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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1. 강은 우리의 어머니

        백마강(白馬江)의 뒤안

        돌팔매를 던져도  
        닿을 수 있는 거리  
        강을 사이에 두고 나는 여기에
        너는 거기에 있다.
        언제나 건널 수 있던 강이
        오늘은 왠지 건널 수가 없구나.

       (남락현의 '강을 사이에 두고'에서)

  말 없는 강물이 흐른다. 그것도 흰 말의 기상으로 모래톱에 물자국을 남기면서 말이다. 한 시대의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백마를 탄 거룩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어두움을 밝히는 횃불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벗어남이랄까. 어지러운 현실을 뛰어 넘는 초월주의와 같은 것일 게다. 푸른 삶, 푸른 하늘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백제의 하늘가에 저녁놀이 물들고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진군의 나팔 소리와 함께 깃발을 펄럭이던 때. 망한 나라의 겨레를 이끌고 도침 스님, 흑치상지 장군과 함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백마의 기세를 드높이고자 했던 복신(福信)은 의자왕의 아들 풍장을 왕으로 내세우는 한편 일본에 구원병을 보내달라고 한다. 일만여명의 일본인 구원병은 백강(白江)어귀에 이르렀고 이를 맞이한 백제의 군인들은 나당 연합군에 맞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대세는 기울었는지라 다른 길이 없었다. 백제와 일본군은 싸우다 물에 빠져 죽는 길 밖에는. 여기 백강의 자리가 정확하게 어디인가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다.

  백강을 백마강(白馬江)이라 부른 건 무슨 까닭인가.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성을 칠 때다. 마침 강에는 안개와 구름이 비바람으로 뒤덮여 건널 수가 없었다. 때에 한 늙은이가 나타나서 이르기를 '백제의 의자왕이 밤에는 용이 되고 낮에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 때라 왕이 사람으로 바뀌지 않아 그렇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소정방은 백마의 머리를 베어 미끼 삼아 물속에 잠긴 용을 낚아 올렸다. 이윽고 안개와 구름이 걷히게 되어 강을 건너서 백제성을 빼앗았다. 지금도 고란사 맞은 편에, 용을 낚았다 해서 조룡대(釣龍臺)가 있다. 무슨 낚시가 백마를 미끼로 할 만큼 크며 나라는 바람 앞에 등불인데 백말 머리 하나 먹고 그리도 쉽게 의자왕이 손을 들었단 말인가. 용은 왕을 떠 올린다. 왕이 입는 옷을 곤룡포라 하거니와 용이 그려져 있다. 앉는 의자를 용상(龍床), 그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하는바, 어지러운 이야기를 퍼뜨려 민심을 당나라 쪽으로 기울게 하려는 얘기가 아니었던가.

