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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1. 강은 우리의 어머니

         어사매, 그 가로지름의 속내

        무르녹는 봄언덕을 말 놓아 동쪽 들녁 가네
        여름지이를 재촉하는구나. 열성으로 지어보세
        올해 남쪽 들은 얼마나 농사가 되려노
        간밤에 흠씬 내린 비는 나라님의 은덕일레
        (홍귀달의 한시에서)

  산이 있는 곳에 언덕이 있고 물이 흐른다. 때로 내는 굽돌아 흐르며 고이다가 곧게 내려 크고 작은 사람의 삶터를 빚어 낸다. 남으로는 치악산이 구름처럼 드리워 있고 동으로는 태기산이, 북으로는 어답산이 병풍을 치듯 둘러 있는 곳, 이 중에 벌을 가로 지르는 남천을 따라 꽃 피듯 펼쳐진 데가 횡성이다. 역사란 사람과 자연환경의 걸림이요, 사람과 사람의 걸림에 뿌리 내린 내력이질 않는가. 본디는 고구려의 땅으로 어사매(於斯買)라 하였으며 신라의 35대 경덕왕 16년에 황천(潢川)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고려 현종 9년 춘천에 속했다가 뒤에 원주로 바뀐다. 공양왕 원년에 현감을 두었으며 조선왕조 태종 때에 이르러 횡성이라 했다. 까닭인즉 홍천(洪川)과 횡천은 소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 이를테면 같은 소리로 이어 있는 곳을 부르는 것은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땅이름으로 보아 천(川) 계열의 땅이름은 거의가 고구려계로 보면 된다. 물론 고구려 이전, 삼한 적에는 진한의 땅이었지만. 조선조 태종은 친히 횡성을 찾아 군사훈련(講武)을 가진 바 있어 지금도 치악산 쪽에는 태종대라 불리는 곳이 있다. 대동지지 전고 부분을 보면 나라가 어지러운 때 정의를 부르짖고 민중봉기를 꾀한 기록이 나온다. 인조 5년 병자호란(1627)이 일어난 때이다. 인조가 왕의 자리에 올라 서인이 정권을 장악해서 청나라를 배척한 결과 빚어진 난리. 임진왜란의 포성이 멎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전쟁이 나니 백성들은 살 길이 묘연했다. 생불여사라, 죽지못해 사는 게 아니었을까.

  때에 횡성 땅의 이인거(李仁居)는 스스로 의로움을 내세워 사회개혁을 부르짖었으나 받아 들여 지지 않았다. 벌이 내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인거는 뜻을 함께 하는 수백명의  동지를 모아 동헌을 쳐들어 갔다. 현감 이탁남(李擢男)을 묶은 채 무기를 빼앗고 군사들의 진을 치고 높은 언덕에서 서울로 쳐들어 갈 꾀를 내고 있었다. 임금은 계엄의 명을 내리고  주위에 있는 군사들로 하여금 군사 요충지를 지키게 하였다. 한편 삼남의 병사들로 횡성 주위에 대기를 명하고 때를 기다렸다. 마침 원주목사 홍보라는 이가  군사를 이끌고 이인거를 붙잡아 난리를 가라 앉혔다. 왜 문제가 일어 났는지는 안따져 보고 사람만 족치면 뭐가 되는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닌가.

                '어사매'와 횡천(橫川)

  횡천은 본디 어사매(於斯買)라 했다.  고구려 계열의 땅이름에 매홀(買忽) 등과 같이 '매'가 나오는데 이는 모두 물(川 水 江)을 이른다. 하면 '어사'는 무엇인가. '엇간다 비껴 간다'는 뜻의 한자소리를 빌려 쓴 말쯤으로 풀이하면 된다. 그러니까 '어사 - 엇(橫)'이란 말로 간추릴 수 있다. 횡성이 남쪽벌을 흐르는 남천(南川)의 말미암음에서 '횡천 - 엇매'가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의 남쪽 5리 쯤에 흐르는데 뿌리샘은 원주 치악산에서  시작된다. 산음(山陰) 즉 산의 북쪽으로 흘러 회현(檜峴)을 지나 우무골(井谷)의 북에 이른다. 갑천의 서류를 지나 흘러 서천과 함께 만나 원주의 섬강으로 든다. 간추리면 치악산을 북쪽으로 해 거꾸로 흘러 다시 꺾어져 현의 남쪽을 가로 지나는 특성을 떠 올려 '엇매 - 횡천'이라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횡성으로 바뀌었지만 마을이 이루어지는 곳에 물이란 가장 결정적인  알맹이가 되는 법. 하긴 물과 땅은 먹거리 생산과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니까 말이다. 이르자면 우리 삶이란 물과 땅의 맞걸림이라 하겠다.

