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무슨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두고 이야기를 할 때, 말머리에 갖다 붙이는 부사가 몇 가지 있다. 이 말들은 서로 바꿔 써도 괜찮은 경우가 있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행여 표 떨어질라 … 눈치 행정 극심’
한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이 제목에서 ‘행여’에는 표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담겨 있다. 잘못 쓴 말이다. ‘행여’는 한자 다행 행(幸)에 접미사 ‘-여’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다. 따라서 ‘다행히도, 운 좋게, 바라건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우려하고 걱정하는 말에다 기대할 때 쓰는 말을 갖다 놓았다.
그런데 이런 잘못은 많은 독자가 읽는 신문에서 머릿기사 제목으로 쓸 만큼 흔해져 버렸다. 이 기사가 눈에 띄기에 보기를 들었을 뿐이지, 이와 똑같은 잘못은 어느 신문 가릴 것 없이 일반화돼 있다.
이런 용도로 쓰이는 부사로는 ‘행여·행여나·혹·혹시·혹시나·혹여·혹간·설혹·만약·만약에·만일’ 따위가 있다. 이들 중에서 다른 것들은 우려하는 경우나 기대하는 경우에 공통적으로 쓸 수 있지만 ‘행여’와 ‘행여나’는 걱정·우려할 때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행여 반가운 친구가 오려나 기다려진다”는 되지만 “행여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안 된다.
‘행여’를 ‘혹시’와 같은 뜻으로 풀이한 사전이 있기는 하다. 잘못된 말이지만 널리 퍼져 있으므로 그런 풀이를 넣었을 터이다. 그러나 공공성을 띤 매체라면 제대로 본디뜻을 가려서 쓰는 것이 좋겠다.
우재욱/우리말 순화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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