   삼국사기 등의 거리를 보면 백강(백마강)의 자리는 전라도의 내포, 더러는 전북의 동진강, 더러는 충청도의 웅진강일 거라는 가설이 있다. 주로 일본 사람들이 내세운 것으로 백제와 신라군이 싸운 곳을 중심으로 한 생각들이었다. 이와는 달리 도수희(1983)님은 부여의 소비포 옛 소부리, 사비성, 사불성이라 불리우는 '사비'계의 분포로 보아 백강은 사비하와 같은 이름이라고 풀이하였다. 또 백강은 지금의 부여에서 군산포에 이르는 강을 통틀어 백강이라 했을 가능성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하면 '사비 백강(백촌강白村江 백마강) 기벌포 장암'의 맞걸림이 이루어지게 된다. 조선왕조 중기의 시인 이승소의 '부여회고'란 글에도 백강(白江)이 나온다. 한자의 뜻으로 보면 백(白)은 '희다'는 말이다. 희다의 '희'는 ㅎ(日)에서 비롯한 형태로 보아 'ㅎ 희, ㅅ ㅅ'와 같은 맞걸림이 있음을 알겠다. 이는 일종의 소리의 넘나듦으로써 마찰음끼리의 닮음이라 할 것이다. 흔히 입천장소리되기로도 풀이한다. 지금도 사투리말에서는 희다(ㅎ다)는 '시다(새다)'로 말하지 않는가. 이두말로 보면 백(白)은 'ㅅ'과 같다(유서필지 이두편람 나려이두 등 참조). 그럼 백강의 백과 'ㅅ(새) 시'와는 어떤 걸림이 있을까. 시대와  지역을 달리 하면서 말도 그 소리가 다르게 쓰이기 마련. 이는 또 '새(시)'와는  어떤 걸림이 없는지.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낱말이 쓰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걸 변이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ㅅ'은 'ㅅ(새 시)'의 변이형이란 말이 된다. 백강은 새마을 곧 초촌(草村)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소부리 곧 부여의  본디 이름인 새마을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성주탁 1982). 국립박물관의 조사자료에 힘 입은 바가 크다. 이르자면 초촌면의 송국리에서 옛 선사시대의 유물이 상당수 발견되었다는 거다. 새마을은 소부리로부터 동남쪽으로 30여리쯤 떨어진 곳이다. 옛 사람들이 백마강쪽으로 자리를 옮겨 삶의 뿌리를 내린다.  새로이 이사한 곳에 이름을 부친 곳을 소부리로 볼 수 있다. 새마을의 '새'의 방사형이 소부리이며 백강(ㅅ강)이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향약구급방  같은  옛 자료를 보면 초촌의 초(草)는 모두 '새'로 나오며 당시의 소리값은 '사이'가  된다. 중세기에는 '새'의 소리가 두 홀소리인 '사이'로  났기에 그러하다(속새 박새 등). 따지고 보면 'ㅅ' 또한 '사이'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도 사이나 경계를 '살피'라 함을 떠 올리면 그런 가능성이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말이 문화의 되비침이라면 '새 - 사이'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방위로는 동쪽이요, 삶의 터전으로는 강과 산의 사이 또는 강과 강, 산과 산의 사이에 삶터가 새로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면 백강(白江)은 '사이(살비 사비)강'이란 뜻이 된다. 살비(사비)에서는 울림소리 가운데에서 비읍(ㅂ)이 약해져서 떨어져 이루어졌다면 어떠할까. 경우에 따라서 백강은 마한과 진한의 경계 - 사이가 될 수도, 고구려와 백제의 사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리로 보아 비슷한 음절과 값을 드러내는 말이 쇠다. 지역에 따라서는 쇠가 '새(쎄) 시(씨)'로도 쓰이는데 이는 청동기 곧 쇠그릇 문화가 들어 오면서 붙여진 이름들이다. 쇠붙이로 된 농기구로 여름지이를 하니 말 그대로 농업생산이 크게 늘어 나고 새로운 삶에의 힘이 생긴다. 우선 먹거리이며 옷가지, 집 따위의 모든 것이 아주 손쉽게 풀린다. 하니 산에서 가람으로 벌판으로 사람들은 옮겨살이를 하게 되고 새로운 마을을 이루게 되었던 것. 아니면 흐르는 물이 넘쳐 흐르다가 떠 밀려 온 흙이 쌓여 새로운 물줄기가 골을 터 흐르나니 이르러 새로운 강 - 백강이 될 법도 하다. 부여의 옛 이름인 소부리의 '소'와 사비의 '사'와 함께 '사이'란 뜻으로 쓰일 수도 있는 법.

  방위 상징이라면 백강의 백(白)은 서쪽이 된다. 그러니까 초촌 - 새마을의 서편을 흐르는 가람이 된다는 겐가. 불가에서 서쪽은 특별한 뜻이 있덜 아니한가. 극락왕생하는 깨끗한 나라 - 정토(淨土)를 떠올릴 수도 있긴 하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목의 밤을, 수 없는 밤을 별빛으로 더러는 달빛으로 밝히면서 끊임없는 수도자의 굽이를 돌아 흐르는 강은 아닐런지. 망한 나라 백제의 겨레가 되었을망정 왕생극락에의  꿈을 안아 자지 않고 깨어 흐르는 물처럼 오래고 먼 그리움을 주는 지를 그 누구라서 알리오. 물속으로 떨어진 꽃다운 이들이 다시 연꽃으로 피어 올라  강물에 비치는 달빛으로 어린 제 모습을 들여다 보며 하나 둘씩 바람에 제 몸을 떨구는 것을  어이 하랴. 그 맑은 별님의 노래를 따라서 지는 것을.


