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鬱陶項(울돌목)

방송 프로그램에 낯선 한자가 나왔다. 鬱陶項, 선뜻 읽히지 않은 한자는 ‘울돌목’ 뒤 괄호에 묶여 있었다. ‘물길이 암초에 부딪혀 튕겨 나오는 소리가 매우 커 바다가 우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울돌목’의 한자는 ‘명’(鳴, 울 명)-‘량’(梁, 들보 량)이다. 생뚱한 한자-답답할 울(鬱), 질그릇 도(陶), 목 항(項)은 제작진의 무지함에서 비롯했다, 여겼다.

한자 새김을 모른 채 ‘한자 변환키’로 바꾸고, ‘복사-붙여넣기’ 하면서 아는 척 나서는 이들이 있다. 이런 따위의 기사를 꼬집으려 쟁여 둔 글감 중에 하나가 일본 정찬 요리 ‘가이세키’(かいせき)의 한자이다. ‘회석’(會席)이 아닌 ‘懷石’(회석, 돌을 품다)으로 쓴 글에서 현장 취재 없이 자료를 얼기설기 짜깁기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듯했다.

‘鬱陶項’과 ‘懷石’의 문제를 따지려 자료를 찾아보았다. 뜻밖에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鬱陶項’은 오도숙이란 사람이 쓴 ‘상경해정기’에 나온다고 하지만, 저자와 원전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었다. ‘懷石料理’는 일본 다도(茶道)에서 ‘차를 대접하기 전에 내놓는 간단한 음식’을 이르는 명칭이다. 둘 다 근거가 잘못되었다. 원인은 ‘네이버 검색’에서 ‘鬱陶項’과 ‘懷石料理’가 맨 위에 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차고 넘치는 정보에서 쓸 만한 것을 거르고 추리는 능력은 반듯한 말글살이의 바탕이다.

검색 몇 번이면 온갖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에 ‘무심함’과 ‘무지함’에서 비롯한 말과 글의 오류를 글감으로 삼으려 애썼다. 지난 5년 내내 ‘글감 궁리’를 벗 삼아 지냈다. 이 자리에 쓴 글은 219꼭지, 도마 위에 올린 낱말은 더 많았다. <말글살이>를 꾸려오며 행복했다. 필자에서 독자로 돌아가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졸고를 너른 마음으로 받아주신 여러분의 은혜는 두고두고 갚으려 한다. 방송하며, 학생들과 공부하며, 말글살이하며, 그렇게 말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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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언어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처음 마주치는 언어를 가장 쉽게 배운다. 부모가 전문적인 교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기들은 순탄하게 익혀 대여섯 살이 되면 그 말을 통달하게 된다. 그래서 그 언어를 어머니의 언어(모어)라고 한다. 한때는 모국어라고도 했지만 국가의 배경이 없는 수많은 언어들을 배려한 이름이다.

이 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애국심이 강조되며 본질적으로 민족혼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모어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모어와 애국심의 확실한 관계는 제대로 증명되지 않는다. 모어의 기능과 효과가 워낙 넓어서 매국노에게도, 적들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언어를 지나치게 애국주의적 관점에서 논하는 차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모어는 공짜로 배우는 언어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큰 가치가 있다. 반면에 외국어는 무언가 값을 치르고 배우게 된다. 모어는 공짜이니만큼 사람마다 별다른 차이 없이 어슷비슷한 능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언어를 이용한 교육, 지식, 정보에는 보편적 신뢰가 생긴다. 나만 모르는 일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회공동체는 모어의 능력을 구성원의 ‘자격증’처럼 생각한다. 또한 공짜는 특권층의 이익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공통성과 유대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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