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한글의 역설

한국어에 영어가 많이 섞여 있어 걱정인 분들이 많다. 허약한 주체의식이나 문화 사대주의 등 관념적인 곳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문자학의 측면에서 보면 한글이 갖고 있는 역설적 성격 때문이다. 알다시피 한글은 말소리를 작은 조각으로 쪼개어 적을 수 있는 문자라 어떤 말이든 ‘비슷하게’ 표시할 수 있다. 소리만 본뜰 뿐 뜻을 담지 않아 몸놀림이 가볍다. 들리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적는다.

한국어로 통하는 한글은 외길인데, 중국어로 통하는 한자는 세 갈래 길이다. 음과 뜻이 한 몸인 한자는 낯선 외국어를 만나면 움찔한다. 음으로 적을지(음역), 뜻으로 적을지(의역), 둘 다 살려 적을지(음의역)를 매번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咖啡(카페이)’(커피), ‘巧克力(차오커리)’(초콜릿), ‘喜来登(시라이덩)’(쉐라톤), ‘沙发(사파)’(소파)는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电视(뎬스)’(텔레비전=전기+보다), ‘电脑(뎬나오)’(컴퓨터=전기+뇌), ‘电影(뎬잉)’(영화=전기+그림자), ‘手机(서우지)’(핸드폰=손+기계)는 의역한 것이다. 한편 ‘可口可乐(커커우커러)’(코카콜라=입에 맞고 즐기기 좋다), ‘咖啡陪你(카페이페이니)’(카페베네=커피(음)+당신과 함께(뜻)), ‘星巴克(싱바커)’(스타벅스=별(뜻)+벅스(음))는 음과 뜻을 적절히 섞어 만든 것이다.

한글은 쉬운 만큼 외국어가 빨리 들어오고, 중국 한자는 어려운 만큼 천천히 들어간다. 문자는 외국어 수용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 사대주의 때문이 아니다.



말을 고치려면

작은 말씨름이 붙었다. 언어순화 정책을 비판한 칼럼 ‘고쳐지지 않는다’(4월6일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언어는 퇴행하지 않고 달라질 뿐, 걱정도 개입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한글문화연대에서 ‘공공언어 개선 전문가 토론회―언어에 대한 개입은 정당한가’라는 주제로 맞짱토론을 제안했다. 영화처럼 ‘17 대 1’의 상황이었다.

외래 요소로 요동치는 언어를 보는 두 관점. 쉽고 바른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개입주의, 처방주의, 순화주의’ 측과 기왕 들어온 거 잘 어울려 지내자는 ‘자유주의, 설명주의, 기술(記述)주의’ 측. 혁명가와 구경꾼의 거리만큼 둘 사이에는 장강 하나가 흐른다. 지금의 언어순화는 언어민족주의가 아닌, 언어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공공기관의 언어만큼은 이해하기 쉬운 말을 쓰자는 취지다. 환영. 성과도 있다. 인정.

하지만 주체를 바꾸자. 말에 대한 최종 책임은 ‘사회적 개인’의 몫이다. 국가는 개인의 말에 대해 ‘맞고 틀림’을 판정할 권한이 없다. 우리의 비극은 이 권한을 아직도 국가가 틀어쥐고 있다는 점. 그 결과 언론출판계를 비롯한 시민영역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다양한 번역어를 유통·경합시키고 어느 하나로 모아가는 ‘말의 발산과 수렴’의 장마당(언어시장)이 사라져버렸다.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개인은 더 소통력 있고 평등한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써야 한다. ‘쉬운’ 한국어는 단어가 아닌 글쓰기나 말하기 역량의 문제이다. 이런 ‘언어 감수성’을 기르려면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이 필요하다. 언어에 대한 문제가 실은 언어 밖의 문제인 셈이다. 이를테면 자율성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28582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190195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02Sep
    by 風文
    2022/09/02 by 風文
    Views 686 

    생각보다, 효녀 노릇

  5. No Image 01Sep
    by 風文
    2022/09/01 by 風文
    Views 594 

    온실과 야생, 학교, 의미의 반사

  6. No Image 30Aug
    by 風文
    2022/08/30 by 風文
    Views 582 

    잃어버린 말 찾기, ‘영끌’과 ‘갈아넣다’

  7. No Image 29Aug
    by 風文
    2022/08/29 by 風文
    Views 616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8. No Image 28Aug
    by 風文
    2022/08/28 by 風文
    Views 691 

    말의 바깥, 말의 아나키즘

  9. No Image 27Aug
    by 風文
    2022/08/27 by 風文
    Views 532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10. No Image 23Aug
    by 風文
    2022/08/23 by 風文
    Views 640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11. No Image 22Aug
    by 風文
    2022/08/22 by 風文
    Views 604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12. No Image 21Aug
    by 風文
    2022/08/21 by 風文
    Views 862 

    ‘사흘’ 사태, 그래서 어쩌라고

  13. No Image 20Aug
    by 風文
    2022/08/20 by 風文
    Views 1132 

    계집과 여자, 끝

  14. No Image 19Aug
    by 風文
    2022/08/19 by 風文
    Views 637 

    한글의 역설, 말을 고치려면

  15. No Image 18Aug
    by 風文
    2022/08/18 by 風文
    Views 521 

    고양이 살해, 최순실의 옥중수기

  16. No Image 17Aug
    by 風文
    2022/08/17 by 風文
    Views 911 

    인기척, 허하다

  17. No Image 16Aug
    by 風文
    2022/08/16 by 風文
    Views 521 

    사과의 법칙, ‘5·18’이라는 말

  18. No Image 15Aug
    by 風文
    2022/08/15 by 風文
    Views 539 

    불교, 경계를 넘다, 동서남북

  19. No Image 14Aug
    by 風文
    2022/08/14 by 風文
    Views 758 

    뉴 노멀, 막말을 위한 변명

  20. No Image 12Aug
    by 風文
    2022/08/12 by 風文
    Views 773 

    인쇄된 기억, 하루아침에

  21. No Image 07Aug
    by 風文
    2022/08/07 by 風文
    Views 763 

    이단, 공교롭다

  22. No Image 06Aug
    by 風文
    2022/08/06 by 風文
    Views 771 

    직거래하는 냄새, 은유 가라앉히기

  23. No Image 05Aug
    by 風文
    2022/08/05 by 風文
    Views 580 

    고백하는 국가, 말하기의 순서

  24. No Image 04Aug
    by 風文
    2022/08/04 by 風文
    Views 532 

    올해엔 저지른다, ‘죄송하지만’

  25. No Image 03Aug
    by 風文
    2022/08/03 by 風文
    Views 852 

    괄호, 소리 없는, 반격의 꿔바로우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