                빛나던 강과 언덕의 성채, 강릉

        거북아 거북아 수로(水路)를 내 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가 얼마나 크냐
        네 만일 따르지 않고 내 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
        ('해가(海歌)'에서)

  순정공의 아내 수로는 얼굴이며 모습이 빼어나 큰 산이나 못 또는 강이나 바다를 지날 때면 언제나 귀신들에게 붙들려 가곤 했다. 해가는 신라 성덕왕 때, 강릉 태수의 벼슬길에 오른 순정공의 아내인 수로가 바다의 용에게 이끌려 간 것을 되찾아 내기 위하여 노인의 말대로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부른 노래이다. 이어 바다의 용은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와 순정공에게 되돌려 준다. 해서 평화로이 강릉태수의 자리에 앉게 된다. 통과제의라 할까. 필시 바다의 용은 바다의 해적이 쳐들어 온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다. 여럿이 마음과 힘을 합하여 되찾은 것이니 여기 수로는 빼앗긴 영토 또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이런 풀이의 가능성은 <처용가>나 <구지가>에서도 드러난다. 강릉엔 옛부터 바닷가에 예(濊)라는 겨레가 살고 있었다. 또 달리는 철국(鐵國) 하서랑(河西良) 하슬라(何瑟羅)라 한다. 신라 경덕왕 때 와서 명주(溟州)로 고쳤다가 고려 충렬왕 때 와서 강릉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예'의 소리상징은 무엇인가. 당시 말소리가 없어 한자를 빌어 썼을 뿐 본디 우리말이다.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어 쓰는 수가 있으니 앞의  것은 훈차라 하며 뒤의 것은 음차라고 한다. '예'는 한자의 소리를 빌린 음차로 볼 수 있다. 소리의 바뀜을 함께 고려하면 예는 셰(歲羽切)에서 비롯된다. '셰'에서 시옷의 소리가 약해지고 떨어지면 '셰 예'가 되니 말이다. 여기 '셰'는 중세시대만 해도 겹홀소리 '서이'로 읽었을 것이다. 하면 신라이전이니 분명 '예 - 셰 - 세 - 서이'의  걸림에서 '서이'로 읽을 게 뻔하다. 사투리말의 분포로 보면 '세(새)'는 '새(쌔) 세(쎄) 시(씨)'라고 한다. 쇠의 경우도 거의 비슷한 소리임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예나라나 철국(鐵國)이나 같은 뜻을 드러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쇠 - 세(쎄) 새(쌔) 씨 시 등).

  말은 그 말을 쓰는 겨레들의 문화를 되비친다. 그것은 말을 가지고 그들의 사회와 역사를 이루어 가기 때문이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태양숭배를 하는 겨레가 쇠그릇문화를 가지고 돌그릇문화를 누리던 겨레들을 다스리게  된다. 해우러름에 관한 자료들은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믿음이자 삶의 모습이었다. 태양을 본디 우리말로는 '해'라고 한다. 해는 사투리말이나 중근세기의 자료로 보아 새 쇄 세 시(씨)로도 쓰인다. 그럼 '예  - 철 - 해'는 사이를  바탕으로 하는 낱말의 겨레라는 말이 되는데 뜻으로 본 이 말들의 걸림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사이와 말겨레들의 고리

