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13 10:42

'김'의 예언

조회 수 55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의 예언

말은 시간과 닿아 있다. 경험과 기억이 쌓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 보게도 한다. 정신적 뼈와 살이 되는 말은 육체에 버금간다. 만져지는 말.

우리 딸은 2000년에 태어났다. 미인가 대안학교를 나온 그는 준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매 순간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사회가 미리 짜놓은 경쟁의 허들 경기에 불참하고 있다. 아비를 따라 합기도(아이키도) 수련을 하며 틈틈이 노래를 지어 부른다. 한동안 스파게티집 주방에서 종일 설거지 알바를 하더니 몇달 전부터는 채식요리(비건) 식당에 들어가서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요즘 그는 틈나는 대로 운다. ‘김’ 때문이다. 얇고 까무잡잡한 ‘김’. 올해 봄이나 여름부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붓는다는 소식과 겹쳐 ‘김’이란 말을 뱉을 때마다, 김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그의 머릿속엔 파국적 상황이 연상되나 보다. 다시 먹지 못할 김. 어디 김뿐이랴. 오염수는 늦어도 4~5년 뒤엔 제주 밤바다에 도달한다고 한다. 국경을 모르는 물고기들은 그 전에 피폭될 테고(이미 봄비는 내렸다).

일본 시민사회와 교류하고 있는 옆방 선생이 전하기를, 일본 지인들한테서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한다. 일본의 어느 아침 밥상에서는 ‘다시마’를 앞에 두고 우는 이들이 있나 보다.

원전 마피아들은 오염수 방류의 파국적 미래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아니, 무조건 ‘안전하다’고 떠든다. 생태에 대한 책임감을 찾을 수 없는 엘리트들보다 우리 딸의 감각이 더 믿음직스럽다. 늦지 않게 종말론적 체념의 감각을 익혀야겠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28620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75498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0239
    read more
  4. ‘파바’와 ‘롯리’

    Date2023.06.16 By風文 Views531
    Read More
  5. 말 많은 거짓말쟁이 챗GPT, 침묵의 의미를 알까

    Date2023.06.14 By風文 Views917
    Read More
  6. 망신

    Date2023.06.09 By風文 Views945
    Read More
  7. 이 자리를 빌려

    Date2023.06.06 By風文 Views842
    Read More
  8. ‘부끄부끄’ ‘쓰담쓰담’

    Date2023.06.02 By風文 Views738
    Read More
  9. 김 여사

    Date2023.05.31 By風文 Views796
    Read More
  10. 프로듀사

    Date2023.05.30 By風文 Views1016
    Read More
  11. 예민한 ‘분’

    Date2023.05.29 By風文 Views825
    Read More
  12. 아이 위시 아파트

    Date2023.05.28 By風文 Views981
    Read More
  13. 도긴개긴

    Date2023.05.27 By風文 Views853
    Read More
  14. ‘이’와 ‘히’

    Date2023.05.26 By風文 Views717
    Read More
  15. 두꺼운 다리, 얇은 허리

    Date2023.05.24 By風文 Views836
    Read More
  16. 단골

    Date2023.05.22 By風文 Views999
    Read More
  17. 대통령과 책방

    Date2023.05.12 By風文 Views793
    Read More
  18. 돼지껍데기

    Date2023.04.28 By風文 Views833
    Read More
  19. 용찬 샘, 용찬 씨

    Date2023.04.26 By風文 Views708
    Read More
  20. 개양귀비

    Date2023.04.25 By風文 Views927
    Read More
  21. 너무

    Date2023.04.24 By風文 Views947
    Read More
  22. 댄싱 나인 시즌 스리

    Date2023.04.21 By風文 Views510
    Read More
  23. 막냇동생

    Date2023.04.20 By風文 Views546
    Read More
  24. 내연녀와 동거인

    Date2023.04.19 By風文 Views646
    Read More
  25. 1.25배속 듣기에 사라진 것들

    Date2023.04.18 By風文 Views71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