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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08:32

방방곡곡 / 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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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여느 때보다 늦게 나온 매미가 이곳저곳에서 울어대기 시작할 무렵, 재보궐선거 벽보가 여기저기 붙기 시작했다. 온라인 곳곳에서는 ‘SNS로 효도라는 것을 해보자’는 이름을 내건 어느 후보 딸의 트위터가 화제다. 동네방네 사방팔방 주유하며 지내는 선배는 ‘우리 강토 면면촌촌 골골샅샅 삼천리 곡곡 갈 데까지 가보겠다’ 호기를 부린다. 증권가에 불어닥친 감원 바람에 거리로 내몰린 후배는 ‘나 같은 이가 도처에 널려 있다’며 오늘도 구직 활동에 진땀 흘린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여러 곳의 문화를 두루 살피고 싶다’던 학생의 꿈은 ‘스펙 쌓기’ 현실에 밀려 뒷전이 되었다. 올해 초 아나운서가 된 새카만 후배의 메일 군데군데에는 칠전팔기의 과정이 옹이처럼 드러나 있었고.

이곳저곳, 여기저기, 곳곳, 동네방네, 사방팔방, 곡곡, 도처, 각지, 여러 곳, 군데군데…. 뜻 차이는 있지만 쓰임 폭을 넓게 잡으면 비슷한말이다. 사전은 한자어인 면면촌촌(面面村村), 토박이말인 골골샅샅도 같은 뜻으로 제시한다. 모두 방방곡곡과 동의어, 유의어인 표현이다. 방방곡곡은 ‘여러 마을(坊, 동네 방)’과 ‘산천과 길의 굽이굽이(曲, 굽을 곡)’의 한자를 반복해 만든 말이다. ‘전국 방방곳곳 이색 갈비 소개’(ㅈ일보), ‘쉬는 동안 맛집 찾아 방방 곳곳 여행’(ㅁ경제), ‘방방곳곳으로 여행 계획하는 7월말, 고속도로 전쟁’(ㄴ뉴스)처럼 ‘방방곳곳’도 제법 쓰인다. ‘곡곡’이 ‘곳곳’으로 탈바꿈한 바르지 않은 표현이다. ‘방방 곳곳’처럼 띄어쓰기하면 괜찮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은 ‘방방’을 ‘곳곳’(여러 곳 또는 이곳저곳)의 북한어로 설명한다. 남한에서는 이 뜻으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방 곳곳’ TV 모니터, 세컨드 TV로 급부상”(ㅈ신문)은? (티브이 수신이 가능한 모니터 값이 내려가면서) 티브이를 ‘방마다’(방방, 房房) 설치하는 집이 많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이니 재치 있는 제목 뽑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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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영화 <명량>에서 아들이 아비에게 간한다. “승산 없는 싸움이니 전의를 접으시라.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임금은 아버지를 해할 것이다.”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충무공이 답한다. “무릇 장수 된 자의 의리는 충을 따라야 하고, 그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에게 있다.” ‘국가에 충성, 왕(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이 곧 충(忠)’이라 했던 70년대 교실의 가르침을 무색하게 한 일갈이다. ‘백성을 향한’ 장군의 뜻에 ‘무지렁이 백성’은 기적 같은 승리에 큰 힘을 보태는 것으로 답한다. 영화 속 해전은 왜군의 조총과 조선 수군의 화포, 활 싸움으로 시작해 백병전으로 치닫는다.

조총(鳥銃)은 ‘새를 쏘아 맞힐 수 있을 만큼 성능 좋은 무기’란 뜻으로 화승총의 하나다. 화승총(火繩銃)은 ‘불을 붙게 하는 노끈(화승)’으로 화약에 불을 붙여 쏘는 총이다. 화포와 화전(火箭, 불화살) 등의 총통으로 맞선 조선군의 공격은 위력적이다. 이름은 ‘천자총통’(天字銃筒), ‘승자총통’(勝字-)처럼 총통에 새겨 넣은 글자에서 따왔다. 발음은 [천짜-], [승짜-]이다. 백병전은 ‘서슬이 시퍼렇게 번쩍이는 날카로운 칼날’인 ‘백병’(白兵)을 가지고 ‘적과 직접 몸으로 맞붙어서 싸우는 전투’이다. 영화 속 백병전에는 양날이 서 있는 ‘검’(劍), 단검의 하나인 ‘비수’(匕首, 날이 예리하고 짧은 칼)와 외날 병기인 ‘도’(刀)가 등장한다. 검은 찌르거나 자르는 데, 도는 베는 데 유용하다.

‘명량해협’ 곧 ‘울돌목’의 물살은 시속 20킬로미터에 이를 만큼 빠르다.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친다. ‘병 주둥이처럼 생겼는데, 큰 물결과 커다란 파도가 좁은 협곡을 만나 방망이를 찧는 듯한 격렬한 소리를 내며 운다’(<여지도서>)에서 보듯이 ‘명’(鳴, 울 명)-‘량’(梁 들보 량)인 곳이다. ‘울돌목’은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매우 커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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