  겨레를 이름은 물론이요 나라이름으로 불리우는 '예'는 셰(세)에서 비롯된다. 사투리에서 쓰이는 소리를 보면 태양이 새(쇄)로 나는 것이나 쇠붙이가 새(쌔)로 나는 것이나 하늘을 나는 새의 음상은 같은 소리로 나는 말겨레라고 하겠다. 이들 말 사이에서 드러나는 뜻바탕의 걸림은 무엇일까. 이 말들은 모두 사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이라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쇠의 경우 나무도 돌도 아니면서 때로는 돌보다도 더 강하며 때로는 나무보다도 더 부드러운 물체가 쇠붙이 아니던가. 한마디로 나무와 돌의 사이쯤 되는 속성을 보임은 물론이요, 돌을 쓰던 돌그릇문화 사회에서 일대 혁명과도 같은 문화의  태양 - 해와 같은 영향을 미쳤으니 가히 신기원을 이루었다 할 것이다. 해 또한 그 다름이 아니다. 해는 앞서 이른 것처럼 '새'라고 하는바, 이 또한 '사이'라 읽는 것이 당시의 소리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떠 올랐다가 다시 그 사이로 모습을 감춘다. 해가 떠서 지는 것은 예외 없이 되풀이 된다. 해서 날과  달 그리고 한 해를 헤아리는 셈단위의 동작을 뜻하는 '헤아리다(세아리다 - 헴(셈)'의 밑바탕이 된다. 사이란 말만해도 그러하다. 아래아로 쓰는 'ㅅ'에서 비롯 '사이'가 되기에 이르렀음은 이미 밝혀진 일이다.

  하늘을 날으는 새의 경우, 중세어 자료는 사투리말을 보더라도 '사이(시 새)'와 같은 말로 쓰였음을 알게 된다. 길짐승도 뛸 짐승도 아니고 하늘과 땅 사이를 자유롭게 날으면서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 다닌다. 하긴 사람도 분명 동물이면서 신도 인간도 아닌 그 사이쯤 되는 존재들이다. 자신을 가르쳐 준 이를 높이어 부르는 말에 '스승'이 있다. 본디는 무당이란 말로서 제정일치 시기에는 거룩한 대제사장을 뜻하였다. 오늘날에는 선생을 높여 부르는 말로만 쓰이지만. 말의 짜임새를 보면 사이를 드러내는 '슷(間)'에 씨끝' 응'이 녹아 붙어 이루어진 말임을 알 수 있다( 훈몽자회 참조). 사이라면 무슨 사이일까. 이른바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사이일 것인즉 앞에서는 제사장으로, 뒤에서는 행정의 머리로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이미 삼국유사 의 환인천제가 바람, 비, 구름 스승(師)을 데리고 내려 왔다고 했으니 스승의 부름말이 쓰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다.

  옛적 우리들의 거룩한 스승들의 눈에 비치는 자연물에는 이미  태양 - 해(새)에 대한 믿음으로 '새(사이)'라는 의미가 흘러 녹아 신격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미루어 생각해 보면 강릉의 경우도  큰 예외는 아니다. 고려 충렬왕 이후로 불리워진 이름이다. 말 그대로 강과 언덕 - 강언덕(江陵)이다. 여기 강은 개울이 될 수도 있고 바다일 수도 있다. 반면에 언덕은 물의 북쪽이라 할 산자락으로 풀이 되기도 한다.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의 줄기라고나  할까. 신라 경덕왕 때 강릉을 일러 바다명(溟)의 명주라 하였음을 보더라도 강릉의 강은  바다가 주요한 대상이라고 미루어 보는 것이다. 바다 곧 물을 중시하였던 해양국다운 이름이다. 뒤로는 큰 산으로 둘러 싸여 천연의 성으로  이루어진 나라였으니 바다로부터 침략만 막아낸다면 별 시름이 없는 부족국가였음을 짐작케 한다. 신라 이전에는 강릉을 하슬라(何瑟羅), 하서랑(河西良)이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바닷가의 입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한자에 대한 칼그렌(Karlgren)의 자료를 살펴 보면 '하 - 가(何)'의 걸림을 찾을 수  있다. 하면 '하슬라(하서랑)은 가슬라(가서랑)'의 소리로 읽었음을 알겠다. 그럼 가슬라(가서랑)가 바닷가란 말인가.