  엇먹는다든가 빗나감은 좀 삐딱한 느낌을 준다. 요즈음 텔레비전에도 횡성장이 소개되거니와 왜인들이 강제로 점령, 마구잡이로 빼앗아 갈 때 안성 개성과 함께 횡성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장사를 해 재미 본 일이 없다고 한다. 그건 한국사람들이 한국사람의 물건을 팔아 줌이 마땅했기 때문. 수입 농산물, 걸핏하면 외제 상품이 머리를 들고 어린이 옷가지부터 외국말이 버젓이 눈에 띄는 건 참말로 부끄러워 해야 될 일이다. 일본인의 눈에는 가시처럼 보였을 게 뻔한 노릇.

                태기의 못 이룬 꿈

  산이 높으면 골짜기 또한 그윽하기 마련. 횡성의 산 하면 태기산이요, 어답산이다. 한국의 허리뼈 태백의 용틀임이 서남쪽으로 물결치다 오대산(1563)이, 계방산(1571)이, 다시 태기산(1261)의 서기 어린 매듭으로 솟아 오른다. 진한 무렵 마지막 왕이던 태기왕이 신라의  첫 임금 박혁거세와 삼랑진에서 자웅을 겨루다 쫓기고 몰리어 마침내 오늘날의 태기산에 배수의 진을 쳤다. 해서 아예 산이름조차 태기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한반도의 허리에서 일어나 고조선의 대통이라 할 예와 맥의 얼을 깊이 지키고 마한 변한을 어우러 이르러 삼한 통일의 불같은 꿈이 있었는데. 끝내 박혁거세의 세에 몰려 태기산에 쌓았던 성이며 모든 살림을 던져 버리고 심지어 임금의 신표인 옥쇄도 던지고 도망하여 버린다. 해서 태기산 동쪽에는 옥산대(玉散台)란 곳이 있기도 하다. 싸움에 쓰던  칼이며 갑옷을 씻었다 하여 산의 서쪽으로 흐르는 내를 갑천(甲川)이라 했다는 거다. 정말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갑천내 둘레에는 아기장수 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온다.

  감내라 하는 곳에 가면 소따배기와 강신터라는 데가 있다. 소따배기 위에서 뛰어난 장수가 나오므로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하는 일에 큰 구실을 했다는 것. 해서 일본의 강점기에는 소따배기 어름 쯤에 혈맥을 끊는다 해서 큰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고 전한다. 그럼 강신터는 무얼 하는 데인가. 다름  아닌 성황터, 흔히 이르는 서낭터라 이르는 곳이다. 옛부터 성황목으로 소나무가 많이 늘어서 숲을 이루었다가 뒤에 사람들이 베어 내 버리고 지금은 그 자리에 기독교의 교회가 들어서 아침 저녁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으라는 종을 울린다. 예나 지금이나 귀신을 모시기는 마찬가지요, 한국귀신이 서양귀신으로 바뀐 것뿐이다. 하필이면 교회뿐이랴. 한다 하는 산의 쓸만한 자리이며 산천에 제사 지내던 곳엔 거의 절터가 되고 만 것도 그러한 보기요, 절 없애고 백운동 서원 같은 유교의 배움터를 지은 게 다를게 하나도 없다. 절에 가면 크고 오래 된 절간일수록 국사당(國師堂)이나 칠성각(七星閣)이 있다. 이 모두가 전통신앙의 종교 공간이었으니 여기에 외래 종교가 들어 와 함께 어울리는 믿음의 어울림터를 인정한 셈.

