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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우리말

“무용 평론가가 된 뒤 집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무용에 미치니 을지로 가구상점 거리를 지날 때 ‘무용’ 간판만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사무용 가구’였다”, “경상도 사람은 춤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침을 뱉고도 ‘춤’을 뱉었다 한다”, “전통은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켜켜이 묵힌 것”, “싸움에서 용감하게 활약하여 공을 세운 ‘무용담’(武勇談)이 아니라 우리 춤으로 혀 놀리는 ‘무용담’(舞踊談)이다”. ‘펀(Pun, 언어유희)의 진수’라 해도 될 표현이다. 자신을 ‘사무’에 빠진 사람이라 일컫는 진옥섭의 ‘무용담’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무’(四-)는 무술(武), 무용(舞), 무당(巫), 없음(無)이란다. 이소룡 영화를 보고 무술에, ‘명무전’ 공연을 보고 무용에, 고수를 찾아 헤매다 무당(춤)에 눈을 떴고, 급기야 ‘무(無)의 경지’를 만나게 되었다는 얘기다. 두 시간 남짓 펼쳐낸 ‘강연 같은 공연, 공연 같은 강연’은 ‘사무’만 얘깃거리로 삼지 않았다. ‘벼슬은 양반의 것, 구실은 하급자의 것’ 따위의 우리말 표현을 톺아보게 했다. ‘벼슬은 구실보다 높은 직’이고 ‘구실은 관아의 임무’다. ‘벼슬아치’는 ‘관청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보는 사람’, ‘구실아치’는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이며, 서리(胥吏) 같은 하급 행정직이나 사역직은 ‘구실’이라고 하여 ‘벼슬’과 구별한 것이다.(<브리태니커>)

표 값 단돈 5000원 내고 한판 놀다 나오니 시디(CD)도 거저 준다. ‘춤을 부르는 소리꾼’ 유금선 선생의 생전 실황 음반이다. 여든답지 않은 소리의 기개에 움찔한다. ‘소리꾼만 있고 귀명창이 없는 세상이 한탄스럽다’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우리말 상실의 사회’에 뒷짐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우리)말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엔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말이 살아야 겨레 전통예술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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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와 각하

‘각하’가 부활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각하’라 한 이후의 일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유물’이라는 비판에 ‘권위주의와 권위는 다른 것’이란 해명이 이어졌다. 폐하(황제)-전하(왕)-저하(왕세자/황태손)-합하(정일품/대원군)-각하(정승/왕세손)의 호칭 서열에 따르면 ‘각하는 하급 경칭이니 오히려 대통령의 격을 깎아내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50대 이후에게 ‘각하’는 특정 대통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남아 있지만, 사전 속 ‘각하’는 ‘특정한 고급 관료에 대한 경칭’일 뿐이다.(표준국어대사전)

‘각하는 대통령에게만 쓸 수 있다’는 문구를 기억한다. 1970년대 학교 게시판에서 본 ‘국가원수에 대한 예절’의 하나이다. “총무처에서 대통령에게는 반드시 ‘각하’라고 붙여서 부르기로 결정했다”(1966년 3월, ㄷ일보)는 기록을 보면, ‘각하=대통령’이란 인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통령, 총리, 장관은 물론 군 고위 장교에게도 ‘각하’라 하던 경칭 문화를 대통령에게로 한정한 것이다. ‘각하’와 더불어 쓰임이 좁아진 표현이 ‘영부인’과 ‘영식’, ‘영애’이다. ‘남의 부인(딸/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인 ‘영부인(영애/영식)’이 특정인을 지칭하는 표현이 된 것도 비슷한 시기일 것이다.

원래 말뜻을 살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리 이웃, 옆집 아저씨의 아내가 영부인이고 그 집 딸과 아들은 영애와 영식이다. 뒷집 아줌마가 ‘영식은 잘 지내지요?’ 인사하면 ‘그 댁 영애도 많이 컸던데요!’로 답하면 된다. 행정기관을 찾아간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국장 각하께 잘 부탁한다고 전해 주셔요’ 해도 ‘국가원수 모독죄’를 덮어씌우지 않는다. ‘부대 생활 돌봐 주셔 고맙다’는 편지를 ‘사단장 각하’에게 보내는 가족과 여자친구가 많아지는 것도 괜찮겠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따따부따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 아닌가.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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