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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죽령(竹嶺)과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간 봄 그리워 하니 모든 것이 시름일세
        아담한 얼굴 주름살 지시려 하니
        눈 돌릴 사이에나마 만나 뵙도록 겨를 지으니
        낭이여, 그리운 마음에 오고 가는 길
        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 있으리
       (득오의 '모죽지랑가'에서)

  죽지랑(竹旨郞)은 어떤 사람일까. 그렇게도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람이었던가. 우거진 쑥대밭일망정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별밤의 평안함을 누리고 싶어 하다니. 화랑 사이에 느끼는 믿음과 애틋함이 이러할진대  그 마음으로 무슨 일인들 힘써 보지 않았을까. 때는 신라 28대 진덕여왕 시절. 술종공(述宗公)이란 이가 춘천지방 - 당시에는 삭주(朔州)의 도독이란 벼슬을 하게 되어 길을 떠났다. 삼한의 난리가 어지러워 수행하는 군사 3천을 데리고 부임을 하러 가고 있었다. 일종의 정복군과 비슷한 큰 세력일 것이다. 그것도 말을 탄 군사가 3천이라면  웬만한 고장은 휩쓸어 버릴 만하지 않은가. 이제 일행이 죽지령(竹旨嶺) 지금의 죽령쯤에서 길을 닦고 있는 한 도사를 만나게 된다. 첫 눈에 마음이 통하여 술종공과 도사는 아주 가깝게 느꼈다. 삭주도독이 되어 일한 지 한 달쯤 되는 때 홀연 공(公)은 꿈에 그 반가운 도사를 만나게 된다. 그의 아내 또한 같은 꿈을 꾸게 되니 정성이 지극해서 무언가 어떤 오고 감이 있었음인가. 이상하게 여긴 공은 사람을 보내 알아본즉, 꿈 속에 도사는 꿈을 꾸던 무렵에 저승으로 갔다는 얘기. 다시 사람을 보내 산의 북쪽에 무덤을 만들고 미륵불상을 그 앞에 세워 주게 된다. 술종공은 생각하였다. 틀림 없이 도사가 되살아 우리집에 태어 날 것이라고. 마침 부인이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의 이름을 죽지(竹旨)라 했다. 죽지령 혹은 죽령에서 만났던 그 도사를 떠올리면서 지은 이름으로 보인다. 화랑이 된 죽지랑은 뒤에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이라는 큰 일을 하게 된다. 해서 지덕 태종 문무 신문왕에 걸쳐 벼슬살이를 하게 된다.

  죽령 고개만큼이나 삼국통일의 길은 험하고 멀었다. 죽령재는 마한 진한 변한의 국경으로 뒤에 신라와 고구려가 나라의 경계 싸움으로  편안한 날이 없었다. 뺏고 빼앗기는 천연의 군사요새가 바로 죽령재였다. 저 유명한 온달장군도 결국은 죽령 싸움에서 최후를 마치게 되지 않았던가.  어떻게 해서라도 죽령재를 넘어 고구려의 땅을 차지하고 삼국통일을 할까 하는 게 신라 사람들의 꿈이요, 희망사항이었으니 말이다. 대동지지를 보면 죽령(竹嶺)은 단양의 동남 30리쯤에 있어 순흥과 경계가 된다는 풀이다. 경상좌도로 가는 큰 길목으로 갈림길의 뿌리가 되는 곳이었다. 옛부터 전해 오는 죽령재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신라 8대 임금인 아달라(阿達羅)왕 때의 일이다. 왕이 일을 한 지 5년 되던 해 죽죽(竹竹)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길을 내었다는 것. 이  때부터 죽령이 되었다고 한다. 고개 서쪽에 죽죽 사당이 있어 제사를 올리고 그를 기념하였다. 옛 적의 성터가 있던 것을 신라가 다시 쌓아 썼다는 사연이 있다. 죽죽(竹竹)과 죽령과 죽지. 물론 사람의 이름이요, 고개 이름이기도 하지만 고개를 넘어 삼국통일을 하려는 흐름을 스스롭게 심은 것은 아닌가 한다. 