                갑천은 중앙을 흐르는 내

  횡성 지역에 가뭄이 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강신터에 와서 태기산의 산신(山神)에게 이바지를 드렸을 게 분명하다. 그로 말미암아 농사는 뜻대로 풍년이 들고 나라는 평안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키워 나아갔던 것일 게다. 옛적의 여름지이 시대로 올라가면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으며 이런 일이 거듭되어 세시풍속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신본위 중심의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살았던 터. 갑천이란 땅이름도 무슨 걸림이 있는 듯하다. 본 바탕은 물의 이름이나 땅의 그것으로 아예 굳어진 보기이다. 옛부터 불러오는 갑천의 땅이름은 '갑내'이다. '갑'은 가운데 중앙을 뜻한다. 한가위의 경우만해도 그러하다. 가운데의 '갑'에 접미사 '애'가 붙어 이루어진 '가배'에서 소리가 바뀌어 '가위'가 되며 여기에 '좋다 크다 제일 가다'의 뜻을 보인 '한'이 어울려 '한가위'가 되기에 이른다.

  갑내의 '갑'은 신(神)을 뜻하는 감(검)에서 비롯하여 '감(검) - 갑 - 갚'과 같은 말의 겨레들을 이룬다. 신이라면 무슨 신인가. 그건 물신이요, 땅신을 속으로 하는 지모신(地母神)의 개념이다. 갑내 - 갑천은 횡성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금강의 지류인 대전의 갑천, 강원도 평강에도 갑천이, 지리산에도 갑천이 있는바, 모두는 중앙천이란 뜻이 된다. 평강의 갑천에 걸림을  둔 얘기는 횡성의 그것과 비슷하다. 후고구려의 궁예가 갑작스런 침략에 도망할  때, 내 위에 갑옷을  버리고 달아 났기 때문에 갑천이라 불렀다는 것. 사실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말 특히 땅이름에 사회언어학적인 풀이가 될 수 있다는 볼모에서라면 역시 중앙을 흐르는 큰 내, 더 올라가서 지모신 숭배의 소리상징이 아닌가를 상정할 수 있다는 줄거리. 우리 삶에 물처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태기산에서 흐르기 시작한 갑내는 골에 골물이 어우러져 원주의 섬강으로 들어 남한강의 또 다른 큰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름하여 횡성강  댐의 자리가 갑내의 물로 이루어 진다.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옛 조상들의 뛰어난  슬기가 있었다고. 잠시 횡성강댐과 관련하여 갑내 주변의 땅이름을 보자.

                화전 갑내 금대는 댐을 암시하고

  먼저 강물이 모여 담기는 곳에 가마골이 있다. 물이 담기는 가마라면 그처럼 큰 가마솥이 있을까. 물론 땅의 모양이 가마처럼 생길 수도 있다. 이 곳이 갑내 주변의 들로서는 가장 큰 벌판이다. 이 곳에서 나는 쌀이며 누에고치는 고치와 쌀농사에 있어 단연코 다른 지역보다 앞서 감은  바로 크고 넓은 분지형 평야 때문이리라. 횡성의 또 다른 이름을 화전(花田)이라고도 하는 바 이는 바로 가마골에 이르는 물돌굽이에 지금도 화전이 있다. 물에 잠기면 꿈꾸는 전설 속의 마을이 되고 말겠지만. 꽃화라 꽃송이가 툭 튀어나온 모양으로 물이 돌아 흐르는  곳에 물에 떠 내려 온 흙이 모이다 보니 코의 모양으로 툭 튀어 나온 논밭이 되었다는 풀이를 하면 어떨까. 다시 거슬러 오르면 마무리라 하는 물굽이 마을이 있다. 여기에 뜻 있는 이가 있어 뚝을 막고 논밭을 일구어 많은 쌀을 생산하였다. 가마골에 물이 고이면 마무리 와서 댐의 물이 마무리 된다는 얘기가 전해 왔던 터라. 댐이 서는 쪽은 수백(水白)이라는 곳. 물이 희고 잡맛이 없어서인가. 갑내의 물이 물중에 으뜸이라 갑천으로 불렀다는 이름과 같이 수백의 경우도 그럴지 모른다. 횡성강댐이 막히고 물이 고이면 횡성은 물론이요, 원주시민들이 마시는 물, 경공업 단지에서 쓰이는 물이 모두 이 댐물로 채워진다. 낮이면 낮대로 호수처럼  맑고 푸른 물 위에 하이얀 낮달이 뜨고 많은 황새며 청둥오리 떼들이, 밤이면 흐르는 별과 달님이 물 위에 떠 올라 잠들었던 태기왕의 전설을 말 없이 미소 짓는 물줄기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갑내는 본디 '감내'라 이르는 이름에서 말미암는다고 했다. 지형으로는 중앙을 흐르는 물이지만 지모신 상징으로라면 물신이요, 땅신이라 할 섬김의 대상이 된다. 농경사회에서는 지모신 이상 가는 주요한 숭배의 대상이  달리 있을까. 결국 땅과 물을 잘 받들고 보존하라는 조상의 숨은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겨레의 번영이 될테니 말이다.

