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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해'의 소리 상징

        신라성대 소성대 아달라의 임금 때
        해는 연오의 아내 세오의 베틀에 가
        매달려서 살았다.
        (서정주의 '해'에서)

  옛적 동해가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부부 되어 살았더니, 하루는 연오랑이 미역을 따러 바다에 나갔다 파도에 떠 밀려 일본의 소도(小島)에 가 왕이 되었다. 낭군을 잃은 세오녀는 찾아 나서 마침내 왕비가 되었다. 때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제 빛을 잃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 하리오. 하늘을 보고 점을 치는 일관(日官)이 이르기를 연오와 세오는 해와 달의 신이기에 이런 변괴가 일어났다고. 아달라 왕은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돌아 오도록 하였다. 사정은 뜻같지 않았다. 연오는 하늘의 뜻으로 이 곳에 왔으니 세오녀가 짠 비단을 갖고 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라고 한다. 사신이 돌아와 왕께 알리고 못 위에 그대로 하늘 제사를 올리니 해와 달은 그 빛을 다시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다(동국여지승람 참조). 해가 없는 곳에 삶의 빛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어두움의  혼돈을 깨는 그 환한 빛이며 따뜻함이란 실로 우리 목숨살이들의 뿌리요, 말미암음이 아니던가. 해서 옛부터 태양신을 우러르는 믿음이 있었고 이에 터하여 겨레를 다스려 간 것이다. 말은 문화를 되비친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 자체가 아닐 뿐 이를 알맹이로 하는 소리 보람인 것이다. 그럼 '해'는 어떤 소리상징이요, 문화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걸까. 소리 나는 자리나 방법이 같거나 비슷하면 서로가 닮거나 영향력이 큰 쪽으로 바뀌어 간다. 시간이 흐르고 지역이 달라지면 그 소리는 약해지거나 강해지기도 한다. '힘 - 심 형 - 성 혀 - 세 형편 - 셍편'과 같이 '해'는 같은 갈림소리인 '새'와 넘나들어 쓰여 왔다(닷새(五日)<어제소학언해>). 소리값으로 보아 중세국어 시기에 '새(日)'는 '사이'와 같이 겹홀소리로 냈던 터. 그러니까 '새 사이'라는 뜻으로 가늠할 수 있겠다. 이제 해와 '사이'는 무슨 걸림이 있는가에 대하여 더듬어 보자. 또 '해'의 문화적인 소리상징은 무엇인지를.

  영원히 늙지 않는 해는 하늘, 땅, 바다와 하늘의 지평과 수평의 '사이'를 뚫고 솟아 오르는 거룩한 모습으로 온 누리에 빛을 드리운다. 그 눈부신 모습으로. 다시 그 사이로 지면 하루가, 한 달이, 한 해가 간다. 셈을 할 때의 '세다'도 해의 소리 '새(세)'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세다 - 헤아리다(헤다)'가 바로  그런 움직임을 드러낸 낱말겨레에 들지 않는가. 해 뜨는 동녁을 '새'라 함도 바로 해와 멀리 있지 아니하다. 예서 벌어져 나아간 말의 겨레 또한 적지 않음은 다 잘 아는 일. 한편 문화적인 소리상징으로서 해는 무슨 속내를 드러내는 걸까. 태양숭배와 철기 곧 쇠그릇문화를 속으로 하는 상징이 뼈대가 아닐까 한다. 빗살무늬 소도(蘇塗) 고인돌같은 거석문화 동침제(東寢制) 솟대신앙 등이 태양숭배요, 쇠그릇 문화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이르자매 제정일치의 제의문화를 이끌어 간 스승문화 시대만 해도 그렇다. 남해자충과 같이 신라 초기에는 임금을 자충(慈充)이라고도 일렀다. 당시의 소리로 보아 '자충-즈증-스승'의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지읒(ㅈ)과 같은 파찰의 소리들이 아직 우리말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스승 또한 사이를 뜻하는 '슷(間)'(훈몽자회)에 씨끝 '-응'이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서 정치와 종교의 직능을 함께 이끌어 갔으니 말이다. 여기 신은 하늘신 곧 태양신이었음은 앞 서 든 연오랑세오녀의 이야기나  단군신화에서도 고주몽, 김수로, 박혁거세의 말미암음에서 또한 그러한 암시와 개연성이 드러나 있다. 철기문화의 '쇠'와 태양숭배의 '새'는 사투리말로 보아 같은 낱말의 맥으로 이어진다. 지방에 따라서  쇠(鐵)는 '새(쌔) 시(씨) 소이'로 쓰나니 모두 '사이'를 뿌리로 하는 말이다. 돌도 아니요, 나무도 아니면서 두 쪽의 좋은 점을 가졌으니 사람의 삶에 큰 빛을 던져 준 것이 아닌가. 하긴 영오(迎烏)와 세오(細烏)의 오(烏)또한 '새'이니 맏새는 해요, 잔새는 달이 아니겠는가. 오늘 새벽의 초승달이 포항의 거리를 누빈다. 세오녀의 비단처럼.


