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2.21 15:41

슬기와 설미

조회 수 8346 추천 수 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슬기와 설미

우리 토박이말에는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는 일에 쓸 낱말이 모자라 그 자리를 숱하게 중국 한자말로 메운다. 이런 형편은 우리말이 본디 그렇게 돼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머리를 써서 이치를 밝히고 올바름을 가리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 우리말을 팽개치고 한자말만 쓴 까닭이다. 마음이 있으면 말은 생기는 법인데 그들은 우리말에 마음을 주지 않았다. ‘슬기’와 ‘설미’는 그런 역사를 뚫고 이치를 밝히며 올바름을 가리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토박이말이다.

‘슬기’는 임진왜란 뒤로 가끔 글말에 적힌 덕분에 무서운 한자말 발길에 짓밟히면서도 살아남아 우리 품까지 안겨왔다. 아직도 ‘슬기’보다는 ‘지혜’를 즐겨 쓰는 이가 많지만 국어사전들이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달으며 사물을 처리하는 방도를 옳게 잘 생각해내는 재간이나 능력”이라고 뜻풀이를 똑똑히 달아 올림말로 실어놓아서 갈수록 널리 쓰일 것이다.

‘설미’는 15세기 끝 무렵에 엮은 〈악학궤범〉에 한 차례 글말로 적힌 바가 있지만 여태 국어사전에는 오르지 못한 말이다. 다만 ‘눈’의 매김을 받으면서 ‘눈썰미’로만 국어사전에 올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설미’는 “이런저런 사정을 두루 살펴서 올바르고 그릇된 바를 제대로 가늠하는 마음의 힘”이라는 뜻을 지닌 빼어난 우리 토박이말이다. 악학궤범에는 나쁜 것을 쫓는 서낭 ‘처용’의 모습을 추켜세우면서 “설 모도와 有德신 가매”라 했다. “처용이 ‘설미’를 모아 가지고 있어서 가슴이 유덕하다”는 뜻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2879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7566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0389
3234 끌끌하다 바람의종 2008.02.16 9468
3233 굿 바람의종 2008.02.17 7716
3232 호태왕비 바람의종 2008.02.17 8592
3231 라틴아메리카 언어 바람의종 2008.02.18 9273
3230 남새 바람의종 2008.02.18 6415
3229 한글과 우리말 바람의종 2008.02.19 6905
3228 원추리 바람의종 2008.02.19 5944
3227 엄리대수와 아시 바람의종 2008.02.20 7990
3226 아메리카 토박이말 바람의종 2008.02.20 7708
3225 쓰겁다 바람의종 2008.02.20 10831
» 슬기와 설미 바람의종 2008.02.21 8346
3223 애기똥풀 바람의종 2008.02.21 5840
3222 큰 바위 바람의종 2008.02.22 7405
3221 오스트로네시아 말겨레 바람의종 2008.02.22 8061
3220 누겁다/ 서겁다 바람의종 2008.02.22 6912
3219 뜰과 마당 바람의종 2008.02.23 7250
3218 꽃다지 바람의종 2008.02.23 7564
3217 난친이 바위 바람의종 2008.02.24 7011
3216 중국의 언어 바람의종 2008.02.24 10130
3215 재개비 바람의종 2008.02.25 6910
3214 맑다와 밝다 바람의종 2008.02.27 6584
3213 이팝나무 바람의종 2008.02.27 1111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