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1.16 08:08

‘통일’의 반대말

조회 수 117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통일’의 반대말

‘낮’의 반대는 ‘밤’, ‘살다’의 반대는 ‘죽다’. 반대말은 어떤 상태의 양쪽 끄트머리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그 사이에 있는 우여곡절은 놓치게 하지. ‘깨끗하다-더럽다’ ‘따뜻하다-차갑다’ ‘다정하다-무정하다’처럼 사회문화적인 평가가 담긴 말은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하지.

'통일’의 반대말은 뭘까? ‘분단’이나 ‘분열’쯤 될 듯. 분단, 분열은 ‘쪼개지고 갈라졌다’는 부정적 감정을, 통일은 ‘하나되고 일치한다’는 긍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니,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다. 통일만 된다면, 긴장과 대립은 사라지고 상처는 치유되며 온 세상에 일치와 단결의 함성이 드높아질 거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분단, 분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일사불란한 통일을 좋아한다. 식당에서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칠 때 뿌듯한 일체감을 느낀다. 통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이를 가려야 성립한다. 그런 점에서 획일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분단’, ‘분열’을 보자. 요즘 말로 바꾸면 ‘자유’나 ‘자치’라 하겠다. 각각의 자유가, 서로의 다름이 당당히 추구되고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래도 함께할 구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떠올라야 ‘같은 말과 피’라는 민족적·유전자적 차원보다 진일보한 통일이 가능하리라. 우리에게 더 많은 권력 분산, 더 많은 지방색, 더 많은 자치가 필요하다. 통일과 자유, 자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게 시대적 과제다. 반대말의 사이를 헤엄치며, 반대말을 뒤섞음으로써.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140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819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2933
3102 열쇳말, 다섯 살까지 風文 2022.11.22 1028
3101 '붓'의 어원 風文 2023.08.18 1029
3100 국가의 목소리 風文 2023.02.06 1033
3099 독불장군, 만인의 ‘씨’ 風文 2022.11.10 1041
3098 울타리 표현, 끝없는 말 風文 2022.09.23 1043
3097 좋음과 나쁨, 제2외국어 교육 風文 2022.07.08 1046
3096 단골 風文 2023.05.22 1046
3095 아이 위시 아파트 風文 2023.05.28 1047
3094 지명의 의의 風文 2021.11.15 1050
3093 지도자의 화법 風文 2022.01.15 1057
3092 망신 風文 2023.06.09 1059
3091 ‘외국어’라는 외부, ‘영어’라는 내부 風文 2022.11.28 1062
3090 참고와 참조 風文 2023.07.09 1079
3089 ‘-데’와 ‘-대’, 정확한 표현 風文 2023.06.17 1081
3088 질척거리다, 마약 김밥 風文 2022.12.01 1103
3087 프로듀사 風文 2023.05.30 1106
3086 옹알이 風文 2021.09.03 1109
3085 존맛 風文 2023.06.28 1109
3084 납작하다, 국가 사전을 다시? 주인장 2022.10.20 1111
3083 맞춤법을 없애자, 맞춤법을 없애자 2 風文 2022.09.09 1127
3082 교정, 교열 / 전공의 風文 2020.05.27 1142
3081 꼬까울새 / 해독, 치유 風文 2020.05.25 115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