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25 14:04

연말용 상투어

조회 수 74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연말용 상투어

늘 쓰는 말 가운데 상투어가 있다. 단어 낱낱의 뜻과 관계없이 습관처럼 입에 익어서 사용하는 말들이다.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반가워하며 “그렇잖아도 연락 한번 드리려고 했는데…” 같은 말들은 그 문장 내용의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만 하면 충분하다. 상당히 많은 상투어가 이렇게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말들이다.

상투어는 대개 일정하게 ‘정형화된 상황’을 계기로 삼아 사용된다. 보통 결혼식, 장례식, 축하 모임, 문안 인사 등이 상투어 사용의 계기들이다. 상투어는 진부한 부분도 있지만, 지나치게 세세하고 복잡한 언어적 묘사와 서술을 줄여주는 무척 요긴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투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매 순간 독특하고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몹시 피곤했을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상황’에도 상투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말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아마도 ‘다사다난한 올해를…’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일도 많고 탈도 많은’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런 뜻보다는 올해도 수고 많았다는 인사처럼 쓰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턴가 왠지 이 말이 품은 심각하고 진지한 의미가 살아나며 부담스러워졌다. 단순한 상투어가 아니라 괜히 이런 말을 방정맞게 자주 사용해서 궂은일이 자꾸 터지는 것 같은 꺼림칙함 말이다.

특히 지난해는 정치적으로 국민들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번잡스러웠다. 뜻을 모아 마음을 함께하는 일이 보람도 있었지만 무척 힘들고 피곤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진정 원래의 단어 뜻 그대로 ‘다사다난’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에는 그동안의 온갖 적폐를 속시원히 털어내고 다음 연말은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정말 마음 가벼운 상투어로만 사용했으면 한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5085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162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6441
3322 말과 절제, 방향과 방위 風文 2022.07.06 733
3321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선한 기업이 성공한다 風文 2021.10.31 735
3320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736
3319 안녕히, ‘~고 말했다’ 風文 2022.10.11 737
3318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風文 2022.02.24 740
3317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742
3316 갑질 風文 2024.03.27 742
3315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744
3314 말의 평가절하 관리자 2022.01.31 745
3313 ‘이고세’와 ‘푸르지오’ 風文 2023.12.30 745
3312 재판받는 한글 風文 2021.10.14 746
» 연말용 상투어 風文 2022.01.25 746
3310 영어의 힘 風文 2022.05.12 748
3309 인과와 편향, 같잖다 風文 2022.10.10 750
3308 언어와 인권 風文 2021.10.28 754
3307 편견의 어휘 風文 2021.09.15 755
3306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756
3305 물타기 어휘, 개념 경쟁 風文 2022.06.26 756
3304 우방과 동맹, 손주 風文 2022.07.05 756
3303 쓰봉 風文 2023.11.16 756
3302 식욕은 당기고, 얼굴은 땅기는 風文 2024.01.04 756
3301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75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