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15 06:26

쇠를 녹이다

조회 수 132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쇠를 녹이다

세상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다가도 “그까짓 것 아무리 떠들어 봐야 뭐하나? 공연히 입만 아프다”는 말로 이야기판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말해 봤자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자신이 대화의 상대조차 못 된 처지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게 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시대 이야기이다. 당시에 이름난 미인이었던 수로부인이 일행과 함께 동해안을 지나는데 돌연히 용이 나와 부인을 바닷속으로 채어갔다. 남편과 일행이 당황해할 때 지나가는 노인이 “예로부터 많은 사람의 입은 쇠를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닷속의 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땅을 치면 마땅히 부인을 되찾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대로 하니 용이 부인을 되돌려줬다고 한다.

여럿의 입’이 쇠를 녹인다.(중구삭금)고 하는 말은 주술적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매우 복잡한 사회적 함의를 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고함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또 어찌 여럿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냐는 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외치면서 행사하는 힘의 위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경고이다.

최근 여섯 주일에 걸쳐 우리 국민은 끈질기게 여럿의 목소리를 모아 거리에서 외쳤다. 그리고 무쇠처럼 단단해 보이던 권력을 일단 물러서게 만들었다. 여럿의 입이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한 것이다. 지금까지 ‘여럿의 입'이라고 하면 그저 중구난방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되어 왔다. 이제는 대중의 목소리가 오히려 민주 정치의 기본 토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중의 말이 가진 힘을 체감한 귀중한 시기였다. 한데 모여 소리치면 누군들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36608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198067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04May
    by 바람의종
    2009/05/04 by 바람의종
    Views 7281 

    수구리

  5. No Image 14Dec
    by 바람의종
    2011/12/14 by 바람의종
    Views 9949 

    수 표현

  6. No Image 12Nov
    by 바람의종
    2008/11/12 by 바람의종
    Views 7754 

    쇼바, 샥

  7. No Image 10Jan
    by 바람의종
    2008/01/10 by 바람의종
    Views 8591 

    쇠죽

  8. No Image 09Sep
    by 바람의종
    2008/09/09 by 바람의종
    Views 8070 

    쇠발개발, 오리발, 마당발

  9. No Image 15Jan
    by 風文
    2022/01/15 by 風文
    Views 1328 

    쇠를 녹이다

  10. No Image 14Oct
    by 바람의종
    2008/10/14 by 바람의종
    Views 6113 

    쇠르 몰구 가우다!

  11. No Image 15Jan
    by 바람의종
    2008/01/15 by 바람의종
    Views 6982 

    쇠뜨기

  12. No Image 17Apr
    by 바람의종
    2010/04/17 by 바람의종
    Views 14301 

    쇠다와 쉬다

  13. No Image 08May
    by 바람의종
    2010/05/08 by 바람의종
    Views 11403 

    쇠고기와 소고기

  14. No Image 14Nov
    by 바람의종
    2008/11/14 by 바람의종
    Views 5419 

    쇠고기

  15. No Image 30Apr
    by 바람의종
    2012/04/30 by 바람의종
    Views 9974 

    쇠고기

  16. No Image 30Apr
    by 바람의종
    2012/04/30 by 바람의종
    Views 13528 

    송글송글, 송긋송긋

  17. No Image 11Aug
    by 바람의종
    2010/08/11 by 바람의종
    Views 10358 

    송곳니

  18. No Image 07Jul
    by 바람의종
    2009/07/07 by 바람의종
    Views 7321 

    송고리

  19. 솔체꽃

  20. No Image 05Aug
    by 바람의종
    2009/08/05 by 바람의종
    Views 7717 

    솔찮이 짚어(깊어)!

  21. No Image 06Jul
    by 바람의종
    2009/07/06 by 바람의종
    Views 7051 

    솔새

  22. No Image 17Oct
    by 바람의종
    2008/10/17 by 바람의종
    Views 5616 

    손톱깍이, 연필깍이

  23. No Image 17Jun
    by 바람의종
    2008/06/17 by 바람의종
    Views 9021 

    손돌과 착량

  24. No Image 09Jun
    by 바람의종
    2008/06/09 by 바람의종
    Views 7930 

    손가락방아

  25. No Image 17Jan
    by 바람의종
    2008/01/17 by 바람의종
    Views 8751 

    손 없는 날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