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05.29 15:02

하룻강아지 / 밥약

조회 수 13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룻강아지

지난주 야당 대표 국회 연설 때 ‘막말 공방’이 도졌다. 연설 중계방송의 ‘오프 마이크’를 통해 장내 소란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국회의 일상’이라 여겼다. ‘너나 잘해’ 외친 여당 대표, 이름에 빗대 ‘철수해라’ 비아냥댄 여당 의원의 발언은 얘깃거리로 삼기 민망하다.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어쩌다 보니 튀어나온’ 실수였을 것이라 덮어두고 싶을 정도이니까. 여야 서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새민련’으로, ‘새누리당’을 ‘새리당’으로 부르며 치고받는 모양도 점잖지 않아 보인다. ‘내 이름을 이렇게 불러 달라’ 하면 그 뜻을 존중하는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말 공방’의 정점은 ‘하룻강아지’를 입에 올린 여당 대변인 말이었다. 공식 브리핑을 통해 ‘초년생 당 대표가 상대 당 대표를 향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라 단정했기 때문이다. 야당 대표를 ‘범에게 달려드는 하룻강아지’ 꼴로 만든 것이다.

사전은 ‘하룻강아지’의 비유적인 뜻을 ‘사회적 경험이 적고 얕은 지식만을 가진 어린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하룻강아지’는 ‘태어난 지 하루 된’ 강아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하룻’은 ‘나이가 한 살 된 소, 말 따위를 이르는 말’인 ‘하릅’이 변한 것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우리 조상들은 하릅(1), 두습(2), 사릅(3), 나릅(4), 다습(5), 여습(6)…처럼 가축의 나이를 달리 매겼다. 하룻망아지, 하룻비둘기처럼 하룻강아지는 ‘한 살 된 강아지’인 것이다. ‘하루 된 강아지’의 근거로 꼽히는 ‘일일지구(一日之狗) 부지외호(不知畏虎)’는 중국 속담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이 고유 속담을 한문으로 옮겨 1820년 이맘때 펴낸 <이담속찬>(耳談續纂)이 출처다. 갓 태어난 강아지는 눈도 뜨지 않은 ‘눈에 뵈는 게 없는’ 존재인 것이니 ‘하룻’(하릅)의 뜻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 살 된 강아지쯤 되어야 찧고 까불며 나댈 수 있는 것이다.


………………………………………………………………………………………………………………
밥약

학보를 받아 보며 아쉬운 때가 많았는데, 이번엔 참기 힘들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후배가 찍어 올린 학보를 보았다. 기사 제목 ‘해드라인의 맞춤법부터’가 눈에 들어왔다. ‘해드라인’이 헤드라인으로 버젓이 찍혀 나오는 그 학보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정치에 대한 대학생의 인식을 머리기사에 올린 학보는 학생회·학교 관련 소식과 문화가 이슈, 지상 철학 강좌 따위를 다루고 있었다. 다른 기사는 크게 흠잡을 데 없었고 학생기자와 교수의 칼럼은 제 나름의 시각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괜찮게 만든 학보’라는 생각을 하며 신문을 넘기는데 고개 갸우뚱하게 하는 기사 몇 꼭지가 눈길을 끌었다.

 ‘중국어 강의 신설’, ‘대학원생의 눈물 모은 생수통’, ‘학교 빵 매출 급증으로 등록금 10% 인하’ 따위의 기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총장과 학생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총장 밥약 사업’ 잠정 중단”을 알린 기사가 특히 그랬다. “과다한 식사로 총장이 비만으로 고생하면서… ‘밥약 부총장’ 임명안이 제기됐다”는 사연을 보며 요즘 학생들은 총장과 먹는 밥을 ‘약’(藥)이라 생각한다, 지레짐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밥약’은 ‘밥 먹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혼자 밥 먹는 것을 ‘혼밥’, 이런 무리를 ‘혼밥족(-族)’이라 한다는 걸 떠올리니 그럴듯했다. 관련 신어를 찾으니 ‘밥터디’가 나온다. ‘따로 공부하다가 밥만 함께 먹는 모임’, ‘함께 밥 먹으며 공부하는 모임’으로 ‘밥+스터디(그룹)’를 합해 만든 말이다. 2005년 11월에 매체에 등장했으니 쓰임은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혼밥’, ‘밥약’의 형뻘인 셈이다. 그나저나 ‘총장밥약사업 중단’을 다룬 학보 기사의 ‘팩트’를 찾아 관련 정보를 뒤져보니 허망했다. 학보 상단에 ‘만우절 특집’이란 글자가 떡하니 박혀 있다. ‘중강’(中講), ‘눈물 생수통’, ‘등록금 10% 인하’ 또한 그랬던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35892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19726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04Jun
    by 風文
    2020/06/04 by 風文
    Views 1315 

    방방곡곡 / 명량

  5. No Image 03Jun
    by 風文
    2020/06/03 by 風文
    Views 1444 

    헤로인 / 슈퍼세이브

  6. No Image 02Jun
    by 風文
    2020/06/02 by 風文
    Views 1428 

    기림비 2 / 오른쪽

  7. No Image 01Jun
    by 風文
    2020/06/01 by 風文
    Views 1165 

    깻잎 / 기림비 1

  8. No Image 31May
    by 風文
    2020/05/31 by 風文
    Views 1309 

    아카시아 1, 2

  9. No Image 30May
    by 風文
    2020/05/30 by 風文
    Views 1187 

    매뉴얼 / 동통

  10. No Image 29May
    by 風文
    2020/05/29 by 風文
    Views 1359 

    하룻강아지 / 밥약

  11. No Image 28May
    by 風文
    2020/05/28 by 風文
    Views 1354 

    마라톤 / 자막교정기

  12. No Image 27May
    by 風文
    2020/05/27 by 風文
    Views 1165 

    교정, 교열 / 전공의

  13. No Image 26May
    by 風文
    2020/05/26 by 風文
    Views 1227 

    좋은 목소리 / 좋은 발음

  14. No Image 25May
    by 風文
    2020/05/25 by 風文
    Views 1160 

    꼬까울새 / 해독, 치유

  15. No Image 24May
    by 風文
    2020/05/24 by 風文
    Views 1187 

    경텃절몽구리아들 / 모이

  16. No Image 23May
    by 風文
    2020/05/23 by 風文
    Views 1544 

    청마 / 고명딸

  17. No Image 22May
    by 風文
    2020/05/22 by 風文
    Views 1355 

    말다듬기 위원회 / 불통

  18. No Image 21May
    by 風文
    2020/05/21 by 風文
    Views 1503 

    튀르기예 / 뽁뽁이

  19. No Image 20May
    by 風文
    2020/05/20 by 風文
    Views 1312 

    올가을 첫눈 / 김치

  20. No Image 19May
    by 風文
    2020/05/19 by 風文
    Views 1570 

    되갚음 / 윤석열

  21. No Image 18May
    by 風文
    2020/05/18 by 風文
    Views 1605 

    빛깔 이름/ 염지

  22. No Image 17May
    by 風文
    2020/05/17 by 風文
    Views 1261 

    사수 / 십이십이

  23. No Image 16May
    by 風文
    2020/05/16 by 風文
    Views 974 

    24시 / 지지지난

  24. No Image 15May
    by 風文
    2020/05/15 by 風文
    Views 1202 

    선정-지정 / 얼룩빼기 황소

  25. No Image 14May
    by 風文
    2020/05/14 by 風文
    Views 1423 

    -분, 카울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