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위드 코로나(2)

나는 ‘단계적 일상 회복’과 ‘위드 코로나’ 중에서 뭐가 더 좋은지를 묻지 않았다. 뭐가 더 친숙하냐고 물었다. 취향이 아니라 말의 습관을 물었다. 취향도 습관에서 나온다. 다만, 취향이나 호불호가 결과라면, 습관은 과정에 주목한다.

중국에는 ‘코로나’가 없다. ‘코로나’의 공식명칭은 ‘신형관상병독폐렴’, 줄여서 ‘신관폐렴’, 더 줄여 ‘신관’이다. ‘위드 코로나’도 ‘여신관병독공존’, 줄여서 ‘여신관공존’이다. 코로나와 공존하기. 아름답도다, 중국어.

우리는 왜 ‘코로나와 함께 살기’가 아니었을까? 범인 찾듯 ‘얼빠진’ 전문가나 정부 당국, 언론을 ‘잡아 족치는’ 게 편한 일이겠지만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정치체제나 언어정책, 외국어를 대하는 언어공동체의 문화나 감수성, 언어와 문자의 차이 같은 것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듣게 써야 한다. 문제는 이 당연한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느냐다. 보통은 이랬다. 누군가 새로운 문물이나 현상을 소개하며 외국어를 그대로 쓴다. 언론에서는 그걸 그대로 쓴다. 정부 당국자들도 그걸 그대로 쓴다. 널리 퍼진다. 한글단체나 국립국어원에서 어렵다며 대체어를 제안한다. 안 바뀐다. 개탄한다.

비 그친 뒤 우산 펴기, 뒷북치기. 이미 퍼졌으면 낙장불입이다. ‘위드 코로나’도 ‘이른바’라는 말로 강등되었지만 계속 쓰이리라. 그럼 쉬운 말 쓰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찜질방에서 옷 갈아입히듯이, 중국처럼 아예 길목을 지켜 서서 말 고치기를 해볼 텐가?


'-다’와 책임성

뭐든 반복을 하다 보면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궁리를 할 때도 있고, 적당히 넘길 요령을 찾을 때도 있다. 나도 매주 돌아오는 칼럼에서 가끔 느껴지는 무료함을 어떻게 달래볼까 잔머리를 굴리곤 하지. 그 무료함의 맨 앞줄에는 문장을 끝맺을 때마다 어김없이 쓰게 되는 ‘-다’가 있다. ‘-다’를 피하는 몇가지 잔꾀. 동사가 아닌 단어로 끝맺기, 도치법 쓰기, 괜히 질문하기(‘분명한가?’ ‘않겠나?’), 다른 종결어미 쓰기(‘얼마나 정겨운지’ ‘먹으란 뜻이렷다’).

‘-다’를 쓰면 문장이 중성화가 되어 시공과 상하귀천을 넘나드는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이야기일 것만 같다. 특히 글쓴이를 감출 수 있다. ‘단풍이 들었더라/들었다더라’라고 하면 글쓴이가 문장 속에 숨어 있다. ‘단풍이 들었다’고 하면 글쓴이보다 정보가 도드라진다.

<독립신문>(1896년)만 봐도, 사설(논설)에는 ‘-노라’(‘미리 말씀하여 아시게 하노라’), 단신(잡보)에는 ‘-더라’(‘종을 아침에 조련하였다더라’), 정부 공고(관보)에는 ‘-다’(‘방윤극이가 삼월 십일에 죽다’), 광고에는 ‘-오’(‘보시고 단골로 정하시오’)를 쓰더군. ‘-노라’와 ‘-더라’ 모두 1인칭 주어를 요구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글에 대한 책임이 글쓴이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기입해 놓았으니.

우리 문장이 ‘-다’로 정착된 과정은 글쓴이를 경험의 증언자에서 진리의 전달자로 승격했다는 뜻. 식도 역류만 아니라면, 역류(레트로)도 아주 나쁘진 않아 보인다. 글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주체가 드러나는 ‘-더라, -노라’도 유행하기를 꿈꾸노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35865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82334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7234
    read more
  4. 한 두름, 한 손

    Date2024.01.02 By風文 Views591
    Read More
  5. 귀순과 의거

    Date2022.05.20 By관리자 Views592
    Read More
  6. 장녀, 외딸, 고명딸

    Date2023.12.21 By風文 Views594
    Read More
  7. “이 와중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께”

    Date2023.12.30 By風文 Views601
    Read More
  8. 언어공동체, 피장파장

    Date2022.10.09 By風文 Views602
    Read More
  9. 맞춤법을 없애자 (3), 나만 빼고

    Date2022.09.10 By風文 Views605
    Read More
  10. 외국어 선택하기

    Date2022.05.17 By風文 Views609
    Read More
  11. 불교, 불꽃의 비유, 백신과 책읽기

    Date2022.09.18 By風文 Views609
    Read More
  12. 어버이들

    Date2021.10.10 By風文 Views615
    Read More
  13. 뒤치다꺼리

    Date2023.12.29 By風文 Views617
    Read More
  14. 비대칭적 반말, 가짜 정보

    Date2022.06.07 By風文 Views618
    Read More
  15. 산막이 옛길

    Date2023.11.09 By風文 Views618
    Read More
  16. ‘며칠’과 ‘몇 일’

    Date2023.12.28 By風文 Views621
    Read More
  17. 왜 벌써 절망합니까 - 벤처대부는 나의 소망

    Date2022.05.26 By風文 Views624
    Read More
  18. ‘맞다’와 ‘맞는다’, 이름 바꾸기

    Date2022.09.11 By風文 Views624
    Read More
  19. 여보세요?

    Date2023.12.22 By風文 Views625
    Read More
  20. 위드 코로나(2), '-다’와 책임성

    Date2022.10.06 By風文 Views626
    Read More
  21. 아무 - 누구

    Date2020.05.05 By風文 Views642
    Read More
  22. ‘내 부인’이 돼 달라고?

    Date2023.11.01 By風文 Views643
    Read More
  23. ‘~스런’

    Date2023.12.29 By風文 Views645
    Read More
  24. 경평 축구, 말과 동작

    Date2022.06.01 By風文 Views654
    Read More
  25. 거짓말, 말, 아닌 글자

    Date2022.09.19 By風文 Views65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