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새로운 한자어

한자어는 중국어(한어)에서 유입된 어휘인데 워낙에 오랜 세월 동안 영향을 받아온 탓에 어떤 말들은 마치 토착어인 듯 익숙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불편하거나 생경하기만 한 한자어들도 있어서 그때그때 말을 다듬어 쓸 필요가 있다.

1992년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이래 문물 교류의 폭도 넓어지고 새로운 중국식 어휘도 많이 들어왔다.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기차(汽?)라고 한다. 정보는 신식(信息), 텔레비전은 전시(??), 쇼핑은 구물(?物) 등 우리가 알고 있던 한자어들과는 다르다. 이러한 새 한자어에 해당하는 말은 이미 우리한테도 있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다. 우리한테 없는 개념은 아예 중국 발음 그대로 들어왔다. 유커(游客)니 산커(散客)니 하는 말들이다.

근간의 남북 관계를 다루면서 중국 측에서 해법으로 제시한 용어들이 눈에 띈다. 쌍중단(雙中斷), 쌍궤병행(雙軌竝行), 쌍잠정(雙暫停)과 같은 단어들로,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것이고 쌍궤병행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상의 동시 진행을 말한다. 쌍잠정은 양측의 군사 경쟁을 잠시 멈추자는 말이다. 모두 중국어다운 함축성이 돋보이나 우리 언어 감각에는 낯설기 그지없다. 차라리 좀 길더라도 ‘쌍방 (잠정) 중단’이라든지 ‘쌍방 동시 진행’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이 우리한테는 더 편리할 것 같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우리의 명운이 걸려 있는 일이다. 또 국제적인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의견들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한테 익숙지 않은, 중국식 표현법 혹은 ‘비핵화 프로세스’니 ‘시브이아이디’(CVID) 같은 영어식 표현 등이 나돌아다닌다. 그러나 다시 보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최후의 동의권은 바로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니만큼 우리가 잘 이해하고 혼란을 느끼지 않는 말로 그 개념이 정리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

이름과 실천

이름을 짓는 일은 매우 자의적인 행동 같지만 사실 명명자의 마음속 이념이나 가치관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여자아이의 이름을 ‘예쁜이’라고 지으면서 그저 예뻐서 그렇게 지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성의 삶에서 미모가 우선적이라는 가치 지향의 태도가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남자아이 이름에 용감할 용(勇)자를 넣는 것도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인명이나 지명만이 아니다. 공공의 목적이나 가치중립적인 활동을 지향하는 조직의 명칭도 은연중에 일정한 이념적 냄새를 숨기지 못한다. 어느 지방의 지방자치 조직에는 ‘새마을과’라는 부서도 있었다. 곧 없앤다니 다행이다. 한때 대학에 ‘학도호국단’이란 어용 학생조직이 당연하다는 듯 모든 학생들을 단원으로 삼고 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검찰청에서도 서슬 퍼렇던 ‘공안’이라는 부서가 사라진다고 한다. 사실 공공의 안전이라는 그 낱말 뜻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횡포가 그 이름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온 것이다. 유혈이 낭자하던 프랑스혁명 시기의 ‘공안위원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이름으로 나라의 안전을 구실 삼아 사람들의 천부적 권리에 상처를 많이 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안적 시각’이란 말은 수구적이고 냉전적인 안보중심적 시각이라는 의미나 다름없이 사용되었다.

과거를 반성하고 이름을 뜯어고치는 것을 말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이름으로 또 마찬가지 행동을 하게 되면 우리 모두에게 허무감만 남길 것이다. ‘보안사’를 ‘기무사’로 바꿨는데 이름만 바꿨지 알맹이는 그대로가 아닌가? 껍데기만 바꾸는 일이 지속된다면 이름을 바꿀 때마다 오히려 그 이름에 대한, 또 언어에 대한 신뢰만 그만큼 떨어질 뿐이다. 지속가능한 이름은 지속가능한 실천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28833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190425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05Jul
    by 風文
    2022/07/05 by 風文
    Views 580 

    우방과 동맹, 손주

  5. No Image 01Jul
    by 風文
    2022/07/01 by 風文
    Views 739 

    쌤, 일부러 틀린 말

  6. No Image 30Jun
    by 風文
    2022/06/30 by 風文
    Views 679 

    표준말의 기강, 의미와 신뢰

  7. No Image 29Jun
    by 風文
    2022/06/29 by 風文
    Views 515 

    주시경, 대칭적 소통

  8. No Image 28Jun
    by 風文
    2022/06/28 by 風文
    Views 530 

    언어적 도발, 겨레말큰사전

  9. No Image 27Jun
    by 風文
    2022/06/27 by 風文
    Views 608 

    뒷담화 보도, 교각살우

  10. No Image 26Jun
    by 風文
    2022/06/26 by 風文
    Views 684 

    가족 호칭 혁신, 일본식 외래어

  11. No Image 26Jun
    by 風文
    2022/06/26 by 風文
    Views 628 

    물타기 어휘, 개념 경쟁

  12. No Image 24Jun
    by 風文
    2022/06/24 by 風文
    Views 753 

    한글의 약점, 가로쓰기 신문

  13. No Image 23Jun
    by 風文
    2022/06/23 by 風文
    Views 628 

    외교관과 외국어, 백두산 전설

  14. No Image 22Jun
    by 風文
    2022/06/22 by 風文
    Views 680 

    깨알 글씨, 할 말과 못할 말

  15. No Image 21Jun
    by 風文
    2022/06/21 by 風文
    Views 615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16. No Image 20Jun
    by 風文
    2022/06/20 by 風文
    Views 511 

    혁신의 의미, 말과 폭력

  17. No Image 19Jun
    by 風文
    2022/06/19 by 風文
    Views 668 

    성인의 외국어 학습, 촌철살인

  18. No Image 18Jun
    by 風文
    2022/06/18 by 風文
    Views 632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19. No Image 17Jun
    by 風文
    2022/06/17 by 風文
    Views 757 

    우리와 외국인, 글자 즐기기

  20. No Image 15Jun
    by 風文
    2022/06/15 by 風文
    Views 675 

    정보와 담론, 덕담

  21. No Image 14Jun
    by 風文
    2022/06/14 by 風文
    Views 624 

    동무 생각, 마실 외교

  22. No Image 13Jun
    by 風文
    2022/06/13 by 風文
    Views 603 

    개념의 차이, 문화어

  23. No Image 10Jun
    by 風文
    2022/06/10 by 風文
    Views 737 

    남과 북의 언어, 뉘앙스 차이

  24. No Image 09Jun
    by 風文
    2022/06/09 by 風文
    Views 766 

    분단 중독증, 잡것의 가치

  25. No Image 08Jun
    by 風文
    2022/06/08 by 風文
    Views 533 

    속담 순화, 파격과 상식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