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19 06:10

내연녀와 동거인

조회 수 68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연녀와 동거인

가끔 연락하는 <한겨레> 기자가 있다. 말을 주제로 기자끼리 토론이 붙나 보더라. 말에 대한 감각이 천차만별이니 토론이 자못 뜨거워 보였다. ‘기자들이 말에 대한 고민이 많군’ 하며 즐거워한다. ‘내기’ 를 거는지는 모르지만, 급기야 생각 없이 사는 나한테까지 질문을 한다. 내 대답은 늘 ‘어정쩡’ 하다.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며칠 전엔 아트센터나비 관장 노소영씨가 티앤씨(T&C)재단 이사장 김희영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김씨를 에스케이(SK) 회장 최태원씨의 ‘내연녀’ 라 할지 ‘혼외 동거인’ 이라 할지로 논쟁이란다.

상식적(?) 으로 보면, ‘내연녀 / 내연남’은 개인의 사생활을 매도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말이니 ‘혼외 동거인’ 이라 쓰는 게 맞다고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연락해온 기자는 노소영씨 입장에 주목했다. 노씨가 소송을 한 데에는 두 사람의 내연 관계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가 영향을 끼쳤을 텐데, 김씨에게 ‘혼외 동거인’(‘동거녀’ 도 아닌) 이란 중립적인 표현을 쓰는 게 온당한가? 은밀함, 비도덕성, 부적절함 같은 말맛이 풍기는 ‘내연녀’ 란 말을 써야 ‘본처’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담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일 듯.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나는 다른 데에 눈길이 갔다. ‘내연녀’ 와 ‘혼외 동거인’ 사이에서 새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뭘까 하는 것. 유사 이래로 혼외 연애 범죄는 끊임이 없었다. 그걸 다룬 기사는 한결같이 ‘내연녀 / 내연남 고소 / 협박 / 폭행 / 살해’ 였다. 그렇다면 혹시 고결한 재벌가의 연애사를 다루다 보니 비로소 번민이 시작된 건 아닐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994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670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1521
3322 올바른 명칭 風文 2022.01.09 627
3321 순직 風文 2022.02.01 628
3320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628
3319 선교와 압박 風文 2021.09.05 632
3318 언어적 주도력 風文 2021.09.13 632
3317 우방과 동맹, 손주 風文 2022.07.05 632
3316 역사와 욕망 風文 2022.02.11 633
3315 1도 없다, 황교안의 거짓말? 風文 2022.07.17 633
3314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風文 2022.06.21 634
3313 북한의 ‘한글날’ 風文 2024.01.06 634
3312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635
3311 개념의 차이, 문화어 風文 2022.06.13 636
3310 안녕히, ‘~고 말했다’ 風文 2022.10.11 639
3309 말과 공감 능력 風文 2022.01.26 640
3308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미래를 창조하는 미래 風文 2022.05.17 641
3307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642
3306 노동과 근로, 유행어와 신조어 風文 2022.07.12 643
3305 쓰봉 風文 2023.11.16 644
3304 태극 전사들 風文 2022.01.29 645
3303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645
3302 또 다른 이름 風文 2021.09.05 647
3301 말의 평가절하 관리자 2022.01.31 64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