가 눈 같고 참으로 깨끗하며 쇠종소리와 같다고 했다. 꽤나 풍광이 빼어난 고장으로 금강이 통행만 되면 관광산업의 앞날이 아주 밝은 곳이다. 아울러 열산(烈山)호의 이야기 또한 자못 눈에 선하다. 본래 호수의 바닥에는 옛 마을이 있었다. 큰 물이 열산의 고을을 싸 안아 버려 산기슭 쪽으로 새로이 현을 만들어 옮겼던 터. 물속의 꿈꾸는 고장이 되었다. 날씨가 맑고 파도 잠잠한 날이면 옛 고을의 집이며 담장들이 보인다는  거다. 수족관이 아니라 물속의 고향 용궁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 마을을 보는 후손들의 마음이 어떠했으리. 참으로 열 받을만 하다. 이래 죽고 저래 죽고 남는 건 한뿐일 걸. 마음을 비우라고 씻으라고 밤바다의 파도만 일렁인다.


                          화진포의 부자

  더운 여름이면 예외 없이 화진포 해수욕터에는 많은 이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옛날에는 열산호와는 달리 이 자리에 뭍이 있는 마을이었다는 이야기. 이화진이란 잘 사는 부자가 있었다. 하루는 지나는 화주승이 시주를 하라고 하자 어뿔사 바가지로 똥을 퍼부어 쫓게 된다. 이를 본 이 부자집 며느리는 시어른 몰래 화주승에게 쌀을 시주한다. 며느리 보고서 이 마을이 물속에 잠길 터인 즉 빨리 몸을 피하라고 화주승은 일러준다. 마침내 화주승은 도술을 써서 온 마을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게 하였으니 엄청난 재앙을 일으켰다. 해서 그 자리는 연못이 되었고 이 화진이라는 이름을 따서 화진포(花津浦)라 했다는 것. 끝내 며느리는 스스로 자진하여 목슴을 끊는다. 그 한  많은 영혼은 이 마을의 서낭신이 된다.

  땅이름처럼 모래가 향기로워 그 곳에서 피는 꽃잎은 모두 향료로 쓰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화진포 전설의 유형은  태백의 구문소 전설 등 적지 않은 분포를 보이는바, 꽃 화자 땅이름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화진이라, 꽃나루라 했을 터. 중세말로는 꽃을 곶이라 했다. 장기곶·장산곶에서처럼 눈에 띄이는 아름다운 모습에 대하여 꽃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름도 드높은 꽃나루에 금강산의 반가운 봄소식. 기다리던 실향한 이들의 봄소식이 곧 올거라는 다짐을 두면서 조금은 참고 기다리면서 버티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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