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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토론할까

전국이 토론 중이다. 안 그래도 뜨거운 사회인데 뚜껑 닫아놓은 냄비처럼 들끓고 있다. 토론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적과 해야 제맛이다. 힘이나 앎의 차이로 윽박지르거나 꼬드겨 뻔한 결론에 도달하는 토론은 재미없다.

지금의 토론이 중요한 것은 찬반 의견이 ‘국민감정’에 따라 갈리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정서 문제가 개입되다 보니, 토론이란 게 토론자와 분리될 수 없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법을 어겼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미운 감정이 드는 이유는 뭔지 묻게 된다. 과거의 열광과 지금의 실망이 애매하게 공존하는 감정상태. 이 감정상태야말로 우리의 토론을 더 깊게 하고 우리 사회를 더 두껍고 탄탄하게 만든다.

슬쩍 일반화시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이율배반적이다. 양립할 수 없는 여러 기준이 한 사람 안에 양립함으로써 생기는 자기모순을 어떻게 대면해야 할까? 조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당사자로 연루된 문제다.

공정과 정의는 절대적이지 않다. 합의해야 할 ‘양’(정도)의 문제다. 우리는 얼마나 공정할 건가, 얼마나 정의로울 건가. 주제가 피아 감별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윤리 문제가 아닌, 합의를 해야 하는 양의 문제라면 토론은 알차진다. 게다가 남의 얘기 하듯 하지 않고 자기고백적 토론일 때 적과 공존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다. 결론 내지 말고 문지방에 매달아놓자. 세월 좋은 소리 말라고? 미안하게도 인간만이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존재다. 우리는 지금 모순의 내부에 있으면서 모순의 타파를 꿈꾸고 있다. 그러니 결론을 미루고 더욱 토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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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 할 책임

지난해 김영민 교수가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은 젊은이들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친척이 자신의 근황에 대해 물으면 ‘당숙이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맞받아치라는 글이었다. 풍문에 따르면, 몇몇 젊은이들이 진짜로 진격의 맞받아치기를 감행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모두 장렬히 패퇴했으며 친척들은 명절 때 다시는 안 모이기로 했다고 한다. 통쾌함에 비해 손실이 컸다.

차라리 어른이 아예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떨까.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이 들수록 말이 많아진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하는 숱한 어른을 보라.

말하기는 권력이다.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권력자다. 주인과 노예, 위와 아래,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강하게 분리되어 있을수록 더 심하다. 권력자의 말하기는 겉으론 아니어도 결국 명령이다. ‘운동화가 편한가요?’라고 물으면, 직원은 다음날 구두로 갈아 신는다. 에둘러 말하는 간접화법으로 명령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결혼 언제 할래?’라는 질문은 결혼하라는 명령이고 ‘취직은 했어?’는 취직하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어른은 질문을 자제할 책임이 있다. 질문하지 말고 감탄하라. ‘하늘이 높구나’ ‘그새 풀이 많이 자랐네’ ‘의젓해졌구나’. 미래를 묻지 말고 과거를 얘기하라. ‘할아버지는 이런 분이셨다’ ‘여기가 엄마가 다닌 학교란다’. 소소한 얘기를 하라. ‘이렇게 하면 밤이 모양 나게 잘 깎여’ ‘전을 망가뜨리지 않고 넘기는 방법을 알려주마’. 질문은 젊은이들의 것.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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