하면  그러한 소리상징의 질서는 어떠한 것인가. 양주동(1972.고가연구)에서는 '죽지'를 '다ㅂ마루'로 풀이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마을 사람 나라의 걸림을 보이는 '사이'를 밑뜻으로 보고자 한다. 미루어 보건대, '죽죽 - 죽지'는 '숫(ㄱ) - 숙 - 쑥'으로 풀이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삼국시대의 전반기에는 소리의 낱내로서 터짐갈이 소리 - 파찰음(ㅈ ㅊ ㅉ)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하면 파찰음은 모두 마찰음(ㅅ ㅆ)으로 읽어야 한다는 풀이가 된다. 그러니까 '죽죽 - 숙숙 / 죽지 -  숙시'의 맞걸림이 일어 난다. '숙'에 머리글자인 시옷(ㅅ)만을 따서 쓰게 되니  결국 '숙숙 숫(ㄱ)'의 어울림을 찾아 낼 수 있다. 죽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죽지 숙시'가 되어 숙시를 이두식으로 반절해서 읽으면 '숫(ㄱ)'이 된다. 땅이름에는  쑥(쑥고개 숫고개)이 들어가 부르는 경우가 있다.  하필이면 산골에 쑥이나 숯뿐일까.  '숫(ㄱ)'은 사이를 뜻하는 '슷(間<훈몽자회>)'계열의 낱말로서  받침의 소리가 같은  계열로 바뀌어 '숫 - 숟 - 술 / 슷 - 슬 / 삿 - 살  - 삳'의 낱말겨레가 생긴다(필자1991.우리말의 상상력). 술종공의 '술'도 소리로만 보면 '숫'과  같은 바탕 뜻을 드러내는 말로 보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쑥 또한 그러하다. 겉 보기로는 대나무  비슷하고 풀도 나무도 아니다. 그 '사이'쯤 되는 풀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침내 북방정책을 잘 해서 삼국통일을 하려는 믿음이 짙게 깔린 것은 아닌가 한다. 이를 뒷 받침하는 건 길 닦던  도사와의 만남이다. 상징으로라면 길닦이는 삼국통일의 길이요, 올바른 벼슬살이의 대도(大道)라 할 것이다. 꿈에 도사가 나타난 것은 물론이지만 꿈이란 잠재의식을 통하여 도사와의 영적교감이 일어 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죽지(竹旨)란 아들을 얻게 되고 도사의 무덤에 돌로 만든 미륵부처를 세운다는  것. 이는 호국불교의 대승(大乘)정신으로서 자신이 통일의 주역이라는  통과제의 같다면 어떨까.  본시 미륵불은 미래불이다. 이 세상의 중생들을 다  극락으로 보낸 뒤에 나중에  극락으로 간다는 신념에 찬 멀고 큰 그리움을 지닌 부처. 술종공이 먼저  길을 닦고 죽지(竹旨)가 큰 일을 이룬다는 북방정책의 이상을 실현 하는 정신적인 흙으로서 미륵불이 작용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상징동물로서 용을 떠 올린다. 이 경우도 그 예외는 아니다. 소백산 서쪽에 용못이 있다. 달리 3층담(三層潭)으로도 불리워 진다. 미루어 보면 용은 신앙이요, 큰 힘이며 3층담의 3은 삼국이 아닌가 한다. 원뜻은 삼국통일의 그리움을 심고 기르는 줄기찬 국민정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도사의 무덤 앞에 미륵불을 세운 건 자기 암시요 스스롭게 그러한  지향성을 나그네들에게 높이 들리워 보인 것이리라. 물론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은 배달겨레로 보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 놓은 가슴 아픈  일이긴 했지만, 빛이 있는  곳에 그늘이 지게 마련. '죽지 - 죽죽 - 죽령'의 '사이(숫 - 슷)'가 되비쳐  된 것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슷'이 사이요, '응'은 접미사인 바, 스승이란 본디 제사장 - 교황을 뜻하는 말이다. 