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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여성?

세상이 케이크라면 말은 칼이다. 한국 사람들 눈에는 명사를 남성과 여성으로 자르는 프랑스어가 마냥 신기할 뿐. 이유를 당최 모르겠거든. ‘기타’가 여성형인데, ‘우쿨렐레’는 남성형이라니! 이런 나라에서는 새로 생겨난 단어를 둘러싼 논쟁이 붙곤 한다. 작년엔 코로나를 뜻하는 ‘코비드19’로 시끄러웠다더라. 돌림병이 처음 확산되었을 땐 다들 남성형으로 썼는데, 프랑스의 국립국어원 격인 ‘아카데미 프랑세스’에서 갑자기 여성형으로 쓰라 한 것. 당연히 성차별적이라며 시끌시끌했겠지.

한국어는 명사를 남녀로 ‘반듯이’ 구분하지는 않지. 다만, 간헐적으로 하긴 한다. 세상을 남녀, 음양, 생사,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버릇을 어찌 피해 갈꼬. ‘여학생/남학생’, ‘암탉/수탉’처럼 접두사를 붙여 사람이나 동물을 남녀로 구분한다. ‘암술/수술, 암꽃/수꽃, 암나무/수나무’처럼 식물도 마찬가지.

출신 학교를 ‘모교’라 하고 자라면서 배운 말을 ‘모어’라 하듯이, 사물을 의인화하고 암수로 나누는 건 오래된 습성이다. 오목한지 튀어나왔는지 하는 생김새(요철凹凸)나 기능을 암수에 빗댄다. ‘암나사/수나사, 암키와/수키와, 암단추/수단추’가 그렇고, 전통 줄다리기에 쓰는 ‘암줄/수줄’이나, 꽹과리를 ‘암꽹과리(중쇠), 수꽹과리(상쇠)’로, 똥꼬에 나는 치질을 ‘암치질/수치질’로 나누는 건 다 그런 연유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한글을 ‘암글’, 한자를 ‘수글’이라고 한 건 암수에 경중을 들씌운 것이고. 프랑스어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의 세계관도 말에 달아놓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의 영향을 받는다.


댕댕이

노인이 있었다(철부지가 아니라).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의 주인공인 이 노인은 딱딱하게 굳은 채 반복되는 일상을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절망은 철학적인데, 왜 책상을 ‘책상’이라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 불러야 하냐는 것이었다. “달라져야 해. 달라져야 한다고!” 그는 책상을 ‘양탄자’, 침대를 ‘사진’, 의자를 ‘시계’라 부르는 식으로 모든 사물에 딴 이름을 붙인다. 세상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에 환호했지만, 결국 소통은 실패하고 침묵에 빠져든다.

‘댕댕이’. 멍멍이를 ‘댕댕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다. 멍멍이가 어찌 ‘멍멍이’가 아닐 수 있단 말인가. 기세도 좋다. 최근엔 강아지를 몰고 나와 ‘댕댕이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반려견 잔치를 벌였다. ‘댕댕런’(반려견 마라톤), ‘댕댕트레킹’(반려견 트레킹) 따위의 행사를 진행했다. 자원봉사자는 ‘댕봉이’(댕댕이 자원봉사자). 이들은 ‘커엽다’(귀엽다), ‘띵곡’(명곡)을 만들고 글자를 뒤집어 ‘옾눞’(폭풍), ‘롬곡’(눈물)이란 말을 만들며 킥킥거린다.

노인 옆엔 아무도 없었고 ‘댕댕이’ 일파는 여럿이었지만, 공통점도 있다. 사물과 말의 결합이 필연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변용되는 습관이라는 걸 보여준 점. 우리의 상징질서는 유일하거나 고정되거나 동일한 것이 아니다. 세계는 ‘A는 A다’라는 동어반복에서 ‘A는 B일 수도, C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무한 확장해 나간다. 소통 단절과 소외를 걱정하지만, 소외 없는 언어는 불가능하다. 믿기지 않는다면 옆 사람에게 ‘마수걸이’가 뭔지 물어보라. 말과 민주주의는 단수가 아닌 복수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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