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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분투기

우리가 표준어로 인정하는 어휘 가운데서는 한때 방언에 속했거나 방언으로 다루던 것들이 들어 있다. 한때는 ‘빈자떡’이 표준이었고 ‘빈대떡’은 방언으로 다루어졌었지만 이제는 그 신세가 서로 뒤바뀌었다. ‘멍게’도 방언이었고 그 표준어는 ‘우렁쉥이’였지만 이제는 누구 하나 그 옛날의 당당했던 표준어를 기억하지 못한다. 애당초 표준어를 정하면서 무리한 결정을 내린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 이후의 사회 변화가 어휘의 지위를 변화시켰다.

제일 큰 사회 변화는 표준어의 주요 조건인 ‘서울말’의 사용 주체였던 토착 서울 사람들의 인구 비율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는 수많은 지방 사람들과 뒤섞여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서 사용되는 말이 ‘방언 범벅’이 된 것은 아니다. 일정한 ‘서울말다움’은 유지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 원래 서울말 ‘가리구이’는 어느덧 ‘갈비구이’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서울 중심의 발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지방이 항상 변두리 역할만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의 귀에도 꽤 익은 방언도 생겨났다. 아마 얼마 있으면 그게 방언인지 표준어인지 헛갈리게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대박을 터뜨린 방언은 단연 제주 방언 ‘올레’일 것이다. 엄밀히 본다면 이 단어는 아직도 방언의 신분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 어휘의 보편성과 그 의미의 호소력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올레길’이라는 말을 당겨쓰고 있다. 또 텔레비전의 연예 프로가 방언을 살려 주기도 한다. 최근에 등장한 ‘꽃할배’가 이끌어낸 인기는 ‘할배’를 방언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의 애칭’ 정도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휘의 지위를 변화시키는 사회 변화는 저 높은 곳보다는 우리의 주변에서, 시시해 보이는 일상생활에서 먼저 일어난다. 전문가들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언어 변화의 주력부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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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서

‘국민’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중요한 뜻이 만들어질 것 같은데 유독 ‘국민 정서’라는 말은 그렇지 못하다. 이 말은 국민의 비합리적인 감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릇된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정을 저지른 기업인들의 사면을 비판하면 국민 정서 때문에 경제 활성화가 잘 안된다고 하며 마치 국민들이 질투가 나서 사면을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는 데 쓰인다.

또 정부가 부담스러워하는 일은 적당히 시간만 끌다가 역시 ‘국민 정서’를 핑계대면서 뭉개기도 한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 이런 면이 나타난다. 야당도 여당의 정책을 공격할 때 명분이 마땅치 않으면 쉽사리 ‘국민 정서’라는 말의 뒤에 숨어버린다. 생소하고 낯선 성 소수자 축제 등에 대해서 아직 ‘국민 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들이다. 국민 정서는 참으로 복잡하다.

사람의 정서는 환경과 자극에 따라 부단히 변한다. 그러한 정서에 모든 공공 업무를 맞춘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더구나 국민이 품는 정서는 딱 한 가지라고 할 수도 없고 복합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은 ‘정서’가 아니라 ‘의견’으로 받아들여 의사 결정을 하게 해야 한다.

의견으로 받아들여 논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별 의미가 없는 정서’라고 내뱉는 것은 국민의 의견을 모욕하고 빈정거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민의 ‘공적인 의견’을 ‘사적인 정서’로 왜곡하는 짓이다. 국민 정서니 떼법이니 하는 말이 쓰이는 문맥은 그렇기 때문에 반국민적이며, 옳지 못한 술수가 있다.

공공 영역에서 옳고 그름을, 책임의 소재를 밝히는 공공 언어는 그 사회적 의미와 용도가 분명해야 한다. ‘국민 정서’라는 말처럼 아무렇게나 필요에 따라 엿가락처럼 임의로 쓰이는 언어는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각별히 삼가야 할 말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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