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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사업은 외로운 예술창작이다 - 창조 경영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들

  2년 전, 인간개발연구원에 있다는 한 지인(지인)이 날 찾아왔다. 인간개발연구원에서 매주 한번씩 경제인 조찬모임을 하는데 다음 회에 나더러 강사로 와달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니 그럴 듯 했지만 사실 배운 것도 짧고 말도 못하는 내가 그런 곳에 갔다가 무슨 망신을 당하랴 싶어서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다.
  "잘 모르시나 본데, 다른 분들은 이 자리에 초청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미래산업 정 사장님께서 나와주신다면 모두들 아주 좋아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런 분들 앞에서 감히 무슨 말을 하겠소."
  "사장님께서 겪어오신 이야기나 경영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점 같은 것들을 그냥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는지라 별 수 없이 승낙은 했지만 사실 남들 앞에서 강사연하며 서본 적이 없는 인생이라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더구나 인간개발연구원 회원으로 있는 내 친구가 소문을 듣자마자 나를 들볶아대기 시작했다. 강연도 처음이고 그런 자리도 처음이다 보니 혹시나 실수해서 무안이나 당하지 않을까 싶어 자기가 지레 안달이 났던 것이다. 나름대로 충고를 한답시고 하도 법석을 떠는 통에 도움은커녕 나는 더 초조해졌다. 막상 당일 아침에 가보니 사회를 봐야 할 연구원장은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는 태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섭외 했던 사람이 원장한테 잔소리를 좀 들었던 모양이다. 돈 좀 벌었다고 아무나 강사로 초빙하면 이 모임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이다. 사실 그곳 강사로 초빙되는 사람들은 내로라 하는 정계, 재게 거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원장이 하도 오지 않으니 급하게 다른 사람이 나와서 허둥지둥 사회를 보았다.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지만 이왕 허락한 것이니 최선을 다하리라 작정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유식한 소리라곤 애초에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이라고는 그 동안 기업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그로부터 얻었던 대단치 않은 깨달음 들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체계적으로 이야기할 줄 모르는 나는, 육두문자까지 마구 섞어가며 되는대로 떠들 수밖에 없었다.

  강연 도중에 자꾸만 사람들이 웃길래 나는 속으로 '비웃는구나' 하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강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강연 도중에 도착한 연구원장은 나중에 나를 찾아와서 진심으로 자신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했다.
  "강연 정말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재미도 있었구요. 이래봬도 벌써 9백 회가 넘은 조찬강연입니다. 그런데 오늘처럼 기립박수가 터져나온 건 정문술 사장님이 꼭 세 번째랍니다."
  그때 내게 쏟아지던 기립박수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현장성 내지는 진실성에 대한 환호였다. 나주에 알고 보니 이 모임에서 하는 강연이란 것이 그저 그런 점잖은 소리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이 바뀌어도 강연의 주제나 성격 역시 반복되는 것이 많았다. 정치인이나 행정관료가 나오면 보통 정책설명이 강연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마저도 해당관청의 자료를 보거나 신문만 신경 써서 읽어도 금세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영인들이 강사로 나와도 사실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는 소리라기보다는 대개 비서실에서 작성해준 원고를 읽게 마련이었다. 그런 점잖은 자리에서 내가 앞뒤 없이 마구 떠들어대었으니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수밖에.  요즘도 나는 한 달에 몇 번씩이나 각종 모임과 회합에 초청을 받는다. 그렇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절하거나 은근슬쩍 무시해버리고 만다. 관청에서 소집하는 기업정책 세미나에도 가급적이면 불참한다. 정 들어두어야 할 내용이라면 나중에 녹음 테이프를 구해서 듣는다. 무슨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재미가 없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영일선에서 일하다 보니 여러 가지 사정상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해야 할 때가 없지는 않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항상 봐야하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무슨 무슨 유명 짜한 모임이라며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수선스럽게 악수하기 바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거의 노골적이다. 강사에게 질문하는 것을 빌미로 강사를 어떻게든 자신의 비즈니스에 엮어보려고 하는가 하면, 강연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명함 도리기에 정신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참 보기가 싫다.

  정치계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제계에도 수많은 조찬모임이니 연합회니 하는 것들이 있다. 나도 그런 모임에는 몇 번 연사로도, 방청객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실지로 유용하게 활용될 귀중한 정보를 그런 모임을 통해 얻는 경우도 많다. 다마 s서로 얼굴이나 익혀두었다가 필요할 때 득이나 보자는, 일종의 사교모임 같은 자리들이 불만이라는 것이고, 멀쩡한 정보 세미나를 그런 식으로 변질시키는 얄팍한 비즈니스맨들이 보기 싫다는 것이다.  그런 경영자들을 보면 어쩌며 그토록 한가할 수 있는지 신기하게만 여겨진다. 물론 그들에게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이게 다 비즈니스고 사업이다'라고 말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무슨 비즈니스가 경제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이런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말이다.

