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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풋닭’은 채 자라지 못한 닭이고, ‘닭곰’은 삼계탕의 북한말이다. ‘풋닭곰’은 북한에서 영계백숙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주 이 자리에 쓴 글을 본 동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였다. 피디 누구는 “사전에서 ‘닭곰’을 찾아보니 ‘닭을 고아서 만든 국’, ‘곰’은 ‘고기나 생선을 진한 국물이 나오도록 푹 삶은 국’이라 한다. 그렇다면 ‘닭곰’은 (삼계탕이 아니라) ‘닭곰탕’ 아닌가?” 물었다. 북한에 가 본 경험이 없으니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답할 거리가 나왔다. <북한어휘사전>의 설명이다. “남한에서는 ‘닭곰’ 하면 닭을 고아서 만든 국을 떠올린다. 그러나 북한에서 말하는 ‘닭곰’은 삼계탕이다. 남한에서 말하는 닭곰이나 닭곰탕을 북한 사람들은 흔히 ‘닭고기국’이라고 한다. 북한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북한에서는 ‘닭곰탕’이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으며 조선말대사전에도 등재돼 있지 않다.”

    서른 즈음의 동료 아나운서는 “‘풋닭’의 말맛이 풋풋해서 좋다. 풋고추가 익으면 빨갛게 되는 걸 모르고 ‘풋고추와 붉은 고추는 다른 종자’로 아는 사람도 꽤 있는 세상이니 접두사 ‘풋-’이 붙은 말을 찾아 되새겨주면 좋겠다”고 청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풋고추는 ‘아직 익지 않은’ 고추 아닌가. ‘풋’은 풋곡식, 풋과일, 풋김치, 풋나물, 풋내, 풋마늘, 풋사과 따위나 풋눈(초겨울에 들어서 조금 내린 눈)에서처럼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이다.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쓰임도 있다. 풋기운(아직 힘이 몸에 깊게 배지 못한 젊은 사람의 기운), 풋내기, 풋돈(얼마 되지 않은 적은 돈), 풋되다(어리고 경험이나 분별이 적다), 풋사랑, 풋바둑(서투른 바둑 솜씨), 풋술(맛도 모르면서 마시는 술=생술), 풋심(어설프게 내는 힘), 풋잠(잠든 지 얼마 안 되어 깊이 들지 못한 잠) 등으로 이때 ‘풋-’은 ‘미숙한’, ‘깊지 않은’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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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10) ①

방송에 뜻을 둔 학생 몇 명과 ‘8888 모임’을 했다. 달력을 보니 왠지 8이 유난히 눈에 들어와 만든 이른바 ‘빠빠빠빠 모임’이다. 8이 겹친 지난주 목요일 저녁 8시8분에 8의 기운을 제대로 받으려 장소도 중국집으로 잡았다. 발음이 ‘발’(發)의 ‘파’와 비슷해서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는 숫자 ‘팔’(八). 학생들이 세운 목표가 꽃처럼 피어나기 바라는 선생의 마음을 담아 그렇게 했다면 지나친 말일까. 어쨌든 그래서인지 ‘8888 모임’에서는 웃음꽃,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이야기꽃의 한 송이는 ‘숫자놀이’로 피어났다.

‘2 4 5 열 십 만 두 세 네 석 넉’. ‘숫자놀이’의 시작을 알린 학생이 시처럼 읊은 내용이다. “차림표 2쪽 4번째, 5번째 메뉴는 한 접시에 ‘열’개씩 나오는 ‘만두’이니 각자 ‘세’ 개나 ‘네’ 개씩 먹으면 된다. ‘석’ 점, ‘넉’ 점씩 먹는 것도 같은 표현이다” 이런 말이 아니다. 조선의 역대 왕을 외기 위해 동요 ‘산토끼’ 가락 따위에 맞춰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으로 읊던 것과 같은 것이다. 길게 발음해야 하는 수를 외우려 같은 말을 되뇌는 학생들이 기특했지만 이에 낀 고춧가루처럼 마뜩잖은 정보가 하나 있었다. ‘열’[열:]이었다. ‘십’(十)의 토박이말인 ‘열’은 과연 장음인가?

사전은 ‘열’을 ‘아홉에 하나를 더한 수’로 풀이하고 발음 정보를 따로 붙이지 않았다. 장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엣센스국어사전> <동아새국어사전>이 그랬다. 전영우가 펴낸 <표준한국어발음사전>도 ‘열’을 단음으로 명시했다. 소리 길이는 물론 높낮이까지 표시하는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도 ‘열’은 단음으로 나온다. 사전 대부분이 ‘열’을 단음으로 표시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끝? 아니다. 간단치 않은 ‘열’의 발음 얘기는 다음주에 이어진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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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10) ②

‘열’(10)의 발음은 [열]이다. 최근 사전은 물론 예전에 간행된 <신찬 국어사전>(동아출판사, 1963년) 등과 이은정이 엮은 <표준발음법에 따른 우리말 발음사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발음사전을 보면 그렇다. ‘열’의 장단은 문화방송 아나운서들의 발음 등 여러 정보를 종합할 때 짧은소리다. 따라서 ‘열’은 단음이다, 이렇게 단언하기 전에 짚어볼 게 있다. 어문 규정과 일부 발음사전의 정보, 특정 방송사 아나운서의 소릿값이 이와 다르기 때문이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열’이 장음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열’의 소리 장단을 따지게 된 계기는 ㅎ방송 라디오의 시보였다. ‘열[열:] 시를 알려드립니다’가 귀에 설었다. 근거를 찾으려 탐문해 보니 “‘열’(十)은 긴소리로 발음하면서도 올린 ‘ㅕ’로 발음하지 않는다”(표준발음법 제5항, 해설)는 규정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ㅎ방송 시보의 [열:]은 규정에 어긋난다. 올린 ‘ㅕ’의 ‘열:’로 발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린 ‘ㅕ’는 무슨 소리인가. 표준발음에서 ‘ㅕ’의 긴소리는 반모음 'y'에 장음 'ㅓ'가 결합된 올린 ‘ㅕ’이다. [현:대], [여:론]의 첫소리 소릿값이다. 숱한 발음 중에 ‘열’만 예외로 다룬 것은 1984년 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한국어 표준발음사전>의 일러두기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아홉, 열, 열하나…’의 ‘열’은 (긴소리지만 올린 ‘ㅕ’가 아닌) ‘열:’이다”가 그것이다.

국립국어원의 김세중 박사는 “이 단어에 한해 장음이면서 낮은 ‘ㅕ’로 발음해야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했고, <한국어의 표준발음과 현실발음> 등을 펴낸 전남대 이진호 교수는 “‘열’의 예전 성조는 거성(높은 소리)이다. 거성은 대체로 짧은소리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열’은 원래 장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했다. 이제 ‘열’ 발음의 장단 문제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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