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니던 청바지가 버스에 앉는데 찍 하고 찢어졌다. 천을 덧대어 오버로크해서 버텼으나, 오래 못 가 뒷무릎까지 찢어졌다. 아깝더라도 버릴 수밖에.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김수영)지만, 언젠가는 버려야 할 때가 온다. 한글 자음 이름도 그렇다. 한글 창제 후 백년쯤 지나 최세진은 어린이용 한자학습서 ‘훈몽자회’를 쓴다. ‘天’이란 한자에 ‘하늘 천’이라고 적어두면 자습하기 편하겠다 싶었다. 명민한 최세진은 이름만 배워도 그것이 첫소리와 끝소리에서 어떻게 발음이 되는지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리을, 비읍’처럼 ‘이으’의 앞뒤에 ㄹ, ㅂ을 붙이면 첫소리와 끝소리를 연습할 수 있겠다. 그래서 ‘ㄹ’ 이름을 梨乙(리을), ‘ㅂ’ 이름을 非邑(비읍)이라고 지었다. 기발하고 참신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였다. ‘ㄱ’도 기윽이라 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윽’이라는 한자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발음이 비슷한 役(역)을 써서 其役(기역)이라 했다. 이런 식으로 이름 붙인 게 ㄱ, ㄷ, ㅅ 3개다. ‘ㄷ’도 디읃으로 하고 싶지만, ‘읃’이란 한자가 있을 리 없지. 末(말)이란 한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이건 뜻으로 읽으라고 해 놓았다. 옛 발음으로 ‘귿 말’이니, ‘디귿’ 되겠다. ‘ㅅ’도 時衣(시의)라 쓰고, 衣(의)에 동그라미를 쳤다. ‘옷 의’이니 시옷.

궁여지책이었다. 왜 ‘기역, 디귿, 시옷’인지 설명해 주는 선생도 드물었다. 외국인에게 가르칠 때도 이름은 슬쩍 넘어간다(그거 알려주다간 날 샌다). 남북이 함께 만드는 ‘겨레말큰사전’에는 ‘기윽, 디읃, 시읏’으로 통일했다. 어린이나 외국인에게 가르치기도 편하다. 바꿀 땐 바꿔야 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884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5732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0443
3388 흰 백일홍? 風文 2023.11.27 791
3387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683
3386 반동과 리액션 風文 2023.11.25 653
3385 ‘개덥다’고? 風文 2023.11.24 735
3384 내색 風文 2023.11.24 525
3383 '밖에'의 띄어쓰기 風文 2023.11.22 656
3382 몰래 요동치는 말 風文 2023.11.22 600
3381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611
3380 주현씨가 말했다 風文 2023.11.21 777
3379 ‘가오’와 ‘간지’ 風文 2023.11.20 711
3378 까치발 風文 2023.11.20 779
3377 쓰봉 風文 2023.11.16 610
3376 부사, 문득 風文 2023.11.16 535
3375 저리다 / 절이다 風文 2023.11.15 758
3374 붓다 / 붇다 風文 2023.11.15 804
3373 후텁지근한 風文 2023.11.15 609
3372 조의금 봉투 風文 2023.11.15 637
3371 본정통(本町通) 風文 2023.11.14 716
»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風文 2023.11.14 835
3369 귀 잡수시다? 風文 2023.11.11 824
3368 피동형을 즐기라 風文 2023.11.11 554
3367 성적이 수치스럽다고? 風文 2023.11.10 82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