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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2. 태양숭배와 곰신앙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광야' 중에서)

  외롭고 추운 계절을 피는 매화꽃에 어울리게 흰 말을 타고 거침 없이 광야를 달리던 선구자. 이름하여 초인이라 했다. 진정 우리의 삶에, 거북등처럼 갈라진 겨레의 운명을 돌려 놓을은 흰 말을 탄 선구자는 누구란  말인가. 우리 모두가 선구자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겨레의 일을 함께 염려해야 한다. 백마(白馬)는 늘 상서로운 상징으로서 우리의 지나온 역사 속에서 떠오르곤 하였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의 시대는 백마의 울음소리로 시작하였으니 예사롭지가 아니하다. 겨레의 지나온 자취를 거슬러 오르면 황량하고 끝 없이 푸른 벌판을 말 타고 누비던 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역사의 새벽은 트고 시베리아의 곰신앙을 지닌 북극의 정서로부터 한민족의 강물은 비롯된다. 흔히 배달겨레를 기마민족(騎馬民族)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 말은 육지의 배요, 싸움터에서는 전차였다.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을 모는 옛 한아비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거칠 게 없다. 중앙아시아의 알타이산맥을 넘어 중국의 동북쪽으로 민족의 이동을 한 게 기원전 이천여년 전. 초원의 빛은 이제 사라졌으나 그 넋은 겨레의 맥박속에 깃들여 숨 쉬고 있다. 겨레의 전통 풍악 가운데 하나인 북 장구 소리도 듣기에 따라서는 말이 달리는 리듬이요, 소리상징이라는 풀이도 있다. 있음직한 풀이다. 언어의 계통으로 보아 한국 몽고 토이기 퉁그스 말은 원시 알타이 공통어에서 갈라져 나온 갈래들이다. 중국의 북부, 시베리아의 남부, 만주전역에 걸쳐 사는 사람들을 이르러 몽고족이라 한다. 따지고 보면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흉노(Hun)족도 몽고족이다. 이 겨레들이 우리와 다름 아닌  한 줄기의 겨레붙이들이지를 않는가. 몽고족이 두려워 만리장성을 쌓게 되었으며 게르만의 대이동이  일어나 온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말이 용의 자손인가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윤혜영의 '선구자'에서)

  말과 선구자. 본디 선구자란 말 자체가 제일 앞에서 말을 타고 겨레붙이를 이끄는 사람이 선구자가 아닌가. 거룩한 분이 태어 나면 좋은 말이 생겨 나는 법. 말을 타지 않은 영웅이나 무사(武士)를 생각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를 보면 임금의 상징을 '말뚝'으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른바 마립간의 마립(麻立)이 그러하다. 말뚝은 '말'에서 갈라져 나온 파생어로 원관념은 바로 타고 다니는 말과 걸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금이 타는 말과 그 수는 신하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다. 마리 - 말은 제일 높은 곳, 높은 부분을 이른다. 원래 짐승으로서 말은 머리 부분 갈기로서 상징되기도 하니깐. 우리말로는 말(馬)이고 토이기말에서는 모린(morin)이라 한다. 만주말에서도 모린(morin)이요, 퉁그스말에서는 무린(murin), 독일말에서는 마레(mahre), 영국말에서도 매어(mare)임은 모두가 우리말의  말과 서로 걸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의 영조 무렵 이서(李署)의  마경초집언해(馬經抄集諺解)(상) 에는 말의 내력에 대하여 풀이하고 있다.

  말의 부모에 대하여 동계(東溪)가 물었다. 하니 곡천(曲川)선생이 이르기를 물론 말도 조상이 있다. 용의 아들이요(龍之生也), 개벽의 시기에 처음  동해바다에 두 용이 있었으니 산을 폈다 놓았다 해서 그 이름을 굴강(屈强)과 굴여자(屈女子)라 하였다. 다시 굴여자는 나는 토끼를 낳았으며 나는 토끼는 기린을 낳았다. 이어 기린이 말을 낳았는데 천황의 이름도 용구(龍駒)라 했음을 보면  임금과 용과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긴 용은 바로 힘의  상징이며 물불을 다스리는 통치기능의 이정표가 아니었던가. 말은 바로  먹거리 싸움에서, 또는 말의 고기와 젖을 이용하였고, 밭갈이의 큰 도움을 주었으니 이래 저래 말의 쓸모란 엄청난 것이었다. 좋은 말을 가졌음은 오늘날의 날쌘 전차부대를 가진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마경언해로 이어 보자. 뒤에 말이 사람을 물고 뜯어 먹음으로 말미암아 동중선이란 이가 말의 쓸개즙을 따버린 후에는 물고 차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이름하여 말이라 하였다는 것. 왕의 이름을 용과 말로 드러냄은 적어도 당시에 용이나 말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나를 엿보게 한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 말이 땅이름에는 어떻게 되비쳐졌을까. 먼저 마한(馬韓)의 경우를 떠 올릴 수 있다. 풀이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말마(馬)의 뜻과 무슨 걸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말이 주요한 값을 지닌 것처럼, 으뜸 가는 짐승이듯이, 마한도 제일 가는 '머리에 값하는 한(韓)'이라 하면 어떨는지. 기실 삼한 가운데 가장 먹고 살 게 넉넉 하게 나는 곳이 마한이었음은 널리 아는 사실이다. 고을마다 말무덤과 걸림이 있는 경우도 있거니와 마산리(馬山里)란 동네 이름을 쉽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남의 마산(馬山)임은 물론이다. 부족의 왕이 있었던 곳을 금마(金馬)라 해서 말과의 상관을 보여 주는 데는 오늘날 전북의 익산이다. 본디는 금마(今馬) - 금마(金馬)라 했으며 그 영현에 셋이 있었는데 옥야(沃野)란 데가 있다. 충청도 옥천도 마찬가지지만 '옥(沃) - 성(聖) - 마(馬 摩)'의 대응을 보여 준다. 뜻으로 읽어 '걸'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도개걸의 걸이나 같은 뜻이다. 거룩한 사람, 건 땅이 모두 말과 무관하지가 않다. 익산의 읍이름을 마주(馬州)라고도 하나니 왕궁터가 있다. 익산에는 마용지(馬龍池), 용화산(龍華山)이 있어 말과 용의 상징이 곧 임금으로 이어진다. 일억년이나 지구를 뒤흔들던 공룡의 변종으로서 말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하였든 용이 하지 못할 게 없는 물체이듯  말의 위력 또한 그러하며 임금의 권위도 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말 때문에 일어난 싸움

