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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자어

한자어는 중국어(한어)에서 유입된 어휘인데 워낙에 오랜 세월 동안 영향을 받아온 탓에 어떤 말들은 마치 토착어인 듯 익숙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불편하거나 생경하기만 한 한자어들도 있어서 그때그때 말을 다듬어 쓸 필요가 있다.

1992년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이래 문물 교류의 폭도 넓어지고 새로운 중국식 어휘도 많이 들어왔다.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기차(汽?)라고 한다. 정보는 신식(信息), 텔레비전은 전시(??), 쇼핑은 구물(?物) 등 우리가 알고 있던 한자어들과는 다르다. 이러한 새 한자어에 해당하는 말은 이미 우리한테도 있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다. 우리한테 없는 개념은 아예 중국 발음 그대로 들어왔다. 유커(游客)니 산커(散客)니 하는 말들이다.

근간의 남북 관계를 다루면서 중국 측에서 해법으로 제시한 용어들이 눈에 띈다. 쌍중단(雙中斷), 쌍궤병행(雙軌竝行), 쌍잠정(雙暫停)과 같은 단어들로,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것이고 쌍궤병행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상의 동시 진행을 말한다. 쌍잠정은 양측의 군사 경쟁을 잠시 멈추자는 말이다. 모두 중국어다운 함축성이 돋보이나 우리 언어 감각에는 낯설기 그지없다. 차라리 좀 길더라도 ‘쌍방 (잠정) 중단’이라든지 ‘쌍방 동시 진행’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이 우리한테는 더 편리할 것 같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우리의 명운이 걸려 있는 일이다. 또 국제적인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의견들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한테 익숙지 않은, 중국식 표현법 혹은 ‘비핵화 프로세스’니 ‘시브이아이디’(CVID) 같은 영어식 표현 등이 나돌아다닌다. 그러나 다시 보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최후의 동의권은 바로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니만큼 우리가 잘 이해하고 혼란을 느끼지 않는 말로 그 개념이 정리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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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실천

이름을 짓는 일은 매우 자의적인 행동 같지만 사실 명명자의 마음속 이념이나 가치관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여자아이의 이름을 ‘예쁜이’라고 지으면서 그저 예뻐서 그렇게 지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성의 삶에서 미모가 우선적이라는 가치 지향의 태도가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남자아이 이름에 용감할 용(勇)자를 넣는 것도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인명이나 지명만이 아니다. 공공의 목적이나 가치중립적인 활동을 지향하는 조직의 명칭도 은연중에 일정한 이념적 냄새를 숨기지 못한다. 어느 지방의 지방자치 조직에는 ‘새마을과’라는 부서도 있었다. 곧 없앤다니 다행이다. 한때 대학에 ‘학도호국단’이란 어용 학생조직이 당연하다는 듯 모든 학생들을 단원으로 삼고 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검찰청에서도 서슬 퍼렇던 ‘공안’이라는 부서가 사라진다고 한다. 사실 공공의 안전이라는 그 낱말 뜻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횡포가 그 이름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온 것이다. 유혈이 낭자하던 프랑스혁명 시기의 ‘공안위원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이름으로 나라의 안전을 구실 삼아 사람들의 천부적 권리에 상처를 많이 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안적 시각’이란 말은 수구적이고 냉전적인 안보중심적 시각이라는 의미나 다름없이 사용되었다.

과거를 반성하고 이름을 뜯어고치는 것을 말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이름으로 또 마찬가지 행동을 하게 되면 우리 모두에게 허무감만 남길 것이다. ‘보안사’를 ‘기무사’로 바꿨는데 이름만 바꿨지 알맹이는 그대로가 아닌가? 껍데기만 바꾸는 일이 지속된다면 이름을 바꿀 때마다 오히려 그 이름에 대한, 또 언어에 대한 신뢰만 그만큼 떨어질 뿐이다. 지속가능한 이름은 지속가능한 실천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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