도사가 그러하고 술종공이나 죽지랑 모두가 인간과  인간의 사이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다스리는 다리와 디딤돌의 구실을 하였으니  이들이 바로 참 스승이 아닌가. 같은 소백산 줄기에서 큰 재로 불리우는 문경새재 - 조령(鳥領)이, 소백산의 봉화를 올렸다는 소이산(所伊山)이,  계두산(鷄頭山) - 일명 작성(鵲城) 금의곡(錦衣谷 - 쇠골), 적성(赤城)이 그러한 보기들이라고 할  것이다. 소리꼴은 모두 '사이'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섬김으로 다스린다

  죽지랑이 이끄는 화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라는 이가 있었다. 날마다 화랑으로서의 길을 닦으러 나오더니 갑자기 열흘이 넘도록 나오지를 않는다. 득오의 어머니는 당전이란 군대의 벼슬을 하는 익선(益宣)이란 사람이 득오를 급하게 불러 가 부산성의 창고지기로 삼았다고 했다. 나라의 일로 갔으니 그 또한 찾아 가 격려해야 할 일로 생각한 죽지랑은 일백여명의 낭도와 함께 술 한 병, 떡 한그릇을 갖고 득오를 찾아 갔다. 이를테면 부대에 면회를 간 셈이라고나 할까. 알고 보니 득오는 익선의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사사로운  일에 화랑이 될 사람을 부리다니(...). 죽지랑은 득오에게 쉴 틈을 주도록 익선에게 청하였으나 헛수고였다. 마침 밀양(당시는 추화(推火))에서 오는 군량미 30석을 빌어 익선에게 주면서 화랑의 일을 돕도록 청하였으나 마찬가지로 거절. 벼슬이 17등급이 있는데 죽지랑은 13등급에 해당하였든지 그가 쓰던 말  안장을 내 놓으니 그제서 득오에게 말미를 주었다. 익선은 직권을 이용한 뇌물을 받았으니 분명 사정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사연을 알게 된 화랑의 총책임자가 익선을 잡아 가두기로 했다. 이를 안 익선은 숨어 버리게 되니 그의 맏 아들이 대신 붙잡혔다. 엄동설한 추위에 연못에 들어 가 목욕을 시키니 곧 얼어 죽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동태가 될 수밖에. 이를 알게 된 효소왕은 명령을 내려 모량리 사람들은 모두 벼슬을 주지 않을뿐더러 있던 사람도 다 뺏아 버렸다. 통일을 하자매 몸과  마음으로 홀로 서기를 해야 할 화랑에게 함부로 했다는 죄목일 시 분명하다. 승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익선이 살던 모량리 출신의 사람들은 정식으로 승려가 되는 길을 막아 버렸다. 당시 승려는 지식인이요, 나라의 큰 지도자 계층을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왕자들도 승려가 되는 형편이었으니 더 풀이를 할 필요가 없다. 이름이 높았던 당시의 원측법사(圓測法師)도 모량리 사람이었기에 전혀 책임을 맡기지 않았다. 이르자매 연좌제를 적용하여 연대책임을 물은 것이다.

  득오는 죽지랑의 마음을 잘 아는 화랑으로 죽지랑의 걱정이 곧 자신의 고뇌가 된다고 믿었기에 그러한 충정으로 죽지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로 부른 것이다. 그 사연과 마디가락이 걸맞아 많은 화랑은 물론이요, 사람들이 즐겨 노래를 부르게 되었던 터. 그 정성으로  삼국통일을 이루어 낸 것이다. 죽령을 넘어 더 큰 나라 세움의 통일을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자매 아리랑 고개를 하나의 운명이듯 사랑을 가지고 넘을 일이다. 기다림으로 우린 겨레의 고지를 기어이 올라야 한다. 겨레의 하나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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