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25 14:04

연말용 상투어

조회 수 65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연말용 상투어

늘 쓰는 말 가운데 상투어가 있다. 단어 낱낱의 뜻과 관계없이 습관처럼 입에 익어서 사용하는 말들이다.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반가워하며 “그렇잖아도 연락 한번 드리려고 했는데…” 같은 말들은 그 문장 내용의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만 하면 충분하다. 상당히 많은 상투어가 이렇게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말들이다.

상투어는 대개 일정하게 ‘정형화된 상황’을 계기로 삼아 사용된다. 보통 결혼식, 장례식, 축하 모임, 문안 인사 등이 상투어 사용의 계기들이다. 상투어는 진부한 부분도 있지만, 지나치게 세세하고 복잡한 언어적 묘사와 서술을 줄여주는 무척 요긴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투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매 순간 독특하고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몹시 피곤했을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상황’에도 상투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말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아마도 ‘다사다난한 올해를…’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일도 많고 탈도 많은’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런 뜻보다는 올해도 수고 많았다는 인사처럼 쓰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턴가 왠지 이 말이 품은 심각하고 진지한 의미가 살아나며 부담스러워졌다. 단순한 상투어가 아니라 괜히 이런 말을 방정맞게 자주 사용해서 궂은일이 자꾸 터지는 것 같은 꺼림칙함 말이다.

특히 지난해는 정치적으로 국민들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번잡스러웠다. 뜻을 모아 마음을 함께하는 일이 보람도 있었지만 무척 힘들고 피곤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진정 원래의 단어 뜻 그대로 ‘다사다난’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에는 그동안의 온갖 적폐를 속시원히 털어내고 다음 연말은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정말 마음 가벼운 상투어로만 사용했으면 한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29157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76000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0774
    read more
  4.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IMF, 막고 품어라, 내 인감 좀 빌려주게

    Date2022.02.01 By風文 Views821
    Read More
  5. 순직

    Date2022.02.01 By風文 Views613
    Read More
  6. 삼디가 어때서

    Date2022.02.01 By風文 Views762
    Read More
  7. 말의 평가절하

    Date2022.01.31 By관리자 Views619
    Read More
  8. 어떤 문답

    Date2022.01.31 By관리자 Views824
    Read More
  9. 사저와 자택

    Date2022.01.30 By風文 Views651
    Read More
  10. 아줌마들

    Date2022.01.30 By風文 Views658
    Read More
  11. 태극 전사들

    Date2022.01.29 By風文 Views627
    Read More
  12. 정치의 유목화

    Date2022.01.29 By風文 Views899
    Read More
  13. 외래어의 된소리

    Date2022.01.28 By風文 Views717
    Read More
  14. 통속어 활용법

    Date2022.01.28 By風文 Views695
    Read More
  15. 말과 공감 능력

    Date2022.01.26 By風文 Views624
    Read More
  16. 정당의 이름

    Date2022.01.26 By風文 Views702
    Read More
  17. 법과 도덕

    Date2022.01.25 By風文 Views703
    Read More
  18. 연말용 상투어

    Date2022.01.25 By風文 Views651
    Read More
  19. 말로 하는 정치

    Date2022.01.21 By風文 Views784
    Read More
  20. 야민정음

    Date2022.01.21 By風文 Views689
    Read More
  21. 쇠를 녹이다

    Date2022.01.15 By風文 Views1172
    Read More
  22. 지도자의 화법

    Date2022.01.15 By風文 Views1028
    Read More
  23.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중소기업 콤플렉스

    Date2022.01.13 By風文 Views870
    Read More
  24. 주권자의 외침

    Date2022.01.13 By風文 Views866
    Read More
  25. 마녀사냥

    Date2022.01.13 By風文 Views83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