                '금대'는 비파를 연주하는 무대

  큰 바람이 불면 많은 곳에 영향이 가듯 땅이름도 그렇다고 본다. '갑내 - 감내'의 경우 물신(水神)상징의 '감(검)'은 가마골이나 한 지류인 금대(琴台)천 흔히 이르는 검두마을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감 -  검 - 금'은 모두 물신이며  조상신을 뜻하는 물신앙에서 말미암는다. 일종의 같은 뜻을 밑으로 하는 표기적인 변이형들이 되는 셈이다. 금대 하면 글자 그대로 비파를 연주하는 무대란 말. 신에게 제사를 모시려면 무당의 노래와 기원이 있게 마련. 여기에 바람과 구름의 노래가 어울린 자연의 교향악이라면 어떠하리. 방위로 보아 '검(감)'의 물신은 북쪽상징으로 드러난다.  갑내(감내)야말로 중앙천이자 횡성의 동북을 돌아 서북으로 이어 지는 북쪽의 강이 된다. 집단무의식으로 보면 우리 겨레들은 두고 온 조상들의 땅이 시베리아며 만주 벌판, 더 거스르면 중앙 아시아의 빛나던 초원(草原)의 영광에 대한 짙은 향수가 있어 그러할지도 모른다. 임금도, 조상신도, 별신앙도 모두가 북녁지향성이 강하다. 고려나 고구려는 보기에 값하는 왕조들이었다. 실제로 뜻을 펴 보진 못했을지라도. 해서 북으로 모진 바람이 막히고 따스한 남쪽 들판 어디쯤에 해 밝은 동녁으로 문을 내고 아들딸 낳아 오손도손 살기를 원하는  흐름이 생겼는가. 어답산이 그러하고 가장 깊은 산골로 치는 병지방도 그런 이해가 가능하다. 적어도 왕으로서 태기는 병지방과 어답산에 군사를 놓아 지키게 하고  둔내(屯內)쪽에 병사의 진영을 주둔케 했던 것도 갑내로 빚어지는 농업생산과 싸움할 때 지리상의 긴 점을 샀기 때문일 것이다. 바르고 꼿꼿한 어사매 - 횡성의 정기가 태기산이듯 갑내이듯 굽이져 길이 흐를 일이다.


                비파처럼 아름다운 금호강

        맑고 잔잔한 금호강에 배를 띄우네
        오가며 하얀 물새를 가까이 하지
        자연에 취하여 달이 밝도록 노닐다 배 저어 돌아 가노라
        멋으로라면 오호(五湖)의 그것에 비길 수가 없구나

         (서거정의 '대구십영'에서)

  말의 역사로 보아 가장 잘 바뀌지 않는 게 땅이름이요, 그 중에서도 강의 이름은 더욱 그러하다. 서울의 경우 한 때 한산주 한주 한성 한양으로 불리웠으며 일제의 강점기에는 경성으로 쓰였지만 다시 서울로 쓰이지  않던가. 세월의 굽이를 돌아 끈끈한 그리움처럼 되쓰임을 누구라서 막을 수 있을까. 땅이름이 보수적일수록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강이름에 역사가 되비칠 수 있다. 금호강의 '금호'에 대하여 그 속내가 어떠한가를 더듬어 본다. 경북지명총람을 따르자면 바람이 불 때 갈대밭에서 비파소리가 나기 때문에 금호라고 했다는 것. 재미있는 풀이다. 갈대는 여러  곳에서 살아간다. 물이 흐르다 늪이 되는 장소라면 마다 않고 갈대들이 모여 산다. 하필이면 금호뿐일까. 땅이름으로 보더라도 금호는 영천에도 창원 마산에도 있다. 그것도 같은 한자를 써서 말이다. 행여 물신과 땅신 곧 지모신 상징을 드러낸 강이름이 아닌가 한다.

