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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지정

대학별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되었다. 사실상 대학 입시 전형이 문을 연 셈이다. 교육부는 이에 앞서 지원 대학 선택에 영향을 줄 자료를 발표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대비하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평가 결과 등을 공개한 것이다. 부실대학은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의견에 맞서 일부 대학과 학생들의 반발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경쟁만을 부추기는 교육부의 줄 세우기식 대학 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관련 소식을 다룬 라디오 뉴스를 했다. 첫머리에 나온 ‘35개 대학을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선정’ 표현이 눈에 띄었다. ‘하위 15% 사립대를…선정하고’, ‘경영부실대학은 11개교가 선정’처럼 ‘선정’이 거듭 나왔다. ㄷ일보, ㅈ일보, ㅇ뉴스 등도 같은 쓰임의 ‘선정’을 사용했다. ㅎ신문, ㅅ일보, ㅅ신문 등은 ‘선정’ 대신 ‘지정’이라 표현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찾아보았다. ‘…학자금대출제한대학 및 경영부실대학 지정’을 제목으로 뽑은 자료 첫 장에는 ‘지정’이 거푸 등장했다. 보도자료 본문 9쪽을 뜯어보니 ‘지정’이 24차례, ‘선정’이 12차례 나왔다. 문맥에 따라 두 낱말을 가려 쓴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검색 결과는 461건(지정), 336건(선정)이었다.(구글 검색)

‘선정’은 ‘여럿 가운데 어떤 것을 가려서 뽑음’이고 ‘지정’은 ‘행정 관청이나 단체가 필요에 따라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정을 조사한 다음 어떤 것에 특별한 자격을 줌’이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고르는 것’과 ‘가리켜 정하는 것’의 차이다. 한자 ‘선’(選-)과 ‘지’(指-)의 뜻에 주목해 보면 그렇다. ‘선정’에는 선발, 선택, 선출, 선호, 선곡처럼 생산적이고 호의적인 느낌이 배어 있다. ‘하위 15%에 선정’ 같은 대목은 ‘-포함’으로 하는 게 낫다. 그날 라디오 뉴스 원고의 ‘선정’은 ‘지정’으로 다듬어 방송했다. 아나운서는 방송의 최종 교열자 노릇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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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빼기 황소

한가위가 코앞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신경 쓰이는 선물이다. 추석 인기 선물이 예년과 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철 일조량 부족과 긴 장마 탓에 과일 같은 신선식품은 지난해만 못하고 일본 방사능 유출 영향으로 수산물을 찾는 발길이 작년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게 한우선물세트이다. 한 대형마트의 한우세트 판매는 전년에 비해 80퍼센트 늘었다고 한다. 어느 식당 차림표에서 ‘얼룩배기 황소 된장찌개’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 것은 이 소식을 들은 뒤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룩배기’와 ‘얼룩백이’는 얼룩빼기의 잘못이다. ‘-빼기’는 ‘그런 특성이 있는 사람이나 물건’ 또는 ‘비하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곱빼기, 밥빼기(동생이 생긴 뒤에 샘내느라고 밥을 많이 먹는 아이), 코빼기(‘코’를 속되게 이르는 말), 악착빼기(몹시 악착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처럼 쓰인다. 얼룩빼기는 ‘겉이 얼룩얼룩한 동물이나 물건’이니 얼룩빼기 황소는 얼룩소의 하나이다. ‘얼룩 황소’가 왠지 이상하게 들린다면, 황소를 털 빛깔이 누런 누렁소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황소는 큰 수소이다. 황소에는 얼룩빼기도 있고 검은 것도 있는 것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얼룩빼기 황소’, 동요로 널리 알려진 박목월의 시 ‘얼룩송아지’에 등장하는 ‘얼룩소’는 어떤 모습일까. 바둑이처럼 생긴 젖소? 아니다. ‘향수’는 1927년에 발표되었고 ‘얼룩송아지’는 1948년 국정 음악교과서에 처음 수록되었다. 이 땅에 젖소가 들어온 때는 1902년이지만 얼룩무늬의 홀스타인 종은 1962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최신축산경영학>) 시기를 따져보면 ‘얼룩빼기 황소’, ‘얼룩소’는 온몸에 칡덩굴 같은 어룽어룽한 무늬가 있는 ‘칡소’이다. 엊그제 ‘전통 칡소 고기 품질 탁월’이라는 ㅎ대학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우선물세트 인기에 칡소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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