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
지난 주말 강원도 철원 지장산 기슭에 있는 도연암에 다녀왔다. 생태동화작가 따라나선 길이었다. 거기서 도연스님이 거두어 돌보는 새끼 고라니를 만났다. 방 한가운데 주인인 양 퍼더버린 채 누워 있는 그의 이름은 ‘도란이’. 들고양이에게 물려 생사갈림길에 있던 걸 스님이 보살피고 있는 녀석이다. 깊은 눈동자 끔벅이며 주저앉아 있던 도란이가 가녀린 다리를 일으켜 세우더니 몇 걸음 내딛다 이내 뭉그러진다. 마음은 ‘겅중겅중’인데 몸은 말 그대로 ‘하체부실’이었다.
물끄러미 도란이를 바라보는 내 앞에 나를 그곳으로 이끈 작가가 슬그머니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경기도 고양시 백로마을을 지켜보며 엮어낸 책 <백로마을이 사라졌어>이다. 백로가 깃들여 사는 ‘솔수펑이’(소나무숲)의 생태를 이야기로 담아낸 것이다. ‘백로나 왜가리나, 두루미나 학이나 그냥 거기서 거기’라 치부하던 내게 그네들이 쇠백로, 중백로, 중대백로, 대백로, 황로, 왜가리, 해오라기, 검은댕기해오라기, 덤불해오라기, 알락해오라기처럼 사뭇 다른 실체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앎을 덤으로 귀띔해주었다. 토박이말이 건네는 살가운 느낌이었다.
치렛깃(몸치장을 위하여 붙어 있는 아름다운 깃), 날개깃(새의 날개를 이루고 있는 깃털) 따위의 말이 그랬다. ‘깃 깃 깃으로 끝나는 말’은 참으로 많았다. 발갯깃(김 따위에 기름을 찍어 바를 때 쓰는 꿩에서 떼어 낸 깃털), 빼깃(매의 꽁지 위에 표를 하려고 덧꽂아 맨 새의 깃), 솜깃(새의 보드라운 털), 칼깃(새의 날갯죽지를 이루는 빳빳하고 긴 깃)…. 오른손잡이가 쓰는 ‘좌궁깃’(새 오른쪽 날개깃으로 꾸민 화살 깃)도 있었다. 세상에, 쓰는 손에 따라 깃 결을 달리하다니! ‘신궁신화’는 헛된 게 아니었다. 오늘부터 우리 ‘메달밭’ 올림픽 양궁 경기가 시작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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