  농업생산은 땅과 물에서 말미암는다. 먹거리는 겨레의 번영이며 자기보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니, 옛적 샤머니즘 시대에는 물과 땅에 신격을 부여하여 온 나라가, 농사가 시작되고 끝날 때를 가려 제사하였다. 이르자매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등이 모두 여름지이와 걸림을  보이는 지모신 숭배의 보기들이다. 짐작하건대, 금호강의 '금(琴)'도  지모신을 가리키는  소리상징일 가능성은 없는 걸까.

                '금(琴)'과 지모신

  금호강의 뿌리샘에 걸림을 둔 대동지지 의 이야기를 떠 올려 보자. 금호강은 청송과 영천의 사이에 솟아 있는 보현산(또는 모자산(母子山))의 남쪽에서 말미암는다. 물은 흘러 빙천으로 다시 자율아천이  되어 병풍암과 신녕의 서편을 돌아 영천을 굽이쳐 흐른다. 죽방산의 남쪽에  이르러 남천 범어천 시천 영지산천을 지나 물띠미 곧 하양의 강을 이룬다.  관란천 황율천 반계 남천이 어우러져 대구의 사수 진탄내가 되며 신천을 왼쪽으로, 해안천을 바른쪽으로 해 여천의 서편에 들어 금호진에 다다른다. 해서 하빈을 지나 낙동강의 긴 가람을 이루어 한반도의 남쪽 허리를 휘감아 메마른 벌을 적시운다. 이밖에도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화성지(花城誌-화성=하양) 와 같은 자료에서 크게는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금호강의 흐름을 타고 떠 내려 온 흙과  모래가 쌓여 경북에서 으뜸 가는 금호평야 혹은 대구평야가 삶의 터전을 만들어 준다. 강을 둘러 싼 자연부락은 크게 1직할시 5군 1시 25개의 읍면이나 된다. 물이 있는 곳에 마을이 이루어짐은 자연스러운 일이요, 자연의 한 섭리이기도 하다. 금호강은 모자산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보현산이나 모자산이  같은 산이기 때문에 그렇게 본 것이다. 그럼 금호강의 금(琴)과 모자산의 모(母)는  어떤 걸림이 있단 말인가. 강은 여름지이의 어머니요, 삶의 뿌리에 값한다. 강을 가람이라 하거니와 가람의 본질은 갈라짐에 있다. 마을과 마을이  갈라지며 넘실거리는 삶의 무늬로 짜여진 목숨살이들이 깃들인다. 가람은 생명현상의 말미암음이요, 모태라 하여 지나침이 없다. 다스리는 영지이며 거룩한  믿음의 터전이 된다. 금호강의 '금'과 지모신의 '모(母)'가 마주 걸릴 가능성은 다음의 몇 가지 보기로서도 커 진다.

    금성(金城)-모성(母城)(대동지지)웅천(熊川)-웅신(熊神)-금주(金洲) (대동지지)금강(錦江)-웅천하(熊川河)(대동지지)금호-모자(母子)(대동지지)왕검(王儉)-궁홀(弓忽)-금미(삼국유사)

  위의 보기로 보아 '금-어머니'의 서로 맞걸림을 엿볼 수가 있다. 말의 뿌리로 보아'곰(고마)'에서 나온 말임을 알게 되는바 이는 단군왕검의 어머니신이 웅신(熊神)이요, 웅녀가 되기로서이다. 인류학에서라면 곰 우러름은 짐승을 사람의 조상으로 여기는 곰토템을 믿는 수조신앙에서 비롯한다. 우리말로는 어떻게 '곰-어머니'의 대응을 풀이할 수 있을까. 사람의 목에서 피어 나는 소리는 그 바탕이 마찰음으로 곧 갈림소리이다. 그러니까 갈림소리로 인식되지 않는 다른 소리들은 경우에 따라 약해지면 갈림소리로 되었다가 소리가 더 약해지면 아예 소리값이  없어 진다.

