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9.05 19:28

선교와 압박

조회 수 63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선교와 압박

  종교는 선교 활동을 통해 종교적 확신을 확산시킨다. 가장 오래된 방식은 통치자를 개종시키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라든지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처럼 통치자의 개종이 백성의 신앙을 규정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왕실의 개종이 선행했던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선교 방식은 개개인에 대한 설득이다. 곧 대화를 통하는 방식이다.

 대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대화라는 것이 무척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엄중한 규칙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서로의 상호행위를 기초로 하며 모든 발화 단위가 일정한 맥락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또 말 순서를 지키고 발언권을 분배하기 위한 규칙도 분석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대화가 아닌 강압이나 언어적 공격이나 다름없다.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명령과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긍 같은 것은 당연히 대화로 인정하기 어렵다.

 대화 가운데 또 중요한 것은 화제를 선정하는 권리다. 상대방이 선정한 화제에 관심이 가지 않으면 누구든지 무관심을 드러낼 권리가 있다. 왜 이 문제에 관심이 없냐고 집요하게 따지고 드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시민 문화가 아니다. 자신이 그러한 화제에 끼어들기 싫다는 것을 표시하는 행위도 의당 존중받아야 한다.

특정 종교를 열성적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의 신앙심은 충분히 믿어 의심치 않으나 많은 경우에 이들의 공세적인 대화 방식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대화라는 것은 화제의 선택부터 발언권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잘 지켜야 하는 ‘질서 잡힌 행동 체계’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다듬어져 있는 까다로운 문화적 기제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신성한 교리나 신앙의 문제라 하더라도 이런 질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요하는 대화는 부작용과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911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598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0733
3278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651
3277 혼성어 風文 2022.05.18 651
3276 날아다니는 돼지, 한글날 몽상 風文 2022.07.26 651
3275 세계어 배우기 風文 2022.05.11 652
3274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652
3273 ‘다음 소희’에 숨은 문법 風文 2023.02.27 652
3272 울면서 말하기 風文 2023.03.01 655
3271 아줌마들 風文 2022.01.30 658
3270 시간에 쫓기다, 차별금지법과 말 風文 2022.09.05 658
3269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風文 2022.08.23 660
3268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661
3267 한글의 역설, 말을 고치려면 風文 2022.08.19 662
3266 내연녀와 동거인 風文 2023.04.19 662
3265 '밖에'의 띄어쓰기 風文 2023.11.22 662
3264 반동과 리액션 風文 2023.11.25 663
3263 고령화와 언어 風文 2021.10.13 664
3262 ‘선진화’의 길 風文 2021.10.15 665
3261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669
3260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風文 2022.07.14 674
3259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風文 2022.11.30 674
3258 성인의 외국어 학습, 촌철살인 風文 2022.06.19 675
3257 언어 경찰 風文 2021.09.02 67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