  가장자리를 뜻하는 '가(邊)'의 사투리말을 보면 '갓 가 가생이 가상 가싱이 가서리 가상다리 가상사리'와 같은 여러가지의 변이형들이 쓰인다. 여기서 가슬(가서)과 걸림이 있는 말은 '가서리 갓'이라고 하겠다. 가령 '가서라'의 '가서'가 가장자리라면 나머지 '- 라'는 무엇인가. 신라의  '- 라'가 땅 혹은 국가를 말하듯이 가서라의 '라'도 땅이나 나라를 뜻하는 말로 보면 된다. 그러니까 큰 산 태백산맥의 가장자리이자 동해 바다의 가장자리란 말이다(대동지지 참조). 이 곳은 신라 무열왕 때만 해도 군사 요충지로서 상당히 주목을 받았던 공간이다. 해서 군제(軍制)로 보아 지금의 서울인 한산정(漢山停)과 함께 하서정(河西停)이라 했다. 흔히 큰 진영이 있는 곳을 정(停)이라 한다. 정은 군대의 주둔지를 이름이요, 지킴의 터전이 된다. 강릉은 본디 세 읍을 어우러서 하나의 큰 마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시련의 강언덕을 넘어

        강릉대도호 풍속이 좋을시고
        절효정문이 골골이 벌였으니
        비옥가봉(比屋可封)이 이제도 있다 할까 - ('관동별곡'에서)

  충효열은 유교사회에서 으뜸가는 덕목이다. 충신 효자 열녀가 많이 있어 이를 드러내기 위하여 정문을 세웠다는 얘기. 이 글은 조선왕조 선조 때 송강 정철이 강릉을 노래한 관동별곡의 한 부분이다. 나라가 어지러우면 슬기로운 선비를 필요로 하고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충신 효자 열녀가 그리도 많을 정도로 강릉엔 옛부터 많은 시련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동쪽 바다에서 쳐들어 오는 왜적이며 북으로 여진이나 말갈족의 끊임없는 침략에 우리의 조국이 어려움을 겪을 때 언제나 강릉은 그  시련의 현장이었던 터. 해서 신사임당같은 어진 지어미가 있어 율곡  이이 선생을 길러 겨레의 스승되기에 이르지 않았던가.

   대동지지 에 따르면 강릉은 옛부터 있어 왔던 세 고을 - 연곡(連谷) 우계(羽溪) 동제(棟堤)가 어우러서 이루어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예 곧 셰(세) 나라는 작은 세 고을의 부족들이 합하여 이룬 나라란 풀이도 된다. '사이'를 바탕으로 함에는 셋의 '세'도 다를 바 없다. 가령 하늘이 첫째(하나)이고, 땅이 둘째(둘)이라면 그 사이에 으뜸가는 사람이  셋째(세)가 되는 셈이 아닌가.  물론 이 것은 하나의 미루어 본 짐작이지만. 연곡은 도호부의 북쪽 30리에 있으며 본디 그 이름은 볕양자 양곡(陽谷)이었다. 경덕왕에 이르러 다시 지산(支山)으로  고쳐 불렀다. 뒤에 다시 고려 현종 9년에 명주가 다스리는 영현에 들게 된다. <용비어천가>에 하였듯이 물의 북쪽을 양이라 한다(水之北曰陽). 강릉의 남쪽을 지나면서 가장 중심이 되는 남천의 북쪽 땅이라면 어떨까. 연곡의 연(連)은 이을 연이요, 양곡의 양(陽)은 볕인데 무슨 걸림이 없을까. 땅이름이나 비교언어학으로 보아 태양을 해(새)라고 하기 전에는 '니(님)'가 아니었나 한다. 가령 '일(日) - 니(泥) - 열(熱) / 일(日) - 니(日本)' 등의 자료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연곡이나  양곡은 모두 태양을 뜻하는 '니'와 걸림이 있다 치자. 하면 지산(支山)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태양을 가리키는 말은 고유어에서 두 계열이 있으니 하나는 '새(해)'요, 다른 하나는 '니(낮 - 날)'가 그것이다. 새(해)는 앞서 풀이한 듯이 철기문화 곧 쇠그릇 문화를 가리킴이며 '니(날 - 낮)'는 돌그릇문화 곧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화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새(해)의 변이형이 '새(쌔) 세(쎄) 시(씨)'임을 떠올리고, 지산의 '지'가 당시 이런 파찰음소가 자리잡지 못했을 거라는 풀이를 받아 들이면 '지산 시산'이 되어 곧 '해돋이 산' 혹은 '해맞이 산' 또는 다른 지역과 경계를 둔 산이란 말이 되지 않을까. 한편 우계(羽溪)는 어떠한가. 강릉의 남쪽 60리에 있으며 본디의 부름말은 우곡(羽谷)에서 말미암았다는 것. 또 다른 이름으로는 옥당(玉堂)으로 불리운다.  그러다가 경덕왕에 와서 당나라의 주군현식 지명을 고치는 중국화의 과정에서 우계현으로 바꾸면서 삼척군의 영현을 삼았다. 우곡은 우리말로 '우골'이 된다. 맨 위 쪽에 있는 골짜기이니 높을 수밖에. 고려 우왕(禑王) 8년 왜적이 우계로 침입한 것을 보더라도 군사적인 요새지임에 틀림 없다. 이 때 강릉도원수 조인벽을 중심으로 해 30여급의 왜적을 목베인 일이 있었음은 널리 아는 일이다.