  곰(고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징성으로 보아 곰(고마)은 굴 북방 뒤 겨울 목소리 물 등을 드러 낸다. 곰을 조상신, 어머니신으로 숭배하자매 당시 사회의 가치지향이 곰의 속성과 멀리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곰(고마)의 머리소리가 약해 지면 홈(호마)이 되고 다시 약해 지면 옴(오마)으로 소리 난다. 간추리면 '곰(굼)-홈(훔)-옴(움)'이 된다.우리말 '어머니'의  사투리말을 보면 '어머니 엄니 어무이 엄마 어머이 어메 오마니 옴마 오매'와  같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말을 한다. 이들 가운데 오마(옴마)형은 '곰(고마)-옴(오마)'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곰을 짐승으로만 보면 그뿐이겠으나 이같이 사람의 조상이라는 의미부여가 되면 사뭇 달라 진다. 조상신이요, 어머니신이 되는 법. 만주 지방의 에벤키말에서도 보면 곰을 호모뜨리. 조상신을 호모꼬르(homokkor), 영혼을 호모겐(homogen)이라 해서 우리와 거의 비슷한 소리모습을 보여  준다. 아직도 아무르 강 유역에는 곰신앙을 갖는 사람들이 2~3만 가량 살고 있다는 것. 이들은 모두가 고아시아족으로 짐작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오백년전의 자료를 보더라도 고마(곰)가 경건하게 숭배하고 흠모해야 할 대상임을 보여 주는 보기들이 있다(고마敬고마虔고마欽<신증유합>). 눈에 띄이는 것은 같은 말'곰(고마)'이 땅이름 등에서 뒤로 오면 거북으로 바뀌어 쓰이는 경우이다(熊神 龜山(세종실록)人君以玄武爲神(한서)前朱鳥後玄武(예기)). 하긴 한반도에서 곰보다는 거북이 많이 살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사회변동의 결과라고 하겠다. 유목생활에서 따스한 남쪽으로 정착하면서 농경생활의 사회로 변동을 하였다. 해서 곰의 숭배보다는 농업생산에 필요한 물과 땅신에 대한 믿음 곧 지모신 믿음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동물상징도 물과 뭍에서 함께 살아 가는 거북이 곰의 자리에 들어 간 것이다. 기존의 살핌에 따르면 거북도 곰과 같은 음절구조를 보이는 '검(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박지홍,1957,구지가 연구). 그 보기로 양산지방의 민요인 '왕거미노래'를 들고 있다. 하긴 함안지방의 땅이름인 현무(玄武)나 앞에 든 <예기>의 현무도 이두식으로 읽으면 '검'일 가능성이 엿보인다(玄(검) + 武(ㅁ) 검). 하면 '검 + 음(이) 거믐(거미) 거뭄 > 거붑 > 거북'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쓰인다는 풀이를 할 수 있다. 우리말로 신은 '검'이니까.

  한편 곰(고마)이 북쪽 추운 지방에 살았으며 우리의 선조 또한 그러했으니 북방을 위로 할 수밖에. 선조가 살았던 고향이니까, 두고 온 산하이니까, 마치 월남한 겨레들이 북쪽을 그리워 하고 절을 하듯이 말이다. 곰(검)의 또 다른 변이형이라 할 '감-검-굼-금'으로 적히는 땅이름에서도 같은 상징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주의 금강이 그러하고 대구의 금호강도 예외가 아니다. 굴만해도 그러하다. 삼국유사 의 단군신화에서 굴속에서 호랑이와 곰이 함께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삶을 누린다. 그 곰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그 굴 또한 조상들의 집이었음에 틀림 없다. 기록에 따라서는 여름에 새둥우리 같은 나무 위에 집을, 겨울에는 굴속에서의 집을 꾸리고 살았다는 것(후한서 삼국지 등). 이 굴속에서 스무하루의 통과제의를 거쳐 곰이 사람의 몸을 입는다. 더  좁혀 보면 모든 생명은 굴(구멍)의 모양을 한 보금자리에서 태어 난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모태에서 태어났으니 말이다. 마침내 곰신앙을 지닌 겨레들의 삶이 단군신화에 되비쳐졌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굴살이 곧 혈거생활은 공주 석장리나 서울의 암사동,춘천의 굴집 따위에서도 그러한 개연성을 찾아 볼 수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곰은 추운 지방에서 살던 이들에게는 주요한 먹거리이기도 하였다. 리지린(1927)의 조선경제사 에 따르면 곰의 살은 먹거리요, 가죽은 이불과 옷거리이며, 그 뼈는 짐승을 잡는 도구이며 동시에 집을 짓는 좋은 건축재료였다는 것이다. 곰은 의식주 생활의 참으로 귀한 물질의  샘터가 되었으니. 해서 퉁구스 겨레들은 곰을 사냥할 때도, 먹은 뒤에도 곰제사를 지냈을터. 사회변동이 일어 나면서 농업생산에 주요한 공간이자 뿌리는 땅과 물이었으니 곰(고마)이 드러내는 변이형 가운데에서는 이들 땅과 물에 신격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오늘날의 말에서 감사하다는 우리말을 본디는 '고맙다'고 한다. 이를 쪼갈라 보면 '고마'에 접미사( ㅂ다(如))가 붙어 된 것인데  속뜻은 '당신의 은혜가 나의 어머니(고마)와 같다'는 알맹이다. 결국 금호의 '금'은 곰이요, 어머니 즉 지모신 상징의 강이름이 된다. 산이름 팔공산에서도 풀이하였지만 본디 이름은  공산(公山)으로 금호의 '금'과  더불어 그 뿌리는 곰신앙-지모신 신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금호와 물신