        말하는 남생이

        말 없는 청산이요 태 없는 유수로다
        값 없는 청풍이오 임자 없는 명월이라
        이 중에 병 없는 이 몸 분별없이 늙으리라

  흔히 말 때문에 말 다툼이 일어 나고 이래저래 말이 많다. 해서인지 우계(牛溪) 성혼(1535-1584)선생은 차라리 말이 없는 푸른 산의 덕성을 기려 노래하고 있다. 말의 가치가 아닌 말 없음의 가치를 읊은 것이다. 물과 불에 온 누리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해서 그 물과 불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말 또한 그러하다.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고 사람의 모듬살이에 하루라도 생각을 나누면서 살 수 있으리오. 설령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는 이라도 말의 질서를 거치지 않고는 통일된 생각과 느낌을 지닐 수 없게 된다. 남생이란 이가 토끼를 속여서 용궁으로 꾀어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도 그가 하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우화라고나 할까. 본디 말을 하는 우리네 입의 구실이란 제일 으뜸 가는 게 먹음구실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입으로 물어 뜯어 공격하고 상대의 공격을 막는, 그래서 먹거리를 결정적으로 내 소유로 하는 먹그릇이 된 것. 먹음구실에 못지  않은 구실이 있다면 이는 바로 숨을 쉬는 것이다.

  코나 입으로 들어 간 공기는 반드시 되돌아 나온다. 이르러 들숨과 날숨의 주기적인 운동이 입으로 이루어진다. 못난 자식이 효도한다고 필요없어 내어버리는 날숨이 말의 밑천인 울대를 울려 피리작용을 일으킨다. 여기서 피어 나온 소리는 우리의 입속에서 혀가 닿는 자리나 그 열림의 정도에 따라서 다른 느낌과 생각을 다른 이에게 옮겨 간다. 이른바 공명현상과 분절 - 소리나눔에 힘 입어 언어적 존재로서 우리들은 홀로 만물의 신령스러운 어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숨을 쉬듯 언제나처럼 입으로 하는 말은 생각이나 느낌을 들을 이에게 옮기는 데 머리를 둔다. 같은 소리이면서도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馬, 言, 斗)을 떠 올려 보자. 경상도말에서는 짐승인 '말'은 입으로  하는 말(言)보다 소리가 높게 들린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할 때 말(斗)은 가운데쯤의 높이로 낸다. 하면 뜻은 다르면서 소리는 같은 이들 세 낱말이 함께 지니고 있는 공통된 점은 무엇일까. 모두가 '전달성'에 보람을 둔다고 상정할 수 있다. 입으로 하는 말의 경우, 말하는 이에게서 듣는 이에게로 생각과 느낌을 전달한다. 짐승인 말은 어떤가. 마찬가지이다. 짐이나 사람을 싣고 일정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는가. 한편 되 말의 말(斗) 또한 그렇다. 뭔가 말질을 할 쌀이나 그 밖의 곡식을 일정하게 담아 팔고 사는 이에게 주고 받음의 활동을 도와 준다. 한마디로 곡식을 담아 옮겨준다는 말이다.

