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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07.20 14:18

말의 토착화 / 국가와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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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토착화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한때 ‘양담배’가 문제된 적이 있었다. 전매제품인 국산 담배 소비를 방해하는 불법 상품이었다. 주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왔다. 전문 단속반이 있었고, 다방 같은 데서 몰래 단골한테만 팔기도 했다. 이름은 서양에서 왔다는 ‘양-’이라는 접두사를 붙이고 있었지만 사실상 모두 미제 담배였다. 미국은 곧 서양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가게에서 합법적으로 외국 담배들을 판다. 그것도 미국 것만이 아니라 다양하다. 그러면서 어느새 ‘양담배’라는 말을 듣기 어려워졌다. 자유스러워지면서 동시에 그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다. 담배 종류를 일컫는 말도 달라졌다. 미국 담배, 일본 담배, 독일 담배처럼 생산한 나라를 일컫지 않고 구체적인 상표를 말하게 되었다. 제품의 국적보다 개별화된 상호와 상품명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양-’이라는 접두사가 사실상 무의미해진 말도 대단히 많다. ‘양복, 양파, 양말, 양옥, 양배추, 양철’ 등의 어휘도 이 이상 서양에서 왔다는 표지가 무의미해졌다. 마치 우리 토산품인 양 수입품은 보기 어렵고 국내산이 자연스럽게 잘 소비된다. 실물이 토착화되면서 말도 토착화되어 버렸다. 원래 의미가 남아 있는 ‘양’자 돌림은 ‘양주’ 정도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양주의 의미도 이미 서양 술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서양의 ‘와인, 보드카, 코냑’ 등이 아닌 위스키를 주로 가리킨다. 그만큼 의미의 폭이 좁아져버렸다. 그러면서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점점 ‘서양’이라는 거대 관념이 상품 세계 속에서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서양 세계’와 ‘우리 세계’가 동질화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한다면 실체는 지구화되고 있고, 기호는 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라는 물결에 놀라 외국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화는 세계가 다양한 문물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문물을 자유롭게 우리 것으로 만드는 역할은 우리의 언어가 담당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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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교과서

새삼스레 교과서, 그것도 국정교과서 문제를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교과서를 누가 편찬하느냐의 문제가 일차적 사안이 된 것이 참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국가가 역사교과서를 편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통령이 직접 집필할 상황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장관이 직접 팔을 걷어붙일 일도 아니다. 결국은 전공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한다는 일들은 구체적으로 보면 결국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일이다. 단지 ‘국가의 이름으로’ 낼 뿐이다.

국가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국가기관이나 정권, 정파가 개입할 기회가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관료체제나 정치세력들은 국가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으려 할 것이다. 민족이나 국민의 이름을 이용해도 되지만 그것은 좀 부담스러운 점이 많다. 국가라는 존재를 내밀어야 하루하루 살아가는 보통 국민들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고로 역사는 국가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국가는 역사에 대해서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국가가 역사에 대해 무언가 말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특정 정치세력이 무언가 자신들의 말을 역사에 끼워 넣으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 쉽다. 더구나 역사 문제에 대해 꺼림칙한 면이 많은 정권일수록 이런 일에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자칫 역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참에 모든 사람이 ‘국가’의 참뜻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국가는 매우 추상적인 관념이다. 국가가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려면 권력을 쥔 집단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국민’들 앞에서 관철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국민이 진정 국가의 주인이 되려면 부단히 목소리를 내는 길밖에 없다. 침묵하면 체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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