  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움 튼다. 사람의 역사는 물과의  걸림을 풀어 가는 삶의 과정이라면 어떨까. 넘쳐 흐르는 홍수를 다스리고 이를 삶의 편의로 이끌어 드리려는 애씀. 가물어 온통 누리가 생기를 잃어 갈 때 어디에 편안한 안식이 있을까. 앗시리아나 이집트에 전해 오는 천지창조는 물과 흙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말미암는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 언제나처럼 출렁이는 바다의 파도에서 생명이 비롯된다는 것이며 그리이스 신화에서는  물이 여자요 생명의 어머니란 것. 물은 생명의 뿌리이며 영혼과 육신이 함께 만나는 매개체로 값매김 된다. 단순한 홀세포의 생물일지라도 세포들은 물로 차 있으며 고등생물일수록 조직의 배합과정은 물분자와 긴밀한 걸림을 보인다. 물과 더불어 농경문화가 정착되었고 문명의 새벽이 열리기에 이른다. 나일강, 티그리스강, 인더스강, 황하강의  문명이야말로 물에 따른 삶의 터전이라 할 것이다. 신화학자 바슈라르는 물을 재생과 사랑, 죽음과 영혼의 상징으로 풀이한다. 문학공간으로서 바다 혹은 강은 더욱 그러하다. '공후인 청산별곡'이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 삼국유사 의 고조선조에 나오는 곰의 상징이 농경생활로 접어 들면서 물신의 보람으로 바뀌어 쓰인다. '곰'에 걸림을 둔 이야기의 보기를 더듬어 볼 수 있다('금강' 부분을 참조).

  공주의 곰나루 전설이나 구례, 또는 중국의 후민 마을의 곰사당 이야기, 대구의 연구산 이야기의 자료에서 곰이 물과 깊은 걸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풀이하였듯이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바뀌면 곰의 상징성은 그 속내를 달리 하기에 이른다. 물신과 땅신-지모신 상징을 떠 올리는 구실을 '곰'이 맡게 된다. 같은 말이라도 쓰임이 달라지면 뜻이 달라지니까 말이다. 거북과 걸림을 둠에 있어 먼저 거북의 생태를 보자. 거북은 물과 뭍을 고루 다니며 배고픔에 오래 견딘다. 물가의 모래땅에 구멍을 파서 알을 낳고 굴안에서 새끼를 기른다. 마치 곰이 굴안에서 사는 모습과 비슷하다. 민요나 땅이름 자료에서 '거북'의 또 다른 말인'검(거무 거미)'은 곰(고마)의 소리마디틀과 같은 것으로 보이며 암시하는 바가 크다. 민간신앙에서의 물신앙 분포는 아주 폭이 넓으며 모습이 다양하다. 반드시 신령한 '거북-검(곰)'으로만 드러 나는 건 아니며 직접 무당이  물신굿을 정성스레 올린다. 예컨대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물신굿의 분포는 어떠한가.

