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1.15 01:48

지명의 의의

조회 수 100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명의 의의

아파트 이름에 다양한 외래어가 사용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너무 다양하다 못해 이제는 그 이름을 헛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연세 지긋한 분들일수록 이러한 이름을 힘겨워한다. 아파트 이름 못지않게 다양한 외래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특히 신도시의 도로명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등의 낯선 명칭이 붙은 것이다. 과거에 보석 광산이나 가공 공장이 있었던 곳이라면 이해할 만도 하지만, 참으로 지나치게 느닷없이 붙인 이름들이다. 지역과 지명의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도시를 개발하며 땅이 가진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유혹적인 상품명을 붙인다는 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명은 지배자들이 지었다. 그러나 지배자와 무관하게도 일반 민초들은 자기 식대로 명명을 하기도 했다. ‘수릿재, 섶다리, 돌샘, 풋개’ 등의 지명은 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던 백성들의 명명이었다. 오늘날은 일단 행정적으로 필요한 지명은 국가기관이 정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민속적 명칭은 옛날 백성들이 쓰던 지명을 물려받아 쓰고 있다.

좀 더 넓은 문제를 한번 제기해 보자. 한국인들이 한반도에서 배타적인 ‘주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 땅을 우리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역사적 근거는 우리의 언어로 이루어진 지명들이다. 그것도 ‘역사적 연고와 연속성을 가진 지명’들이다. 그래서 옛날의 지배자들이 지은 지명이나 민초들이 지은 지명이나 모두 다 중요한 유산이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 개발과 토지의 상품화는 이렇게 쌓아온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시장에서의 이익과, 역사와 문화 속에서 스스로 지켜야 할 대의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889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576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0478
3124 자백과 고백 風文 2022.01.12 746
3123 오염된 소통 風文 2022.01.12 800
3122 공화 정신 風文 2022.01.11 944
3121 띄어쓰기 특례 風文 2022.01.11 1133
3120 올바른 명칭 風文 2022.01.09 606
3119 한자를 몰라도 風文 2022.01.09 789
3118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655
3117 할 말과 못할 말 風文 2022.01.07 768
3116 공적인 말하기 風文 2021.12.01 852
3115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665
» 지명의 의의 風文 2021.11.15 1002
3113 유신의 추억 風文 2021.11.15 761
3112 주어 없는 말 風文 2021.11.10 692
3111 국민께 감사를 風文 2021.11.10 849
3110 방언의 힘 風文 2021.11.02 957
3109 평등을 향하여 風文 2021.11.02 960
3108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선한 기업이 성공한다 風文 2021.10.31 629
3107 외부인과 내부인 風文 2021.10.31 977
3106 개헌을 한다면 風文 2021.10.31 608
3105 소통과 삐딱함 風文 2021.10.30 636
3104 말의 미혹 風文 2021.10.30 778
3103 난민과 탈북자 風文 2021.10.28 76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