  간혹 얼굴과 손목으로만 장사하려는 경영자들이 있다. 그 집안이야 들여다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들에게 관심 있는 것이라면 기껏해야 정부지원금이나 정책정보 나부랭이들일 것이다. 덩치만 크고 속으로는 잔뜩 곯아버린 껍데기 기업들의 일용할 양식이 보통 그런 것들 아니었던가.  나는 정책과 특혜 좋아하다간 기업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980년대 중반에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란 것이 시행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외국제품을 목록별로 분류해서수입을 규제하고,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내수경쟁력을 키워주겠다는 내용이다. 신청만 하면 눈엣가시 같던 외국경쟁사 장비들을 이 땅에서 몰아 낼 수 있는 모처럼의 호기였다.  나는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거부했다. 가장 먼저 고객이 불편해질 것이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장비가 훨씬 뛰어나다면 당연히 외국의 장비를 써야지, 애국한답시고 엉터리 국산 장비를 울며 겨자 먹기로 쓰다간 생산성도 떨어지고 국가경쟁력도 떨어질 것 아닌가. 내가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고객들에게 욕을 먹는 것 또한 나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국산 장비만을 보호하다 보면 점차로 신기술의 공급선을 끊어지게 마련이다. 외국의 좋은 장비들이 적당히 들어와야 그들의 기술도 배우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코앞의 이익 때문에 그들을 모두 몰아낸다면 그대로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

  경쟁하지 않는 기업은 낙오될 수밖에 없다. 외국장비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면 기업은 당연히 안일한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경쟁이 없는데 무슨 기술개발을 하며 경쟁력을 키우겠는가. 정책은 영원하지 않다.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 무너지면 기업도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나는 나의 선택 덕을 보고 있다고 자부한다. 미래산업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의 기술력과 자금력을 가질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때의 '거부'가 한몫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호받지 않고 정면으로 덤비는 용기가 경영자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래야 보호가 끝나더라도 기업이 죽지 않는다. 내게 쏟아지던 기립박수의 의미는 내가 가진 현장성 내지는 진실성에 대한 환호였다. 간혹 얼굴과 손목으로만 장사하려는 경영자들이 있다. 그 집안이야 들여다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들에게 관심 있는 것이라면 기껏해야 정부지원금이나 정책정보 나부랭이들일 것이다. 보호받지 않고 정면으로 덤비는 용기가 경영자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래야 보호가 끝나더라도 기업이 죽지 않는다.


     경영은 창작이다

  나는 미술품 애호가다. 미술품을 보며 생각 없이 즐기기도 하는 편이지만, 예술 창작행위들과 나의 경영을 비교해보는 버릇도 가지고 있다. 나는 언제나 사업을 예술행위처럼 이해했다. 계산과 원칙보다는 낭만과 열정을 보다 중시했다. 에둘러 돌아가거나 머뭇거리기보다는 맞바로 부딪치고 실험하는 것을 보다 좋아했다. 기업행위는 실로 예술적 창작의 연속이다. 실패의 고통과 성취의 가타르시스에 있어서도 기업행위와 예술은 일맥상통한다. 기업경영은 매우 고독하고 피 마르는 작업이다. 단 한순간을 방심해도 감각을 잃고 둔해진다. 기업가는 예술가처럼 부단히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며,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처세로서의 경영이 아닌, 창조로서의 경영이 필요하다.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거부함으로써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적인 발전가능성을 선택한 것이야말로 '창조적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기업가는 끊임없이 발상을 전환하고 새로운 것을 꿈꿔야 한다. 상상력은 예술가에게 뿐만 아니라 기업가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사업상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나는  간혹 미술잡지를 뒤적이거나 화랑을 둘러본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나는 실지로 그림을 보다가 가끔 사업적 영감을 얻는 편이다. 새로운 기법, 새로운 구성, 새로운 색채 등에서 개척자들의 투지와 모험심을 본다. 그를 통해 새로운 용기와 기발한 착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술창작에서나 기업경영에서 핵심은 창의력이다. 남들과는 다른 무엇을 항상 찾아내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다. 창의력을 잃어버린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창의력을 잃어버린 경영자는 종내 도태되게 마련이다. 훌륭한 경영자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항상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예술창작과 기업행위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항상 최초만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모방과 추종, 혹은 2위나 차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초가 가져다 주는 성과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다. 미래산업은 얼마 전 액면분할을 시도했다. 우리가 최초로 시도한 액면분할은 전체 주식시장과 미래산업에 엄청난 긍정적 파장을 몰고 왔다. 이후에 액면분할을 시도한 업체들은 모두 미래산업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최초와 차석의 차이 때문이다. 내가 기술개발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기술개발에서 2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술개발에서 '최초'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실패다. '벤처 마인드'란 '최초'에 대한 집착과 열정을 뜻한다. 따라서 나는 지금껏 '거꾸로 경영'을 주장해왔다. 모두가 가는 길에 언제나 '최초'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술창작과 경영자의 마지막 공통점은 '돈맛을 알면 퇴보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수집해도 가난한 화가의 초기작들을 수집했다. 그런 그림들에서 나는 고독한 예술혼과 넘치는 상상력을 발견한다. 그러나 미술계에서 자리를 잡고 돈도 벌만큼 번 사람들의 그림은 재미없다. 색채부터 화려해지고 반복되는 매너리즘이 생기는 것이다. 경영에 있어서도 그렇다. 장사하는 사람이 '돈맛'을 모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경영자들에게는 항상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위 '성공했다'는 기업가들은 개척하기보다는 '지키기'에 고심한다. 그런 경영자가 운영하는 기업에는 더 이상 발전과 모험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경영은 창작행위다. 창작하는 자가 알량한 돈맛에 취하면 창작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기업행위에 안정은 없다. 기업행위에 성공은 없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진정한 경영자다. 예술창작과 기업행위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항상 최초만이 의미 있다'는 것이다. 모방과 추종, 혹은 2위나 차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초가 가져다주는 성과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다. 경영은 창작행위다. 창작하는 자가 알량한 돈맛에 취하면 창작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기업행위에 안정은 없다. 기업행위에 성공은 없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진정한 경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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