        (물신앙의 분포)
  용당별신굿(문경호계)동해안별신굿(울진)무지개샘제사(경산용성)칠성바우제(경산용산)용담제(경주현곡)하회별신굿(안동하회)청송약수제(청송진보) 조왕신굿(영일군죽장)

  참으로 물에 대한 믿음은 깊고 넓다. 마치 샘물이 모여 내를 이루어 바다에 이르듯이 말이다. 그뿐인가. 삼국유사 의 박혁거세 부분에 나오는 신비스러운 우물 '나정'과 그의 부인 알영과 걸림을 보이는 '알영정'의 경우도 물의 신앙과 깊은 걸림을 보여 준다. 물이 있으매 온갖 삶이 보금자리를 튼다. 풀이한 바와 같이 금호강의 '금'은 소리상징으로 보아 물이요, 구멍이요, 뭇목숨을 거느리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닌가. 금호강은 어머니 강이요, 겨레 만대로 이어 살 삶의  터전. 한데 이게 웬일인가. 먹다 버린 쓰레기로, 공장이나 농장의 폐수로 오염되어 작은 피라미조차 살 수 없게 되어 가다니. 우리가 우리의 젖줄이요, 어머니를 못 살게 하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안된다, 안돼.

                '금'과 땅이름의 걸림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강이 흐르는 데면 자연스레 사람 사는 마을이 이루어 지고 여름지이가 일어 나는 법. 118키로나  되는 금호강이 조상신 숭배를 뜻하는 어머니강이라면, 그 물줄기를 따라 만들어 진 둘레에 '금'과 같은 뜻을 보람으로 하는 공간들이 생기게 마련. 방언으로는 이들  가장 영향력이 있는 말의 영향을 물결에 기대어 개신파(改新派)라고 이른다. 금(곰, 고마)의 소리마디 틀은 '자음-모음-자음-모음'으로 미루어 볼 수 있다. 이 틀에 맞추어 이르는 땅이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우리 글자가 없어 한자를 빌어다 땅이름을 적었던 때가 있다. 이르러 글자  빌림 시기라고나 할까. 한자의 뜻을 빌면 훈차(訓借)요, 소리를 빌면 음차(音借)가  된다. 말은 있으되 이를 적을 글이 없었으니 달리 할 길이 없었기 때문. 뜻빌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땅이름엔 웅(熊) 부(釜) 구(龜)  현(玄) 흑(黑) 음(陰) 칠(漆) 계열의 땅이름이 있다. 각 계열에 따른 땅이름 지도를 그려야 할 것이나 몇 가지 보기로 대신한다.

        (뜻 빌림의 땅이름들)
   웅진(공주)웅천성(창원)웅암(음성)웅곡(선산)웅고산(의주)웅산(창원)웅남(순천)웅도(영흥)웅령(진안)웅림(회양)웅양(거창)웅이(갑산)웅지(여산)웅현(전주)웅포(함열)구미(선산)구포(부산)구성(김해)구산령(안동)구산포(칠곡)구호(하양) 부곡(창녕)부산(부산)부곡포(웅천) 음죽(음성)현풍(현풍)현성왕(玄聖王)(신라)

  물신앙을 드러내는 땅이름은 예서 멈추지 않고 용(龍-미르辰 훈몽자회 )으로 벌어져 나아 간다. 이는 용이 물을 다스리는 물신상징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불교가, 유교가 들어 오면서 수호신으로서 용을 받들어 모셨기에 더욱 강력한 신앙으로 승화되었으며 권위는 물론 많은 땅이름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용성 용천 구룡 용전(경산)용계 화룡 용호 용화 용신 회룡 용전 오룡 용소 용계(영천지역)용수 용계(달성)등). 한편 소리빌림은 어떠한가. 주로 금(金 琴 錦 今)계열이  땅이름에 가장 많이 있고 감(검) 공(궁)계열의 땅이름도 보인다(금호 금물 김천 김해 금성 금락/감천(외감 중감 내감 가물 거물)/고모령(경산)공산(달성)공주(공주)공암(공주)궁동(대덕) 등).

  나무의 큰 줄기에 작은 가지가 벋고 많은 꽃잎과 잎새를 거느리듯 금호강은 자애롭고 정갈한 어머니의 그 모습을 그리면서 낙동강으로  든다. 그래도 그 물위에 푸른 하늘이 되비친다. 비록 오염으로 찌들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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