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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라는 숫자

꽤 오래전 어느 정치인이 너무 고령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답변했는데 그의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할 부분을 따끔하게 지적한 말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불필요하게 서로의 나이를 숫자 이상으로 따진다는 점을 반성해볼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비합리적인 문화’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신문 기사에도 등장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늘 밝혀왔다. 요즘에 와서는 유명인사나 공직자들의 이름에는 나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이런저런 사건·사고에 얽힌 사람들에게는 나이가 꼬리표처럼 달린다. 연예인이나 체육인과 같은 인기인들의 나이도 자주 공개된다.

1980년대 초에 독일에서는 매우 세밀한 정보를 묻는 인구조사를 하려다가 거센 반발에 취소된 적이 있다. 종교를 묻는 항목에 ‘유대교’라는 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한 과거를 잊지 않고 있는 독일 국민들에게는 대단히 황망한 질문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나이 같은 불필요한 정보가 노출되면 당연히 불필요한 감성이나 고정관념 따위가 생긴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나이는 알아보지도 말고 묻지도 못할 사적 정보로 규정해야 한다.

합리적인 조직에서는 나이나 고향이 아닌 경력이나 업적만을 근거로 공무를 처리하는 게 옳다. 특히 상대방 나이를 묻고 자기 동생 같다는 둥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는 둥 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악습이다. 서류에서도, 면접에서도 나이 정보를 삭제하고 대화에서도 나이를 묻거나 연상시키는 화법을 교양에 어긋난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언어 교양’을 성취하지 않은 채로 ‘4차 산업혁명’ 입문은 우리 한국어 사용자에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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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언어

한국인이 외국인과 결혼하여 이른바 ‘다문화 가정’을 이루게 된 지도 제법 많은 세월이 지났다. 특히 초기에는 이러한 형태의 혼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켜 논란을 빚기도 했으나 이제는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결혼 형태’가 된 것이 틀림없다.

한국에 시집온 외국 여성들을 ‘결혼이주여성’이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도 많이 거론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주로 개별 ‘가정사’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공공의 개입도 쉽지 않았다. 그들에게 한국어 교육 서비스도 다양하게 제공되면서, 아직도 불편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초창기의 막막하던 언어 소통의 문제는 꽤 나아진 편이다.

모든 일이 한 걸음 나아지면 그다음 걸음이 생각나는 법이다. 그 여성들은 낯선 땅에 와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시집살이’를 했다. 그리고 쉽지 않은 ‘시댁 언어’를 배우고 어른들을 모시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반대로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활성화시켜 줄 차례가 되지 않았는가? 이미 개인적으로 ‘처가 언어’를 배워 소통하는 사례도 있으나 우리의 공공 부문이 이에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방송도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제공되지만 그 외의 ‘친정 언어들’로 된 방송은 찾을 수 없다.

아리랑 방송국에서는 한국 콘텐츠를 영어로 방송한다. 한국방송(KBS)처럼 아리랑 방송도 제2 방송을 차려서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이주여성들에게 그들의 고향 언어로 문화적 욕망을 채워 줄 수 없을까? 자잘한 고국 소식은 이미 사회적 통신망을 통해서 쉽게 접하고 있을 것이고, 이에 더해 한국 사회 전반이 돌아가는 형세와 한국인으로서의 삶의 현장 정보 등을 고향 언어로 전달받는다면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옮겨가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그들도 이제는 자신의 ‘친정 언어’를 통한 공공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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