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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지리산과 파랑새 꿈

        살으리 살으리랏다 청산에 살으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에서)

  머루와 다래를 먹고 살망정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음을 노래한다.오죽하면 세상이 그리도 싫었을까. 풀이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위 노래는 고려조 몽고의 침입을 입어 일백여년 간을 어둡게 살던 때에 헤어진 가족을 찾아 다니면서 지었을 거라는 설도 있다. 푸른 산은 우리에게 평안과 정서적인 해방감을 안겨 준다. 하지만 당시는 사정이 사뭇 달랐다. 20년 동안에 70만이 넘는 사람들은 몽고로 끌려 가고 정동행서성(征東行書省)이라 해서 일본을 치기 위한 군사기관에서 전쟁에 필요한 사람은 말할 것 없고 일체의 모든 물자를 고려에서 마련해 내라고 억지를 쓴다. 원감국사(圓鑑國師)의 <영남민간고상24운>을 볼라치면 주로 영남지역에서 그 엄청난 희생을 치러내야 했던 비참상이 잘 드러나 있다. 말 그대로 한반도는 쑥대밭이 된 셈. 일본의 36년 식민통치와 같은 게 137년이나 행해졌으니 한 입으로 어찌 다 이를 수가 있으리오. 최기호(1993,청산별곡의 몽고어 영향)에서는 원감국사의 <영남민간고상24운>을 바탕으로 한  노래가 민요화 과정을 거쳐 <청산별곡>이 만들어져 불리웠을 거라는 풀이다. 청산(청산)은 바로 지리산이었다고 같은 글에서 이르고 있다.

  하여간 확고한 증거가 없는게 흠이기는 하지만 있음직한 생각이라 여겨진다. 후렴구의 '얄라'는 본디 몽고말인데 '서럽다 슬프다'의 뜻으로써 청산별곡의 시대적 상황을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현실도피 곧 데가쥬망의 한 서린 사연을 노래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스개 말로 엉덩이 뚱뚱한 이를 엉뚱이라 한다. 지리산이야말로 경상 전라도를 걸치고 구례 남원 산청 하동의 4개군을 싸 안는다. 산의 둘레가 8백여리, 넓이는 미루어 1억 3천만평이라 하니 참으로 큰  엉뚱이산이다. 휴전선 이남의 내륙에서는 단연 제일 높은 머리산이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지리산은 여러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지리(地理)'는 때때로 두류(頭流), 더러는 방장(方丈)이라 한다. 동으로는 천왕봉이, 서로는 반야봉이 솟아 있어 그 능선의 길이는 백리가 넘는다. 큰 어려움이 있을 때면 예외 없이 지리산이 한 많은 사연의 터가 되곤 한다. 피 어린 한국전쟁 때 피아골의 싸움이며 임진란 몽고병란 등 크고 작은 싸움에서 때로 아군의 요새로, 때로는 적들의 거점 지역으로 쓰였으니 지리산이 생각하는 이라면, 정말로 골치 아프고 가슴 메어지는 일을 당하면서도 오늘의 하늘을 이고 버티며 의연하게 솟아 있다. 무슨 성자라도 되듯이 말이다. 방장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쓰이지만, 글쓴이 보기로는 두류산(頭流山)이 가장 오랜 이름이 아닌가 한다. 정여창과 함께 산을 올랐다가 두류록(頭流錄)을 쓴 김일손의 기행문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하면 '두류'란 산이름의 뜻 바탕은 무엇일까.

  두류산이란 이름은 대구와 해남 등지에서도 쓰인다. 이두식 향찰로 읽으면 머리두의 '머리'로 읽는 게 어떨까 한다. 하면 두류산은 '머리산 - 마리산(말산)'이란 속내가 드러난다. 머리는 옛글에 '마리(말)'라 했으니까(마리頭(훈몽자회(상)24등)). 머리가 사람의 몸에서 제일 높은 부분이듯 지리산은 높은 산이요, 명당이며 하늘에 제사하는 공간이 있는 '거룩한 산' 아니 거룩한 제단이었다. 그뿐인가. 골치 아픈 머리를 씻어 영혼을 맑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산이 높고 골짜기가 그윽하니 뭇새와 짐승이 깃들이고 흐르는 물은 모여 호남과 영남 벌판에 젖줄이 되어 많은 씨알을 낳는다. 씨 암탉이 알을 낳아 병아리를 까서 품에 안아 기르듯이 말이요. 이형석(1990, 한국의 산하)에 따르면 지리산은 신라 42대 흥덕왕 이후로 당나라의 차를 옮겨 심어 기른 다(茶)재배의 말미암음의 터라는 것.

          숨어 사는 이들의 고향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보니
        도화 뜬 물 위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조식)

  마음에서 찾는 무릉도원이 어디 있으리오마는 정녕 두류산-지리산은 우리네 조상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요, 그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은 삶터였다. 세상에서의 쓰라린 아픔도 두류산에서 다 잊어 버리고 청산에 살으리라를 노래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특히나 남명 조식 선생이 보기로는). 고려 적 학문과 덕이 있는 한 선비가 두류산에 살면서 세상의 어지러움을 떠나 살고 있었다(不涉人間). 임금은 사람을 보내 벼슬을 주어 함께 하기를 권했으나 한유한(韓維漢)은 마다 하였다. 이에 사신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글 한 구절만 남겨 놓고 북창으로 나가 버린 게 아닌가. 글의 내용인즉 '내 빈 손으로 이 산에 들어와 이제 비로소 이름자나 알렸더니 세상일로 떨어지겠구나'하는 속사정이었다는 줄거리.  고려사에 따르면 유한의 집은 대대로 서울에서 살았다는데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 최충헌이 벼슬자리를 팔고 제멋대로 나라 다스림을 보고 일렀으되 앞날을 기약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어 가족을 이끌고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고생스러우나 충절을 지키고 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살았다. 조정에서 사람됨을 보고 서대비원(西大悲院)의 녹사(錄事)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음이라. 다시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 가 이내 되돌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지리산에는 청학동 사람들이 산다. 이상향으로 이르러 푸른 학마을 곧 청학동이다. 오늘의 정서로 이르자면 파랑새의 꿈이 이루어지는 하늘의 나라요, 신시(神市)가 아닌가. 진주 대아고등의 박물관에 청학동도(靑鶴洞圖)가 있으니 지리산의 파랑새 마을은 7군데가 있다. 천왕봉, 세석평전, 반야봉, 화개 연곡, 악양, 하동, 묵계 백운산이 바로 청학동 마을이라는 게다. 정감록을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곳이 10군데가 있는데 지리산이 나온다. 이 곳은 오래도록 살만한 곳이니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이어 날 것이라는 예언이다. 흔히 나라가 어지러우면 슬기로운 선비를 생각하고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거꾸로 나라가 어지러울 것임을 미리 알고 안식의 땅으로서 청학동을 마련한 것인가. 

  세상은 살기 힘 드는데 글이 쉽게 쓰여짐을 뉘우친 윤동주 시인처럼. 지금의 우리네 삶도 참으로 힘겨운 일이 많다. 넘어야 할 고개가 그리도 많이 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 통일과 인류의 평화를 꿈꾸는 파랑새는 그저  날아 들지 않는다. 정의와 진실의 숲이 있고 더불어 사는  홍익인간의 숲살이가 있어야 보금자리를 트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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