  말 한 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고 한다. 듣는 이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면서 용기를 북돋울 수 있는 말이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의 말씀은 하늘이 사람에게 주는 말씀이요, 명령이 아니겠는가. 그럼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신(神)의  말을 하는 존재는 바로 사람이다. 이름하여 선지자요, 선각자들인 것이니 어둠을  헤매는 겨레들에게 길이며 빛으로서의 구실을 했던 이들이다.  사람은 참으로 말하는 존재들이다. 말에는 맛이 있다. 이게 말의 정서적인 기능이며 상징적 기능이다. 상징의 경우  특히 어떤 생각을 뭉뚱그려  옮기는  것이니 거짓말이나 과장된 말은 사실로서의 행위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참값을 부여하기가 어렵다. 말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저주하는 따위의 부정적인데서부터 하늘의 신께, 조상의 신에게 바치는 거룩한 말들이 있다. 글로 쓰면 글말이요, 입으로 하면 입말이 된다. 꽃이 피었다 지는 의미, 바람에 구름이 흐르는 뜻, 봄이 되면 잎이 피어 새들이 우짖는 말의 소리. 싣달타가  깨달은 밤강물의 소리 등 사람의 말이 아닐 뿐.  살아 가는 동안에 말을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말은 어떻게 써야 하나

        말하면 잡류라 하고 아니하면 어리다네
        빈한을 남이 웃고 부귀를 새오나니
        아마도 이 하늘 아래 사롤 일이 어려웨라
        (김상용)

  옛 어른들은 말의 쓰임에 대한 상당한 조심스러움을 강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체 많은 선비들의 떼 죽음이며 불행한 일을 많이 보고 살았기에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은 어떤가. 대중매체에 토크쇼라 해서 말로 공연을 해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참으로 자유롭게 말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말이나 허용이 되는 건 아니다. 같은 겨레끼리 나누어져 있는 적대 상황 아래에서 무단히 상대를 이롭게 하는 말은 할 수가 없는 것. 아니한 술 더 떠서 권위주의 시대에 반체제스런 생각이나 말을 하는 이들에게 돌아 오는 건 가시관이 있을 따름이었다. 지금은 옛 일이 되었지만 . 예(禮) 아니면 말을 듣도, 움직이지도 말라. 그저 도덕과 맞지 않는 말은 더 이상 존중할 값이 없다고 본 봉건주의 시대의 언어관. 마침내 군왕이나 웃 사람에게는 조건 없는 충성스러움이 있을 따름이었다.  얼이 살아 있는 말, 정의로운 말을 하는 이는 역적이요, 귀양을 보낼 사람이었으니. 그래 나라꼴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면 무슨 답을 할 것인가. 말은 무섭고 실수하기 쉬운 것. 믿을 게 아니란 것이  우리 옛 문학작품에 드러난 언어의 관점이었다(최정호,1984.한국사람의 전통적인 언어관 연구).

  사람됨의 저울질은 말이 많고 적음에 두기까지 하였다. 고전소설의 경우, 심청전의 뺑덕어미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일년 삼백육십일을 입 잠시 안 놀리고는 못 견디어 집안의 살림살이를 홍시감 빨듯 ...'에서 말 많음을 덕이 모자란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율곡선생의 <격몽요결>에  이르면 당시대의 언어관을 엿  볼 수 있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문자와 의리만을 말할  뿐이지... 세속의 비루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입말을 가볍게 여기고 글말을 좋게 여겼던 것. 물론 좋은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얼음을 밟듯 눈치나 보는 게, 순종이나 하는 게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졌으니 몇 사람 손에 갈팡질팡한 역사의 능선을 달려 온  것이 아닌가. 하면 표현의 욕구, 표현의 자유는 말이든 글이든  무시되었다는 얘기다. 서양의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말을 통해 마음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모든 사람들은 날개를 얻는다고.

  말의 민주주의, 이는 곧 정치와 언론문화를 꽃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사람은 가도 글은 남는다. 글 또한 말이 아닌가. 살아 남은 위대한 작품들은 사람의 마음에 상상의 자유를 누리게 하며 좋은  말, 진실과 양심의 편에 서서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슬기를 더 해 주고 북돋운다. 참으로 바르고 참된 말을 힘쓰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존경해야 할 스승이다.  그 말속에는 우리 조상의 얼과 문화가, 영혼이 서리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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