        말은 가려 울고 님은 잡고 아니 놋네
        석양(夕陽)은 재를 넘고 갈길은 천리(千里)로다.  
        저 님아 가는 날 잡지 말고 지는 해를 잡아라

  말 때문에 일어난 싸움으로는 말 생산으로 이름 난 제주도를 들 수 있다. ≪고려사≫를 보면 충렬왕 때의 일이다. 왕3년에 원나라는 제주도를 목마장(牧馬場)으로 삼았는데 왕20년에 간청하여 탐라도(지금의 제주)를 되돌려 받는다. 왕26년에는 다시 원의 왕비가 말을 놓을 목마장으로 삼는다. 그 뒤 왕21년엔 원의 비서 유원경으로 말을 가려 원의  궁중에 보내는 간선어마사(揀選御馬使)를 삼아 제주에 보냈는데 제주 사람들이 어마사와 목사를 죽였다. 이 난을 평정한 이가 저 유명한 최영 장군이었으며 우왕 때 이르러서는 제주만호(萬戶) 김중광이 마침내 원나라 관리의 목을 치는 일이 일어 난다. 조선 왕조 때에 궁중에서 필요한 수레와 말을  관리하던 관청이 사복시(司僕侍)였다. 사복시의 말을 사복마라 했으니 오늘날 교통체신의 구실을 했던 것이다. 서울역의 역(驛)도 '말을 갈아 탄다'는 뜻이요, 공무 수행으로 다니는 말을 파발마라 하여 서울에서 신의주에 이르는 사이에 곳곳에 역을 두었다. 말잡이를 마정(馬丁)으로, 말먹이통을 말구시, 말의 병 고치는 이를 마의(馬醫), 콩이나 겨로 여물을 섞어 쑤어 주던 죽을 말죽(지금의 말죽거리가 그 보기임), 역마를 관리하기 위한 전답을 마전(馬田)등으로 썼던 기록자료들이 있다. 하기야 말이 기관차 곧 쇠말로 바뀌었을 뿐 본 바탕은 하나도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암행어사의 징표로서 쓰는 패에는 반드시 말이 그려져 있으니 말은 곧 군사작전의 상징으로 쓰이었다.

  길고 짧은 점만 뺀다면, 입으로 하는 말(言)이나 타는  말(馬)이 구실로 보면 같다.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소리로 옮기는 게 말이요, 짐이나 사람을 태워 옮기는 짐승이 말(馬)이다. 말이 없으면 사람이 올바른 사회생활을 할 길이 없다. 타는 말에도 좋은 말(良馬)이 있고, 못쓸 말(駑馬)사람을 해치는 말(凶馬)이 있다고 했다(이서<마경초집언해>). 우리 입으로 하는 말도 그러하다. 나와 다른 이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말, 아름다운 정서가 담기는 말, 겨레의 얼이 담기는 말을 쓸 수 있다면, 올바른 말이 받아들여 지는 세상이 된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꼭 그렇지만은 아니하다. 겉다르고 속이 다름을 마각(馬脚)이라 하거니와 우리 모두 같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힘 - 마력(馬力)을 길러야 한다. 이제 타는 말이 권위의 상징인 때는 갔고, 모두가 함께 입으로 하는 말은 하루도 끊임 없이 한다. 말은 슬기요, 인간의 정신이다. 해서 모든 종교의 경전이 말로 적힌다. 큰 뜻을 위해서 말 달리던 선구자들의 얼을 키워 갈 일이다. 평화를 이끄는 말이 열매를 맺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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