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96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4·3과 제주어

‘육지’와 멀리 떨어진 게 고유성을 지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4·3사건으로 섬사람들은 고립되고 실어증에 걸린다. 제주어는 반란의 언어, 금지된 말. 참상에 대한 증언은 고사하고 제주 사람 티가 나는 말을 쓰는 것조차 꺼렸다. 육지에 나갈 때, 섬말은 바다에 내던져졌다.

2010년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사라져 가는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등록했다. 4단계는 소멸 직전의 언어로, 노인들만 뜨문뜨문 쓴다는 뜻이다. 말의 표준화와 미디어의 전국화는 지역어의 위기와 소멸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제주에는 제주어를 기록, 보존, 활성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자긍심은 제주어를 기록하기 위한 별도의 ‘제주어 표기법’을 갖고 있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육지에서는 진작에 버린 ‘아래아’(ㆍ)도 포함되어 있다. ‘아래아’는 만들어지고 얼마 안 지나 소릿값이 바뀌기 시작한 글자다. 단어의 첫소리에서는 주로 ‘ㅏ’로 바뀌고(ᄂᆞᆷ→남), 첫소리 아닌 자리에서는 ‘ㅡ, ㅓ, ㅜ’로 변했다(하ᄂᆞᆯ→하늘, 다ᄉᆞᆺ→다섯, ᄂᆞᄅᆞ→나루). 단어마다 달라지는 발음을 어떻게 표시할지가 숙제이지만, 제주어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제주어에 ‘아래아’ 발음이 살아 있으며, 이것이 제주어의 독특함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제주어가 복권되길 바란다. 딴 지역보다 조건이 좋다. 자율성을 갖춘 자치도이기도 하고, 제주어 복권을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 도도하게 버티고 있다. 집과 학교에서, 말로도 글로도 끈질기게 써서 제주어가 하나의 ‘언어’로 활짝 피어나길 빈다. 제주어 만세!


허버허버

“반대말이 없는 단어를 찾고 있어.” 아는 시인이 말했다. 기발하고 ‘기특한’ 상상이다. 나는 그를 ‘기특하다’고 했는데, 아마 당신은 그가 나보다 어린가 보다고 짐작할 것이다(실은 한참 위). 반대로 한 학생이 나를 ‘똑똑하다’라고 평하는 걸 보고, 맞는 말인데도(!) 기분은 상했었다. 밴댕이 소갈머리 선생은 ‘맹랑한 녀석’이라며 찡얼댔다. 어디에도 안 나오지만 안다. ‘표독스럽다’, ‘교태를 부리다’, ‘꼬리를 치다’가 누구를 향하는지 다 안다.

허버허버. “‘남자’가 음식을 급하게 먹을 때 내는 소리나 그 모양”을 뜻하는 새말. ‘남자’만을 지목하기 때문에 남성혐오라는 항의가 잇달았다. 무심코 이 말을 쓴 유명 ‘남성’ 유튜버는 ‘저는 절대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며 고해성사를 하고, 카카오톡에서는 이 말이 들어간 이모티콘을 판매 중지하면서 남성혐오 의도가 없다는 해명을 했다.

이 말의 기원이 ‘남자’만을 지목할지는 몰라도, 계속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 다른 흉내말을 봐도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깔짝깔짝, 깨지락깨지락, 꼭꼭, 오물오물, 우걱우걱, 질겅질겅, 쩝쩝, 후루룩’(‘냠냠’ 정도가 ‘아이’를 가리킨다).

사람이 미우면 뭘 먹을 때가 제일 얄밉다. 게다가 ‘허버허버’ 먹는다면 더 얄밉다. ‘기분 나쁘니 쓰지 말라’는 건 손쉬운 반응이긴 한데 문화적이진 않다. 반대말을 만들거나 새 의미를 덧붙여서 그 표현이 갖는 효력을 회수하는 방식이 좀 더 ‘기특한’ 방식이 아닐지.

그래도 말에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남성이 늘어난다는 건, 멀리 보았을 때는 좋은 징후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28933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75805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0534
    read more
  4. 큰 소리, 간장하다

    Date2022.10.04 By風文 Views887
    Read More
  5. 쳇바퀴 탈출법(1~3)

    Date2022.10.01 By風文 Views1350
    Read More
  6. 무술과 글쓰기, 아버지의 글쓰기

    Date2022.09.29 By風文 Views833
    Read More
  7. ‘건강한’ 페미니즘, 몸짓의 언어학

    Date2022.09.24 By風文 Views723
    Read More
  8. 울타리 표현, 끝없는 말

    Date2022.09.23 By風文 Views980
    Read More
  9. 역겨움에 대하여, 큰일

    Date2022.09.22 By風文 Views1497
    Read More
  10.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Date2022.09.21 By風文 Views597
    Read More
  11. 1일1농 합시다, 말과 유학생

    Date2022.09.20 By風文 Views422
    Read More
  12. 거짓말, 말, 아닌 글자

    Date2022.09.19 By風文 Views514
    Read More
  13. 불교, 불꽃의 비유, 백신과 책읽기

    Date2022.09.18 By風文 Views479
    Read More
  14. 아이들의 말, 외로운 사자성어

    Date2022.09.17 By風文 Views497
    Read More
  15. 그림과 말, 어이, 택배!

    Date2022.09.16 By風文 Views740
    Read More
  16. 4·3과 제주어, 허버허버

    Date2022.09.15 By風文 Views969
    Read More
  17.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Date2022.09.14 By風文 Views852
    Read More
  18. ‘맞다’와 ‘맞는다’, 이름 바꾸기

    Date2022.09.11 By風文 Views397
    Read More
  19. 맞춤법을 없애자 (3), 나만 빼고

    Date2022.09.10 By風文 Views487
    Read More
  20. 맞춤법을 없애자, 맞춤법을 없애자 2

    Date2022.09.09 By風文 Views1065
    Read More
  21. 비계획적 방출, 주접 댓글

    Date2022.09.08 By風文 Views739
    Read More
  22. 다만, 다만, 다만, 뒷담화

    Date2022.09.07 By風文 Views747
    Read More
  23. 시간에 쫓기다, 차별금지법과 말

    Date2022.09.05 By風文 Views648
    Read More
  24. 일타강사, ‘일’의 의미

    Date2022.09.04 By風文 Views961
    Read More
  25.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Date2022.09.03 By風文 Views96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