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7.10.05 12:44

고려에 넣어?

조회 수 7931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고려에 넣어?

우리는 쓸모없는 말을 하면서 아픔을 덤으로 겪는다. “감안하다, 고려하다, 참작하다, 계산하다 …”들은 쓰임이 비슷하다. 말만 많을 뿐 생산성이 없다. ‘감안’(勘案)은 왜식투이니 예부터 쓰던 ‘고려·참작’으로 바꾸라고 한다. 때로는 바꿔 쓴들 뭐가 나아지랴 싶다. 물론 그런 노력에서 좀은 분별심이 생기고 말 갈피가 잡힐 터이다.

그런데, 한걸음 나아가 헤아리면 앞의 말들은 죄다 버려도 될 말이다. ‘헤아리다’면 뜻·쓰임에서 이들을 아우르는 데 모자람이 없고, 쉽고 정확한데다 말맛도 살기 때문이다. ‘살피다·셈하다·생각하다·따지다’ 들도 이에 못지 않다.

“계산에 넣다, 계산에 넣지 않다”란 말을 흔히 쓴다. 영어 익은말(take account of/ take … into account/ taking into … account/ leave out of account /leave out of considertion)을 뒤친 표현들이다.

한자말 ‘산입하다’(算入-)를 ‘셈쳐 넣다, 셈해 넣다, 셈에 넣다’로 다듬어 쓰는데, 실제로는 ‘계산에 넣다’로 많이 쓴다. 이는 한자말과 영어에 두루 가닿는 연원이 복잡한 번역투인 셈이다. 이미 버릇돼 고치기 어려운 지경이지만 ‘계산에 넣다’ 역시 “아우르다, 헤아리다’ 정도로 끝내서 아쉬울 게 없는 말이다.

“고려에 넣다, 고려에 넣지 않다”란 말도 흔히 쓰는데, ‘계산에 넣다’를 다시 뒤친 표현으로서, 무척 부자연스럽다. 이는 그냥 “고려하다, 고려하지 않다”가 낫고, 이 역시 ‘헤아리다·생각하다’로 바꿔 써야 간명하고 쉬워진다.

△환경적, 현실적 요소들을 고려에 넣지 않고 오로지 ‘돈’만을 가지고 따질 경우 → 환경이나 현실적 요소들을 헤아리지 않고 ‘돈’으로만 따진다면.
△해외 용병을 수입하는 경우,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만 하는 요소가 있다 → 외국선수를 데려올 때 반드시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이같은 상관 관계는 비만과 당뇨를 고려에 넣어도 여전히 유의미한 것으로 분석됐다 → 이런 상관 관계는 비만과 당뇨를 고려해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을 고려에 넣어 입장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 모든 것을 헤아려서 태도를 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1994년 판결은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법률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 피고인의 행위와 그 사회적인 사실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그 규범적 요소도 고려에 넣어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 1994년 판결은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법률적 기능을 헤아리고, 피고인의 행위와 ~, 그 규범적 요소도 아울러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불법복제와 다운로드가 판치는 현실을 고려에 넣는다면, 현재 극장과 영화가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 불법복제와 내려받기가 판치는 현실을 다시 헤아린다면, ~.
△각 학파가 불교의 화엄·선 사상 등과 같은 비유교적인 사상 형태로부터 받은 영향까지 고려에 넣는다면, 차이점은 훨씬 더 커지기 마련이다 → ~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
△차 타는 시간을 계산에 넣고 여정을 짜다 → 차 타는 시간도 헤아려 여정을 짜다.
△혹 유전되었을 수도 있는 성향까지도 고려에 넣어 살펴보아야 한다 → 혹 유전되었을 수도 있는 성향도 아울러 살펴봐야 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085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7752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2386
3124 팔자 바람의종 2007.09.08 8615
3123 폐하 바람의종 2007.09.09 9687
3122 푼수 바람의종 2007.09.10 11226
3121 한량 바람의종 2007.09.12 8149
3120 한성 바람의종 2007.09.18 10859
3119 한약 한 제 바람의종 2007.09.19 10745
3118 합하 바람의종 2007.09.20 8039
3117 행각 바람의종 2007.09.21 7948
3116 바람의종 2007.09.22 8790
3115 ‘김치’와 ‘지’ 바람의종 2007.09.22 6747
3114 형극 바람의종 2007.09.23 12110
3113 기다 아니다 바람의종 2007.09.23 14453
3112 호구 바람의종 2007.09.26 11019
3111 언어의 가짓수 바람의종 2007.09.26 12195
3110 호구 바람의종 2007.09.28 8014
3109 상일꾼·큰머슴 바람의종 2007.09.28 12047
3108 호남 바람의종 2007.09.29 8691
3107 ‘기쁘다’와 ‘즐겁다’ 바람의종 2007.09.29 11654
3106 홍일점 바람의종 2007.10.05 10497
» 고려에 넣어? 바람의종 2007.10.05 7931
3104 환갑 바람의종 2007.10.06 17950
3103 언어 분류 바람의종 2007.10.06 1270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