  연곡 우계와 함께 동제(棟堤)현은 어떤 곳인가.  강릉 서남 65리의 임계(臨溪)역 자리에 있던 옛 고을이다. 원래의 이름은 동토(東土)현으로 부른다. 그러다가 경덕왕에 이르러 동제로 고쳐 쓰게  된 것이다. 한자의 뜻  풀이로는 대들보의 구실을 하는 언덕이 된다. 한편 동토라 함은 동쪽의 터전 곧 새터 - 동토가 된 것이다. 옛 것이 새 것으로 바뀌어 져 나아가듯 연곡 우곡 동제의 세 고을이 강릉으로 어우러 큰 부족국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강릉은 강언덕이다. 바다에서는 왜적이, 북방에서는 여진과 거란이 쳐들어오므로 강릉의 강과 언덕은 시련을 겪어 왔다. 고려 현종 20년 이후로 여진과 거란의 침략이며, 공민왕 21년 이후 조선왕조 태종 때까지 6번에 걸친 왜적과의 싸움이 있었다.  한반도의 허리쯤에서 조국강산을 지키는 성이요, 굳건한 문지기 구실을 한 곳이 강릉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강원도의 강원(江原)은 강릉 원주의 줄임으로도 볼 수 있으나 이는 강릉의 또 다른 별칭이라 해서 지나칠 게 없다. 둘 다 물이요, 언덕이 아닌가. 공양왕 기사년 12월 왜적이 강원도에 쳐들어 왔을 적에 이를 물리친 신유정(申有定)이란 이를 바로 강릉부사로 삼았음은 이러한 방증이 되기에 충분하다. 시련을 겪으므로 개인이나 한 단체는 성장하게 마련. 통일된 조국의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푸른 바다의 갈매기며 파도가 우리들의 가슴으로 다가선다. 높게 드리운 산과 거칠 것 없이 출렁이는 바다의 그 기상으로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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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9.10.07 By바람의종 Views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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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우리말의 상상력 2 - 2. 어머니와 곰신앙

    Date2009.10.06 By바람의종 Views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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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우리말의 상상력 2 - 1. 강과 삶

    Date2009.10.02 By바람의종 Views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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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우리말의 상상력 2 - 1. 횡성, 금호

    Date2009.09.27 By바람의종 Views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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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우리말의 상상력 2 - 1. 백마강, 강릉

    Date2009.09.21 By바람의종 Views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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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우리말의 상상력 2 - 1. 영산강과 용, 섬진강과 두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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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서울의 어원

    Date2009.08.01 By바람의종 Views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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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우리말의 상상력 2 - 1. 두만강과 조선왕조, 대동강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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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우리말의 상상력 2 - 1. 한강의 뿌리, 우통수(于筒水)

    Date2009.07.15 By바람의종 Views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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